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략 휩쓸려 선거법 개정'표류'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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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입장 갈려 개정안 논의 실종 … 졸속처리하면 문제 클 듯



 정치관계법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선거법안을 여야 모두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 5.16 이후 여러 가지 독소 조항이 가미된 현행 선거법은 현실적으로 후보들이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다. 현행 선거법은 모든 후보를 범법자로 만들어, 역으로 어떤 불법 타락 선거운동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5월부터 여야가 국회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을 위해 토론을 거듭해 온 까닭은 이같은 구태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95년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선거법 개정은 이제까지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지방자치단체장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에 선거법을 자칫 잘못 고치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총체적 혼란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정치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데도 선거법 개정을 위한 여야의 자세를 살펴보면 석연치않은 구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민자당의 경우 당의 개정법안을 마련하는 데서 철저히 소외됐다. 이름은 민자당안이라고 붙였지만 사실은 청와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법 조문 하나하나를 김영삼 대통령이 챙겼다고 알려져 있다. 청와대로부터 시안을 받은 뒤 의원 총회를 열어 당내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지만 지난 11월8일 국회에 제출한 내용은 거의 청와대안 그대로 이다. 지난 5월 부터 당 특위는 쓸데없이 힘만 뺀 셈이다.

민자, 현실보다 대통령 체면에 신경
 당초민자당은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은 이번 회기 안에 처리하지 않아도 좋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95년 자치단체장 선거, 96년 총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개혁법안을 내놓은 뒤부터는 갑자기 달라졌다. 청와대에서 장치개혁법을 통과시켜 '김영삼 개혁'의 1기를 마무리 짓겠다고 내부 방침을 정하자, 민자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회기 안에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선거법 개정에 대한 당의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정치 일정보다는 대통령의 얼굴 세우기가 우선 고려할 대상이 된 것 이다.
 민주당도 선거법 외의 문제에 선거법을 연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은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과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 등비민주 악법을 이번 회기 안에 일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 개정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안기부법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이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이 같은 자세를 보여 왔기 때문에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을 위한 당 정치특위의 활동이 지지부진했다. 특위가 열리는 회의장은 언제나 썰렁했고 좀처럼 당의 개정 법률안을 확정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정치관계법 심의특위가 본격 가동된 지 20일이 지난 11월24일에야 비로소 당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회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에서 여야는 이번 회기가 20여일 남은 현 시점에서도 선거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안기부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만 입씨름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안기부법 개정문제에 대해서는 여야의 입장이 워낙 달라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민자당과 민주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통합 선거 법안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민자당이 양보해 안기부법 개정과 함께 일괄처리하거나, 민자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강행처리하는 것이다. 민자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회기 내에 정치개혁법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안기부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다른 정치관계법에 대해서는 논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결론은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안기부법과 맞바꿀 가능성도
 민주당이 안기부법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양보하거나 민자당이 강행처리할 경우, 통합 선거법안은 현재의 민자당안대로 확정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 민자당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모두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또 민주당이나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협의회'등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오랫동안 숙의해 내놓은 안들이 제대로 토의 조차 되지 못하고 빛을 볼 수 없게 된다.

 청와대에서 영국의 부채방지법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민자당안은 깨끗한 정치를 실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자당 내에서도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후보의 존. 비속이나 운동원이 불법을 저질렀을 경우 당선을 취소하는 연좌제는, 무더기 탈법. 불법 제소 사태를 불러 현행 선거법의 포괄적 제재 조항과 마찬가지로 자칫하면 선거법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되는 형편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법안에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또 민주당과 정사협은 검사가 탈법. 불법 선거운동을 기소하지 않을 경우 견제할 수 있는 재정 신청권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가 우리 정치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은 벌써부터 있어왔다. 선거 법안이 졸속 처리되면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게 된다.

 선거법 개정이 졸속 처리된다면 현직 국회의원들의 이기심 때문에 일그러진 조항들이 여론의 점검을 받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다. 현재 민자당안과 민주당안은 모두 공무원이 현직에 있으면서 자치단체장 선거에 촐마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회의원은 현직을 유지하면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공무원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야현직 의원 가운데는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거법 개정은 어떤 다른 문제와 연관짓지 말고 따로 떼어 심의하는 게 마땅하다. 선거법 개정은 '대통령 뜻'이나 안기부법 개정보다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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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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