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앞날 ‘분노의 쌀’에 저당 잡혔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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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개혁 위한 조기 개각 가능성

金泳三대통령은 첫 해외 방문길에서 ‘미래화’ ‘국제화’ ‘개방화’의 전도사가 되어 돌아왔다. 따라서 김영삼 정부는 그동안의 개혁 논리와 이 새로운 명제가 결합한 제2의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11월 29일 아 . 태경제협력체 회의와 한. 미 정상회담 성과를 보고하는 국회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미래화 . 국제화 . 세계화 .개방화라는 낱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는 “국제화 .개방화는 개혁과 결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면서 “국제화를 위한 개혁, 개방화를 위한 개혁‘을 강조했다.

 개혁과 새로운 명제의 결합은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김대통령은 우선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경제 환경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도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행정의 능률화 . 효율화를 기해야 한다. 과학 . 기술 분야에도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 행정 절차 간소화 조처가 뒤따를 전망이다.
 김대통령은 국제화의 기준과 틀을 정치권에도 주문했다. 국회 연설을 통해 김대통령은 현 정치권이 ‘조그만 일에 집착하는 소모적인 정쟁’ ‘발목을 잡는 식의 내부 갈등’ ‘우물 안 개구리식 주의 주장’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 ‘공동선 추구’ ‘창조적인 안목’ 이라는 관점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통합선거법안을 비롯한 정치관계법의 연내 개정도 이런 맥락에서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청화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틀 속에서 선거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뜻이 더 확고해진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과 금융실명제에 이어 정치개혁 입법이 이뤄져야만 전반적인 사회 개혁을 마무리 지을 수 있고, 국제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생산성 있는 정치가 가능하다는 게 김대통령의 판단이다”라고 언급했다.
 국제화 . 세계화라는 김대통령의 새로운 화두는 당정 개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 방문길에 오르기 전 김대통령은 내각 교체의 폭과 인선 방향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시기는 연말보다는 취임 1주년 시점인 2월이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주변과 정가 일각에서는 조기 개각 가능성을 점친다. 즉 변화에 걸맞는 인물들이 각료로 대거 기용될 것이며, 그 시기도 연내로 당겨지리라는 것이다. 국제화 기류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테크너크렛(전문행정가)을 대거 기용하리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그러나 초미의 현안으로 떠오른 쌀은 김대통령의 정국 운영 구도 전반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쌀시장 개방 불가 방침을 밝히지 않으면 본회의에 불참하겠다면서 불가 방침 재확인을 요구하던 민주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 29일 김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열리는 본회의에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귀국 이후 “한 . 미 정상회담에서 쌀시장 개방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여러 차례 확언했지만, 이와 관련해 정부측의 양보가 있었다는 야당과 농민 단체들의 의혹과 반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대통령 귀국에 때맞추어 미국측이 쌀시장 개방에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 카드를 제시하는 점도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다.

 야당과 농민 . 시민 단체들은 연대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서 정국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11월 27일 ‘쌀시장 개장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이기택)를 구성한 데 이어, 30일 농민 . 재야 단체와 연대해 ‘쌀시장 개방 반대 1천만인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쌀 시장 사수’를 야당의 존립 근거를 확인하는 주요한 계기로 삼는 한편, 안기부법 개정 . 예산안 통과 등 여러 가지 쟁점에서 여당과 맞부딪치는 정기국회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 무기로 최대한 활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디.
 쌀은 현직 대통령에게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대통령선거 유세때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시장 개방만은 막겠다"라고 공약을 내 걸었던 만큼, 여기서 후퇴하면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굳이 선거 공약이 아니더라도 , 쌀은 국민 정서가 얽혀 있는 가장 민감한 농산물이다.

 그러나 국회나 국민에 대한 성명을 통해 개방 불가 방침을 재천명할 경우에도 정치적 부담은 여전하다. 국제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있을뿐만 아니라, 정부측이 협상에 최대한 노력을 쏟더라도 개방 불가를 끝까지 관철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쌀’이 김대통령에게 집권 이후 최대 시련을 안겨주리라는 관측은, 바로 쌀이 지닌 정치적 민감성과 폭발성에서 연유한다. 김대통령의 미래는 상당 부분 쌀에 저당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徐明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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