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체질 광고가 제 제살까지 깎는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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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 · 광고사 · 광고공사 제각각…부실 부채질



경기침체로 TV광고비 감소…제도개선 시급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도 국내 광고시장은 최근 5년간 연평균 25%이상 성장해왔다(표 참조). 92년 1~6월까지의 광고비는 모두 1조2천1백85억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91년 광고비의 57.6%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91년에 비해 15%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의 광고비 증감 추이를 보면 성장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표 참조). 2 · 4분기의 광고비 6천1백13억원은 1 · 4분기에 비해 겨우 0.7% 늘어난 액수다. 특히 신문은 1.4% 증가에 그쳤으며, 텔레비전은 마이너스 3.4% 성장을 기록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이 소화하는 광고비는 국내 총 광고비의 90% 가까이 된다. 한국광고데이타(주) 車炳善 국장은 “텔레비전 매체가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해의 성장은 오히려 뒷걸음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차국장은 “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업이 광고비를 축소할 것으로 보여 금년 하반기는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광고회사는 광고주를 대신해 광고를 기획 · 제작한 뒤 각종 매체에 광고를 실어 제작비와 수수료를 받는다. 광고회사의 주된 수입원은 수수료다. 수수료는 광고주가 집행한 광고비 일부를 광고회사에 주는 것이다. 가령 ㄱ광고회사가 ㄴ전자회사의 광고를 기획 · 제작해 ㄷ신문에 1천만원짜리 광고를 게재했다고 하자. 신문 · 잡지 등 인쇄매체의 수수료는 15%로 정해져 있다. ㄱ은 ㄴ으로부터 광고요금 1천만원을 받아 수수료 1백50만원을 떼고 나머지 8백50만원을 ㄷ에 준다.

 방송광고의 수수료는 이보다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받는다. 방송광고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이하 광고공사)가 정해놓은 가격과 시간대에 광고를 넣도록 돼있다. 수수료도 광고공사를 거쳐서 받는다. 수수료 비율은 계열사냐 비계열사냐에 따라 다르다. 가령 삼성그룹 계열의 제일 기획이 삼성그룹의 광고를 대행하면 계열이고 그룹과 상관없는 기업의 광고를 하면 비계열이다. 비계열의 경우 텔레비전과 라디오 모두 11%이지만 계열사일 때는 텔레비전 7%, 라디오 9%이다.

 ㄱ광고회사가 ㄴ전자회사의 광고(비계열)를 대행해 ㄷ방송국에 1천만원어치 광고를 보냈다고 하면 ㄱ광고회사는 ㄴ으로부터 1천만원을 받아 광고공사에 준다. 광고공사는 이중20%를 뗀 뒤 ㄷ방송국에 8백만원을 광고료로 지불한다. 광고공사는 20% 중 11%에 해당하는 1백10만원을 ㄱ광고회사에 수수료로 준다. 차액 90만원은 광고공사가 운영비와 공익자금으로 쓴다.

 

 광고공사 구태의연하다

 광고회사는 어음의 만기일 차이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기업의 자금난이 심각한 요즘 1백80일짜리 어음으로 결제하는 광고주가 적지 않다. 그러나 광고회사는 90일짜리 자사 발행 어음을 광고공사에 가져다줘야 한다(인쇄매체에는 1백20일짜리 어음). 광고회사는 광고주와 광고공사(또는 매체) 사이에 끼여 2~3개월의 이자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다.

 광고계 일각에선 광고공사의 광고단가 책정과 시간 배정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광고비를 결정하는 것은 시청률이다. 미국의 경우 3개월 단위로 시청률을 조사해 그것을 기준으로 광고비를 올리거나 내린다. 광고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뛰면 포기하는 광고주가 생긴다. 방속국의 수입은 전적으로 광고비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낮아 광고주가 떨어져 나가면 프로듀서를 해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경쟁이 없다. 광고공사가 가격과 시간을 통제하니까 방송국은 항상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는다. 이런 제도가 계속되는 한 방송과 광고의 질적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모 중견 광고사의 간부의 말이다.

 유한킴벌리 오인현 부사장도 “81년에 설립된 광고공사가 수행해온 기능에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아직도 그것이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부사장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 자유경제인 만큼 경쟁 속에서 합리성을 찾아야 한다”며 광고공사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광고공사는 “광고주 입장에서 자기 돈을 내면서 부탁하는 입장이니 분통이 터질 만하지만 일부 인기 시간대만을 선호하는 광고주의 인식에도 비합리적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 광고계가 안고 있는 또다른 어려움은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동반자 관계를 못 맺고 있다는 점이다. 모 광고회사의 광고기획자는 얼마 전 광고주 중 일부 까탈스러운 회사 임원의 콘도미니엄을 예약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만의 하나 광고가 끊길까봐 ‘따까리’ 노릇을 한 것이다. 광고주 중에는 제작비를 후려친다거나, 드문 경우지만 수수료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광고주와 광고회사는 동반자“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광고대행사 ‘디디비 니드햄 디아이케이 코리아’ 李柄仁 사장은 “광고에 필요한 자료를 내주지 않고 ‘대행사가 뭘 아느냐’하는 식으로 심하게 간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미국에서는 광고회사가 손해를 보면 광고주가 따로 돈을 주어 적자를 보전해준다”고 말했다. 광고회사가 살아야 더 좋은 광고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동반자의식이 정착돼 있다는 것이다.

 92년 7월1일 현재 광고공사로부터 방송광고 대행사로 인정받아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광고회사는 1백개이다. 이중 기업이 세운 계열광고회사는 모두 33개에 이른다. 이들 계열광고회사가 91년 방송광고비에서 차지한 비중은 70%를 웃돌았다. 91년 광고비를 많이 쓴 기업은 삼성 럭키금성 대우 등 대기업 계열 회사들이다(표 참조). 이중 대우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는 모두 광고회사를 갖고 있다. 대웅제약 같은 제약회사도 광고회사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계열 광고주의 물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독립 광고회사들은 설 자리가 좁다(64쪽 기사 참조). 굵직굵직한 광고주들이 너도나도 광고회사를 차리는 바람에 광고업계에 비경쟁적 풍토가 자리잡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광고시장 규모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크다. 80년 2천7백52억원이던 광고비는 91년 말 2조원을 넘어섰다. 국민총생산(GNP) 대비 광고비는 80년 0.76%에서 90년 1.2%로 증가했다. 미국의 2.4%에 비해서는 훨씬 낮지만 일본의 1.3%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우리의 광고시장이 커짐에 따라 개방요구도 거세졌으며 정부는 91년 1월 광고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일본 등의 다국적 광고회사는 현지법인없이 한국 광고업체와 합작하거나 지분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일기획 김낙희 기획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독립형태의 다국적 광고회사 6개사만 보더라도 91년의 총취급고는 5백76억원으로 2백38억원에 비해 2백42% 성장했다(표 참조). 김 실장은 “계열 광고회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뺀 나머지는 다국적 광고회사의 표적”이라며 “오는 95년의 전면개방을 앞두고 매우 심각한 경쟁상황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국적 광고회사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광고 제작사인 유니콤 李源祚 사장은 “한국시장에서 다국적회사의 상품이 널리 유통되지 못하는 점이 장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일보젤 박승순 이사도 당분간은 한국의 광고시장을 잠식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2~3년 뒤 우리 국민이 외국제품에 친숙해지고 국내 광고주의 인식이 바뀌면 다국적 기업의 합리성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디비 니드햄 디아이케이 코리아 이병인 사장은 “다국적 광고회사와 손잡고 일하는 동안 선진 광고기법과 과학적 접근방법을 배워 국내 광고회사들도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 광고업계의 상황은 역설적이다. 광고회사는 광고공사의 간섭이 싫으면서도 그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계열광고회사 위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전체 광고업계가 왜곡된 면도 있으나 시장개방에는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된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시장개방의 여파가 두렵지만 개방이 도리어 학습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구조적 모순과 허약한 체질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국내 광고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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