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지겹지만 안하면 불안”
  • 편집국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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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를 시작한 지 석달이 돼 간다. 오빠 친구인 공대생 선생님한테 수학 지도를 받고 있는데 처음 하는 과외여서 그런지 매주 흥미를 갖고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 주위에 과외를 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면서도 나는 그다지 동요를 느끼지 않았었다. 성적이 늘 전교 5등 안팎의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방학 때 학원 단과반에 나가는 정도로 학교공부를 보충했다. 그렇다고 고교진학후 성적이 크게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전교 10등 정도의 현재 석차로는 목표인 ㅇ대 치의예과 입학이 힘들 것 같은 불안감에서 과외를 시작한 것이다. 전교 5등안에 드느냐 마느냐에 따라 지망대학, 지망학과가 달라진다.

약국을 경영하는 우리집 형편에 월 20만원의 내 과외비가 아직은 그렇게까지 짐스러운 눈치는 아니다. 하지만 영어과외 한과목을 더 하겠다고 하면 어떨지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어려워 미루고 있다. 물론 집안이 아주 넉넉하다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과외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외를 많이 한다 해서 성적이 쑥쑥 오르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중학교 대부터 과외에 시달려온 내짝 지현이의 불만스런 얼굴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오빠 들을 ‘빛나는’ 의대생으로 만들어준 직업 과외교사 부부한테 월 1백20만원짜리 단독과외를 받는다는 지현이. 중1때부터 내리 4년간 국어·영어·수학을 지도받았고 요즘은 화학·물리까지 시간이 모자라 과외시간표 짜기에 애를 먹는다고 투덜댄다.

“아무리 해봐야 이것밖에 안되는데 더 이상 어쩌라는 거지? 전문대면 어때. 난 재수 같은 건 죽어도 안할 거야.” 입버릇처럼 과외가 지겹다는 얘기, 부모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학급성적 10~15등으로는 서울에서 이류대학도 갈지 말지인데 ㅇ대 의대를 목표로 잡아두고 “목을 비틀어” 오빠들 수준에 맞추려는 엄마에 대해 지현은 적개심마저 갖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과외를 ‘빼먹을’ 궁리만 하고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여러번 보았다. 엄마 몰래 인기탤런트 ㅊ씨의 팬 클럽에 가입하는가 하면 녹화장이나 연예행사에 따라갈 구실 만들기에 바쁘다. 그건 과외의 채찍을 피해보려는 지현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지현이처럼 ‘백 단위’는 아니더라도 수십만원짜리 고액과외를 하는 친구들은 많다. 하지만 부모가 비싼 과외를 시켜준다 해서 더 고마워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고액 과외로 오래 길들여져온 경우일수록 타성이 붙어 그냥 과외를 ‘오가는’ 아이들이 많다. 또 그만두고 싶어도 성적이 추락해버리지나 않을까 불안해 과외를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 과외를 시작했고 머지않아 또 한 과목을 더 하려는 입장에서 어떻게 남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황성희 (서울 ㅁ 여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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