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관념에서 사랑의 세계로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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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비>

이승우 장편소설 책나무 펴냄

 8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승우씨(33 · 사진)가 최근 전작장편소설 《따뜻한 비》를 펴냈다. 굵은 활자로 ‘이승우 연애 소설’이라고 표지에 새겨진 이 장편은 문단에 작지 않은 뉴스고 되고 있다. 기독교의 세계관에 바탕해 80년대의 정신적 풍경을 그려내 주목을 받아온 젊은 작가의 궤도 수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차가운 관념에서 따뜻한 사랑의 세계로’. 이승우의 《따뜻한 비》는 80년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적 반성이다. 80년대를 광주컴플렉스와 그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과학적 상상력으로 통과해온 젊은 작가들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어떤 허탈감을 느꼈다. 80년대 작가로 손꼽혀온 한 작가는 “당신 소설에는 왜 사랑이 없느냐”는 독자의 질문이 화두처럼 박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80년대의 소설문학은 이데올로기가 주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연애소설이란 용어마저 평가절하되었다.

 이승우씨는 “영양과잉의 음식물로 넘치는 이 기름진 시대에 영양가 없는, 그러나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되는 무기물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의 과잉으로 기름진 시대, 상품화의 회로 속에 편입된 사랑의 상표들로 비만증세를 보이는 시대 속에서는 오히려 무기물이 가장 좋은 영양소라는 반어법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신하려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랑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희, 자신의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명혜, 한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무서운 집념을 보이는 시훈, 사랑하는 여자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죽어가는 한효 등이 보여주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사랑법은 “사랑은 길인 동시에 벽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되고 있다. (시대)상황이 사랑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켜가는가를 다양한 갈등구조 속에서 펼쳐보이는 이 소설은 사랑과 그 사랑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잠언집으로도 읽힌다. 《따뜻한 비》는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모티브이며 테마인 연애소설의 ‘새삼스런’ 복권요구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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