[방송] ‘짝사랑 쇼’와 비정상 얘기
  • 김창남 ( 세종대 강사 · 방송비평)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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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쇼> <세상사는…> ‘보통사람’의 삶과는 동떨어져

‘자니윤 쇼’만큼 숱한 비난과 구설수를 몰고 다닌 프로그램도 흔치 않을 것이다. 방영초기부터 퍼부어진 비판과 논란의 화살은 1백회를 넘기고 종영을 앞둔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숱한 비난의 화살이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는지 이 프로그램은 이른바 심야 토크 쇼로서는 보기 드물게 40%에 달하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공영방송의 이념과는 무관하게 시청률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던 KBS의 그간의 관행에 비추어 보면, 그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막을 내리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나윤 쇼>는 시작부터 끝까지 풍성한 화제거리를 제공한 흔치 않은 예가 되는 셈인데, 이른바 ‘성인용 심야 토크 쇼’의 개발과 관련하여 이 프로그램이 남길 파장 역시 적지 않으리라는 예상이고 보면, 먼잖아 사라질 프로그램을 두고 한두마디쯤 거드는 것도 전혀 부질없는 짓만은 아닐 듯 싶다.


형식의 모방과 미국적 분위기

<지나윤 쇼>가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시비거리로 떠오른 것은 프로그램 형식의 철저한 모방이란 문제였다. 비교대상이 된 것은 AFKN에서 방영하고 있는 미국 NBC의 <자니카슨쇼> (투나잇 쇼)였는데, 실제로 <지나윤 쇼>는 진행방식이나 무대구조, 고정출연자의 역할 등 하나부터 열까지 염치없다 싶을 만치 (투나잇 쇼)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

게다가 진행자의 이름까지 ‘자니’였으니 적잖은 사람들이 자존심 상해 하고 거부감을 표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의 모방이라는 문제만 따져본다면 <지나윤 쇼>만이 유독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 프로그램 형식의 모방은 텔레비전 방송 초창기부터 끊이지 않았던 문제이고, 사실 뉴스 프로그램을 비롯, 어떤 점에서는 우리 텔레비젼 전체가 모방의 진열장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니윤이란 인물이 보여주는 지극히 ‘미국적’인 냄새나 ‘유창한 영어와 어눌한 한국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미 텔레비전 편성의 상당부분을 진짜 미국 프로그램이 차지한 지 오래이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영화·미국가요·미국문화가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고, 자니윤보다 훨씬 더 ‘미국적인’ 인물들이 버젓이 자랑스럽게 우리 주변을 활보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자니윤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의 ‘미국적임’에 대해 유난스럽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 그것은 그다지 공정한 처사는 못된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 형식의 모방이나 미국적 분위기, 진행자의 어투 따위는 이 프로그램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영화 찍으실 때 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윤인자씨하고 키스씬을 찍는데, 난 그저 살짝 입술만 갖다 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혓바닥이 쑥 들어오잖아요! 그러니 놀래서 엔지가 나고….” (89년 11월29일)

“아버지와 딸이 함께 연기할 때 느낌이 어땠어요?”

“글세 아빠가 맨날 자기 혼자만 튈려구 해서 혼났어요.” (90년 2월14일)

이런 식의 대사가 오고가면 으레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배를 잡고 키득거리는가 하면 눈물까지 글썽이며 손을 휘젓고 못참겠다는 듯 서로 어깨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지나윤 쇼>에서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누구든 별다른 전제없이 텔레비젼앞에 앉아 쇼의 진행을 좇다보면 이런 장면에서 한두번쯤 실소를 터뜨리게 마련인데 문제는 바로 그런 재미가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나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잠자리에 들기전에 피로를 씻어주는 상쾌한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에 있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잡담이나 자니윤이 한두마디씩 끼워넣는 외설스런 농담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다가도 왠지 모르게 해서는 안될 장난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움찔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지나윤 쇼>의 재미는 속이 후련하고 상쾌하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고 응어리가 남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시청자들의 ‘짝사랑’만 즐겨

그것은 ‘잘나고 돈많고 인기도 좋은’ 사람들끼리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노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끼어들었다가 문득 나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겸연쩍어 나앉게 되는, 그런 종류의 느낌과 닿아 있다. 그것은 단지 등장인물들이 유명인·연예인이라서 오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프로그램으로 ‘토크 쇼’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믿는 제작자들이나 자신의 ‘미국성’을 부끄러움없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진행자, 또 한번씩 나와 ‘부담없는’ 시간을 즐기고 가는 출연자 모두의 의식속에 시청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진짜 ‘보통사람들’의 사람이나 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상품. 특별한 보통얼굴들

시청자들의 ‘짝사랑’만을 편안히 즐기는 <지나윤 쇼>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MBC의 <세상사는 이야기>이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지나윤 쇼>의 여향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역시 모방의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형태는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도 유명인 아닌 ‘보통사람’으로 내용을 채움으로써 <지나윤 쇼>와는 사뭇 다른 프로그램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 출연하는 보통사람들은 유명인이 아닐 뿐 평범한 의미의 ‘보통사람’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일흔이 다 되도록 콩쿠르대회에 3백회 출전하면서 가수의 꿈을 펼치려다 결국 포기한 노인(2월11일), 딸을 일곱 낳은 끝에 아들을 하나를 본 딸부자집(2월11일), 남편을 술로 잃은 술장수(2월18일), 두 번 이혼 끝에 세 번째 재결합 부부(2월25일) 등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정상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거나 실패·좌절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비정상성’등을 그들 자신의 걸쭉한 입담을 빌려 털어놓는 데에 이 프로그램의 재미가 있다. 여기에는 유명한 얼굴들에 대한 ‘짝사랑’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대중들을 위해 좀 특별한 보통얼굴들을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한 교묘한 상업주의가 숨어 있다. 결국 어느 쪽에서든 진짜 보통사람들은 ‘주인’이 아닌 것이며 그것이 이런 류의 ‘토크 쇼’를 근본적으로 한계 지우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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