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둘러야 통일 가능”
  • 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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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趙淳昇의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1995) 역사학 석사(1957) 정치학 박사학위(1959)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趙淳昇씨(62)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기까지의 행로는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조의원은 국가재건최고회의 계획위원이던 61년 “6개월 이내에 민정이양하라”는 글을 쓴 후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3억달러의 보상비는 말이 안된다”라는 글 때문에 65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피신했다. 70년에는 “남북회담 열어 교류를 진작시키자”라는 글로 ≪신동아≫ 필화사건에 연루됐고, 미국 미주리대 정치학과 대학원장으로 있을 때인 80년에는 카터 대통령에게 “광주문제로 위컴과 전두환을 문책하라”는 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남북한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으려고 접축하고 있는 때에 국회 외무통일위원회 신민당측 간사이기도한 조의원을 만났다. 국회의 남북분제 이론가로 인정받는 조위원은 지난 4월말 국제의원연맹 총회 참석차 9일간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벤쿠버 선언을 비롯한 일련의 우리측 ‘통일공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제안 내용이 놀라울 만큼 유연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는 부정적이라고 봅니다. 미·캐나다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통상문제였는데 실익이 없는 데 대한 보상을 위해 마련한 선언으로 보여집니다.

●북한이 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보십니까?
 재야단체나 운동권을 제외한 우리측 학생들이 백두산까지 가는데 아무 조건없이 보고 싶은 곳 다 보게 하라는 것인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벤쿠버 선언은 과거에 선언한 것의 되풀이입니다. 우리의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나, 또 위정자로서는 힘들겠지만 과단성을 보여 그같은 조건을 달지 않아야 그쪽에서 받아들이겠지요.

●북한은 모든 것이 정부주도이면서 남쪽의 비정부 단체하고만 교류하려고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까?
 문제가 있죠. 그러나 두달 전에 북한에 가보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고 사회는 경직돼 있습니다. 북한의 문호개방에 숨통을 티이게 한 것이 노대통령의 7·7선언입니다. 여유가 있는 우리쪽에서 양보를 하지 않으면 남북교규의 현실화가 불가능합니다, 저쪽에선 절대로 먼저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남한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북한이 이를 이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5백명을 어떻게 보냅니까. 50명이라면 몰라도…. 또 전민련이나 운동권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대학에서도 한번 데모할 때 2백?3백명 정도 이상은 안 모입니다. 목소리가 클 뿐이지요. 이들을 제외해서도 안됩니다. 이들도 일부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이들을 이용해 대화를 더 어렵게 만들수도 있다는 점 아닙니까?
 북한에 가보니 임수경이 기막히게 우상화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남한에서는 임수경이 뭡니까, 일개 학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GNP가 그들보다 8배가 넘고 개인소득은 7?10배가 넘는다고 정부가 말하고 있는데 사실인 듯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문호개방을 상당히 하지 않고 1대1로 북한과 맞선다면 문제해결이 안됩니다. 민중민주혁명론(PD)계열이 건 민족해방혁명론(NL)계열이건 남한 학생이 한명이라도 더 북한에 가서 실상을 봐야 그들의 환상이 사라지게 되므로 우리에게는 이익이 될 것으로 봐요.

●신민당의 통일정책 입안자로서 그 골자를 설명해주십시오.
 신민당과 정부, 그리고 북한의 통일방안에는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즉 통일로 가는 과정에 지방정부가 외교·국방권을 갖는 국가연합 형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북한도 고려연방제를 수정했고, 정부도 6월17일에 통일방안을 확인했습니다.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는가의 차이를 빼고는 통일방안이 접근돼 있어 앞으로는 누군가 먼저 한발 앞서 나가기만 하면 될 듯 합니다.

●현 정부는 통일의지가 없다고 보시는지요.
 사견입니다만, 현 정부는 그렇게 갑자기 통일을 이룰 필요는 없다, 기다리고 있으면 아마 독일의 경우처럼 흡수통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국제정치학자로서 볼 때 지금과 같은 국제협조시대, 즉 데탕트 시대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5년 재지 10년이면 새로운 알력이 생깁니다. 느긋하게 북한 흡수만 기다리다가 영원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데탕트 무드가 지속될 때 서둘러야 합니다. 국제정치에서 10년이란 세월은 무척 빨리 지나갑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북한의 통일의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도 현 시점에서는 말로만 통일을 얘기하고 있지 전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김일성 주석도 고령이므로 통일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 남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겠죠. 그러나 그들은 남한은 대화가 불가능한 독재정권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나는 물론 우리 정부를 두둔하죠. 국외에서 정부를 비판한 적은 없습니다. 현재 좋은 나쁘든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분명히 얘기합니다. 단 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남한 정부와 얘기하면 늘 자신들을 자극해서 야당인 우리와 얘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요.

●북한 사람들의 말을 어느 정도 믿으시나요?
 다 믿지는 않죠. 밤낮 판에 박힌 이야기니까요. <로동신문>에 난 것을 복사한 것과 같으니까요.

●북한에 다녀오셨는데 북한 사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북한에 다녀와서 부정적인 얘기만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군요. 북한 사회는 무서운 사회입니다. 적어도 근대화에 필요한 하부구조는 돼 있었어요.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고, 도로가 발달돼 있고, 농지도 구획이 잘 돼 있고, 개성 평양 원산 금강산 등 1천2백km를 달리는 동안에 소 한 마리 못봤어요. 트랙터가 사용되더군요. 교육수준이 높은 이들에게 부족한 돈과 기술을 일본이 대준다면 우리와 임금경쟁이 안됩니다. 일본 자본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 자본이 빨리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한민족 전체가 잘 사는 길이 아닌가 봅니다.

●획일체제하의 북한의 전술·전략에 비해 우리의 통일방안은 지나치게 산발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얼마전 미국에서는 야당(민주당) 사무총장이 소련대사가 됐고, 그정에는 애치슨 민주당 국무장관의 고문이 덜레스 공화당 의원이었습니다. 이런 예는 많아요. 야당 사람을 국무장관의 정책결정에 참여토록 길을 열어놓고 있어요. 대한민국에는 그런게 없어요.

●정부가 조의원을 통일원장관으로 임명한다면 수락할 의사가 있습니까?
 우리 당의 방침은 모르겠으나 통일을 위해서라면 고려할 수 있지 않나 봅니다. 꼭 저 개인이 아니더라도 정당차원에서 야당이 통일에 참여하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유엔대사에 접어들면서 남북한 관계가 새롭게 정리돼야 할텐데요.
 유엔가입 전에 불가침조약·휴전조약·유엔사 문제가 국회에서 가결돼야 합니다. 제가 외무장관이라면 남한만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법상 문제가 생깁니다.

●남북한 정상의 만남도 필요하다고 봅니까?
 오늘(7월9일) 대정부 질의 때도 나왔는데 한국의 유엔가입안이 처리된 직수인 오는 9월 27일 노대통령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게 됩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일 간다면 유엔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빨리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정상회담이 오히려 망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안 만나는 것보다 낫겠죠. 그러나 사전준비가 더욱 중요합니다. 또 한편으로 김주석이 노대통령을 쉽게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있으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고도의 전략가인 김주석은 후임자와 대화하고 싶어하겠죠.

●한반도와 부속영토를 국토로 규정한 헌법3조를 수정하자는 움직임에 찬동하십니까?
 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의 영토규정도 고쳐야 합니다. 유엔가입 후 연방제로 가려면 북한의 노동당규약도 고쳐야 합니다. 또 유엔사가 전시단체냐, 아니면 수에즈 운하나 콩고에 파견됐던 평화유지군 기능을 가졌느냐를 9월27일의 대통령 유엔연설 전에는 규정해야 합니다.

●헌법개정에 대해서는 반발이 많지 않겠습니까?
 고도의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우리의 통일을 저해하는 외적 요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렇게 보십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는 국제환경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현재의 국제환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걸프전 이후 국제정치 학자들은 두가지 전망을 했습니다. 첫째는 주로 친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팍스아메리카나의 도래가 그것인데, 이같은 주장은 망상입니다. 87년부터 채권국에서 채무국이 된 미국은 매해 1천5백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둘째는 일부 미국 학자들이 주장하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세계기구 재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꿈같은 얘기입니다. 1918년 위드로 윌슨 대통령 시대 때부터 1928년까지 외교정책의 협조시대, 즉 데탕트 시대가 계속됐습니다. 1928년 전쟁의 비합법화를 못박은 파리조약이 체결됐으나 3년뒤 이 조약체결의 당사국(일본)이 만주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앞으로 세계의 세력균형은 첫째 소련의 군사력 감소와 둘째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따라 바뀝니다. 즉5대강국이 6?7대 강국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화에서 볼 때 한반도는 1882년 임오군란에서 1904년부터 다음해까지의 러·일 전쟁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 미해군대학의 올슨 교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을 환기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대일본 정책에 실패하면 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노련한 대사가 파견돼야 합니다. 88년에 소련의 야코블레브를 만났더니 그가 “전세계에서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작은 나라이므로 통일을 우려하지 않으나, 일본은 한국 인구가 그들의 3분의 2나 되고 생산력은 더 빨리 증가할 것이므로 우려할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방해요소가 되지 못하게 할 방안은 무엇입니까?
 극동에서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기구가 필요합니다. 한국 몽고 일본 소련 미국 중국 등이 가입해 일본이 자의적으로 한반도문제를 요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대사가 이같은 기구설립에 반대한다고 하니까 우리정부도 반대발언을 했어요.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있으나 CSCE가 유고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어요. 한국의 독립, 남북한의 군축문제 해결은 극동에서 새로운 안보체제가 설립돼야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결정을 너무 추종하는 것 같아요.

●구한말의 양상이 되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1백만 대군보다는 서희나 강감찬, 탈레랑 같은 외교관이 필요합니다. 외교의 할아버지 탈레랑은 나폴레옹이 밑에서 외무장관을 했는데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했을 때 주변 4대 강국이 프랑스를 분할통치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탈레랑이 어떻게 했는지, 오히려 알자스·로렌 땅을 얻어냈습니다. 패전국이 영토를 얻어온 것은 탈레랑밖에 없습니다. 패전국이 영토를 얻어온 것은 탈레랑밖에 없습니다. 5년, 10년을 내다보는 혜안있는 외교관이 나와야 합니다.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무엇을 꼽으십니까?
 우리측의 전적인 문호개방입니다. 만약 북한에 문호가 개방 된다면 2년 내에 그 사회는 무너지리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절대로 문호개방을 안할 겁니다. 이데올로기란 모든 가치체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요. 따라서 한번 무너지면 하루아침에 무너져요. 북한 주민도 남한과의 접촉이 잦아지고 생활이 윤택해지면 문화구조의 와해가 가속될 겁니다. 우리보다는 미·일과 접촉이 더 빠르겠지만요. 흡수 당시 동독 총리였던 크렌츠도 최근 “지금 다시 동독에서 공산당을 재건하라고 한다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동유럽 공산권에서 제일 잘 살던 동독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던 것을 보면 북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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