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롱시장 ‘빈민돕기’ 바쁜 나날들
  • 박순철 편집국장대우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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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현지취재/비영리 회사 세워 생필품 공급…9월초엔 서울 나들이

 태국 수도방콕의 교통체증은 심각하다. 시내 서쪽 딘소거리의 시청청사에서 아침 8시30분에 잠롱 스리무앙 시장을 만나기 위해 시내 동쪽 람캄행 거리의 숙소를 떠난 것은 6시30분경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적어도 30분은 일찍 도착하리라는 느긋한 계산과는 달리 동서로 뚫린 뉴팻부리 거리에 들어선 택시는 움쪽달싹을 못했다. 지하철과 같은 입체적인 교통수단이 없는 이곳에선 길이 막히면 차속에 앉은 채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지난 6월 방콕 타마사트대학의 티라웃 교수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문제로 교통난의 해소를 지적한 사람은 응답자의 14%로 두 번째로 많았다. 첫 번째는 경제와 기본 생활문제였지만 교통난을 부패척결(12.5%)이나 민주발전(5%)보다 중요시하는 방콕시민들의 반응도 차속에 갇힌 채 길이 뚫리길 한없이 기다리다 보면 이해가 간다.

 지난 2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내건 가장 큰 명분은 부패추방이었고 부패척결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비정상적으로 부유한’ 정치인 11명을 골라냈다. 여기에는 쿠데타로 실각한 차티차이 전 총리를 비롯해 주요 정당의 쟁쟁한 정치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후텁지근한 우기의 날씨 못지않게 축축한 태국의 ‘정치장마’에서 한걸음 비켜 서 있는 것이 잠롱 시장이다.

 방콕 시청청사는 5층의 백색건물들이 ㅁ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2층에 있는 잠롱 시장의 사무실을1년만에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옛날 그대로 푸른 농민복차림으로 맞았다. 하루 한 끼니로 사는 사람같지 않게 탄력있는 발걸음과 환한 웃음이 여전했다. 다만 입고 있는 농민복에는 한두군데 물이 빠져 허옇게 된 곳이 눈에 띄였다. 그는 김용기 장로를 기리는 ‘일가기념상’의 수상자 가운데 하나로 뽑힌 것을 매우 기뻐하면서 9월초 부인과 함께 상을 받으러 서울에 가 1주일 정도 머물겠다고 밝혔따. 지난해 가을《시사저널》과 경실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로서는 한국과의 인연이 여러갈래로 깊어지는 셈이다.

 잠롱 시장은 1년 정도의 준비 끝에 얼마 전에 ‘세계에서 유일한’ 회사를 차려 문을 열었다. 이 회사의 태국이름은 사람들을 돕는 회사라는 뜻의 ‘보리삿 타오툰’이지만 영어로는 ‘유이한 비영리 회사’라고 표기된다. 이 회사의 창고와 사무실을 짓는 데 상금 2만달러를 쓴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왜 유일한가. 물건을 본전만 받고 되파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빈민들의 생계를 돕기 위한 잠롱 시장의 독특한 발상이 1년 정도의 준비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쌀 식용유 슬리퍼 모기장 플라스틱그릇과 같은 생활필수품ㅇ르 생산자로부터 직접 사들여 빈민들에게 원가 그대로 되판다. 자본금은 1백바트(3천원)짜리 주식을 팔아 마련했는데 주주에게는 아무런 배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기금의 은행이자로 경비를 충당하며 이를 줄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잠롱 시장은 트럭운전으로 봉사르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면 시청에 제일 먼저 출근해 자신의 열쇠로 사무실을 열고 들어가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그로서는 쉽지 않은 시간을 내는 셈이다. 여전히 친구 집에서 살고 있는가를 묻자 그는 “그렇다”고 하면서 ‘보리삿 타오툰’의 창고옆에 오두막을 지어 이사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와의 인터뷰는 결국 부패문제로 돌아왔다.

당신은 부패척결에 관한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쿠데타는 부패추방이 큰 명분이었는데) 쿠데타가 부패척결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성과를 거두는 방법일 수는 있다.

정부의 부패를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어려우 질문이다. 우선 국민을 교육시켜야 한다. 구긴들에게 부패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모든 사람이 부패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모든 개인은 욕망을 조금씩 줄여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새 인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눌 수 있으며 부패하지 않는다. ‘보리삿 타오툰’이 이루려는 것도 바로 이런 나눔의 정신이다.(그는 이 회사의 모금이 이미 7백50만바트에 달했다고 밝히면서 1천만바트까지 모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잠롱 시장은 부패척결의 실천적 방법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책임자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도시의 시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정직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지식과 경험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엄격하고 청빈한 생활은 이미 국제적 평판을 널리 얻기에 이르렀다.

 정변이 일어나고 군부 집권세력이 부패를 이유로 기존 정치인들을 심사하는 격동속에서도 그와 방콕시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방콕시의 한 고위공무원은 쿠데타로 잠롱 시장의 시정운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느냐느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치인들 가운데 장롬 시장만이 자기발로 굳게 서 있을 수 있다. 그는 순수하기 때뭉네 아무도 그의 흠을 발견할 수 없다.”

 앞에서 인용한 여론조사에서는 방콕시민들이 다음 태국총리로 누구를 가장 선호하느냐는 항목이 있었다. 잠롱 시장이 1위로 응답자 가운데 24%가 그를 꼽았다. 2위인 차왈릿 장군은 14.5%의 지지르 받았다. 그가 방콕시장으로 재임하는 지난 몇 년 동안 방콕의 교통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대도시의 모든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방콕시청이 깨끗해졌듯이 ‘보리삿타오툰’의 붉은색 트럭들이 거리를 달리면서 ‘나눔의 마음’들이 방콕시민에게 번져가면 방콕은 더욱 인간적인 도시가 되지 않을까. 그것을 아는 방콕시민들이 그가 태국의 총리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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