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비단길’ 9월 개통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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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연결도 구상

 중국 횡단철도로 한반도-유럽 간 육로 혁명
 일본 도쿄에 사는 일본청소년교육협회 이사장 모리타 이사이씨(森田勇造·51)는 지난 4월30일 동경역에서 야간침대열차인 ‘아사카제(朝風)3호’를 탔다. 열차를 타고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가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꼭 한달후 그는 목적지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시모노세키에서 부산까지의 현해탄 뱃길을 빼면 장장 2만km에 달하는 철도여행이었다. 중국정부의 특별한 배려가 그나마 여행거리를 이 정도로 줄였다. 중국정부가 아직 공식적으로 개통되지 않은 ‘중국 횡단 철도(TCR)'의 시승을 허가해주었던 것이다.

 모리타씨의 이번 여행은 더 짧아질 수도 있었다. 그는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문산까지 올라갔다가 분단의 장벽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을 거쳐 개성까지 돌아와 철도여행을 계속해야 했다. 비록 비무장지대를 철도로 건진 못했지만 그는 분명 한국을 ‘통과’했다.

 중국 횡단철도가 9월 개통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한국 종단철도(TKR)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횡당철도는 중국 산동반도 가장자리에 있는 蓮雲港에서 중국내륙과 소련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철길이다. 신해혁명을 주도한 孫文이 중국을 횡단하여 서역을 거쳐 구 소련과 유럽이 연결되는 교역로를 꿈꾼 이후 ‘새 비단길 건설’은 중국정부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중국 횡단철도는 공산정권 수립 후에 한때 건설되기도 했으나 중·소부쟁으로 곧 중단됐었다. 85년 5월 건설이 다시 시작됐지만 올해 상반기로 추정됐던 개통시기는 계속 늦춰져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보다 경제성 높아

 오는 9월 중국 횡단철도의 개통사실이 확인된 것은 지난 4월 중순 중국대외무역운수공사와 중국 횡단철도 운수소조측 관계자 9명이 내한했을 때였다. 이들은 개통 전에 한국 화주들이 중국 횡단철도를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를 사전에 조사하기 위해 방한했었다.

 기존의 해상 수송로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이용해온 화주들이 중국 횡단철도의 개통에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한진그룹 종합물류연구소 金快男 연구원은 “운송거리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보다 2천5백km가량 줄어들어 비용도 20% 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동안 한국의 무역업자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기피해온 이유는 겨울에 한파로 인하 상품이 파손될 우려가 있는데다 상품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없어 애를 먹기 때문이었다. 방한한 중국 횡단철도 관계자들은 중국 횡단철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문제점들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동안 중국 횡단철도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돼온 것은 유럽까지 화물을 운송하려면 중국 횡단철도 종착역에서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화물을 옮겨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 횡단철도가 표준궤(1,435mm)인 데 반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철도폭이 넓은 광궤(1,520mm)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러시아를 방문했던 해운산업연구원의 柳奭馨 연구위원은 이 문제도 해결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연결구간에 표준궤와 광궤를 모두 깔아놓고 화차의 바퀴를 들어올려 갈아끼우면 화물이 들어 있는 컨테이너를 옮겨 싣지 않아도 되게 해놓았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 중국 횡단철도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 시베리아 횡단철도측도 주요한 고객인 한국 무역업자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독립국가연합의 정정불안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이용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데 반해 한국화물의 이 철도 이용량은 85년 5천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단위)에서 90년에는 2만TEU로 연 평균 30%의 높은 증가세를 보여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측은 운송기간을 현재의 25~35일에서 20~23일로 단축시키고 서비스도 높이겠다며 화물 지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한국수송업체가 시베리아 횡단철도 운영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해운산업연구원과 러시아의 국가해운개발원은 지난 5월19일에 ‘한·러 해상운송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운송 발전전망’을 올해 11월까지 공동연구하기로 했다.

 6개월 공사로 남북한 철도 연계 가능

 중국 횡단철도의 개통이 한국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 가운데 하나는 이것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중심으로 동북아 국가의 철도를 연계시킬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횡단철도의 완공을 1년여 앞둔 시점인 작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7차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에서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동북아 5개국을 잇는 ‘유라시아철도(환아시아철도)’의 건설을 제의한 적이 있다. 이 계획이 구체화되기만 한다면 한국의 경부선과 호남선을 북한의 경원선·경의선과 잇고 이를 다시 중국 횡단철도나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연계시키는 방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ESCAP에서는 유라시아철도외에 ‘아시아 하이웨이’구상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진전되지 않고 있다(그림참조).

 이 제의에 앞서 작년 3월17일 수송업체의 모임인 한국국제복합운송협회는 이미 한국 정부가 남북한 철도의 연계를 적극 추진해줄 것을 건의한 적이 있다. 이 협회가 당시에 작성한 ‘한·소 화물 수송경로 개선 건의서’에 따르면 한국의 유럽과 북방지역에 대한 수출입 화물을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수송하기 위한 부산~나훗카 사이의 해상운송 대신 북한철도를 이용해 연계수송하게 되면 전체 수송기간이 약 20~25시간 정도 줄고 선적과 하역에 따르는 비용은 물론 부산항만의 체증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작년 5월 이 협회는 이 구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통일원에 북한주민접촉승인신청을 냈으나 거부당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교통부가 나름대로 복안을 가지고 있는 만큼 민간차원에서 일을 진척시키는 것은 혼란만 초래한다며 반대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정부도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경의선과 서울에서 출발해서 원산을 거쳐 청진 나진을 통과하는 경원선의 복원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의선은 중국 횡단철도를 일부 이용할 수 있고, 경원선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기점에 연결될 수 있다. 특히 경원선은 동북아경제협력 구상의 중심무대로 떠오르는 두만강지역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석형 연구위원은 “남북한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 한국 종단철도는 한국과 유럽 간 화물운송에 가장 경제적인 경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북한 당국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은 적잖은 통과료 수입이 보장된다. 또 북한 당국은 두만강유역 개발 초기단계에서는 합작에 의한 가공무역보다는 중계무역이 나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중계무역을 위해선 운송수단이 무엇보다 절실해진다. 이때문에 몇몇 전문가들은 남북한 간의 정치적인 쟁점과는 별도로 남북한을 잇는 철도가 조만간 복원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지난 5월 두만강유역개발 사업 현지조사차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교통개발연구원의 오재학 연구위원은 “선로 노반이 건재하고 경원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잇는 두만강철교가 개통돼 있기 때문에 한국 종단철도를 개설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이 연구원의 교통계획실은 경의선과 경원선을 복원하는 것은 6개월간의 공사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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