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모개’ 미디어 전쟁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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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질서를 뒤바꾸려는 두 사건으로 한국 언론은 무한 경쟁과 무한 변혁의 재편성 시대를 맞고 있다.”

문민시대의 개혁이 초래한 바람든 세태는, 도토리 한개 떨어지는 소리가 천변으로 와전되어 숲속의 모든 짐승이 덮어놓고 광풍질주한다는 이솝 우화 한토막을 생가게 하는 정경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서 생겨난 가장 귀에 익은 구호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이다. 삼성기업집단 총수 이건희 회장이 김영삼 정부 신경제하의 신경영을 고창하며 내놓은 이말은 꽤 그럴싸하게 들렸음인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런데 요금 언론계에도 기존 질서를 모두 뒤바꾸려는 범상치 않은 두가지 일이 벌여졌다.

 첫번째 사건은 핫 미디어를 향한 쿨 미디어의 전에 없던 공격이다.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단어로 매체가 인간의 의미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한 사람은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이다. 그는 전달하는 정보의 정세도(精細度)가 낮아 수용자의 높은 참여도를 요구하는 매체로 텔레비전ㆍ전화ㆍ만화를 꼽고 이를 쿨 미디어로, 반대로 정보의 정세도가 높아 수용자의 낮은 참여도를 요구한 매체로 활자ㆍ영화ㆍ사진을 들어 핫 미디어로 구분했다. 무엇보다 맥루한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매체 그 자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 세대 전에 주장하며 20세기 전자시대를 선구적으로 예언한 사람이었다.

TVㆍ신문 싸움은 정치 권력의 대리전인가
 그런데 한국에서 쿨 미디어인 텔레비전이 핫 미디어인 인쇄매체를 사상 처음으로, 그것도 아주 호되게 때리고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왜 문화방송은 4월13일부터 연 닷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주공 대상으로 삼아 신문사들의 발행부수 조작과 광고료 사잉의 상관성 따위를 들어 맹공한 것일까.

 물론 경영전략상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KBS 제1 텔레비전이 내놓는 6백억원 규모의 광고 물량을 놓고 신문과 텔레비전의 이해가 부딪쳐 싸움이 일어난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정치 권력과의 상관 관계에서 나온 원인일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틈만 있으면 언론 개혁, 특히 신문구조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해온 터이므로 기 기류를 감지한 문화방송 최고 경영층이 신문을 향해 대리 전쟁을 시작했다는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한국 언론계의 기본 질서를 바꾸려는 두번째 사건은 핫 미디어인 <중앙일보>가 일으킨 무한 전쟁이다. 연공서열을 깬 파격적 인사를 단행한 <중앙일보>의 새 경영층은 말 그대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려는 듯한 기세로 대변혁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에 나붙은 슬로건 ‘신문 개혁 진행중’이나 ‘조령모개(朝令暮改)를 하자’ 다위가 그 변혁의 강도를 알린다.

 <중앙일보>의 거창한 신문 개혁 내용을 열거해 보면 이렇다.

 △무한정 취재비 사용 △최고의 대우 △전체 인원 10%의 지속적인 재충전 교육 △각부 법인카그 발급(무제한 운영비) △핸드폰 무제한 지급(현재 3백여대 지급) △신청자 자택에 팩시밀리 설치 △해당 부장의 해외취재 전결 △중역실에 기능 책상 배치 △여성부 신설 △수습기자 채용때 여기가 30%, 이공계 70% 선발 △수습기간 6개월을 2년으로 연장하고 전문 해외교육 실시(이들은 '제2창간 1개생‘이 된다) △노조 시안을 수용한 대기자 채용제도 등.

자본의 무한 투입은 독립성 보장 없이 성공 못해
 이 화려한 변신에 대해 <중앙일보>측은 언론계 차원을 완전히 뛰어넘은 변혁이라고 말한다. 한국기자협회는 <중앙일보>의 과감한 개혁을 두고 기대 속에 결과를 주시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우리는 이제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 사이에 일어난 싸움과 핫미디어가 일으킨 전쟁을 통해 무한 경제와 무한 변혁의 재편성 시대를 맞고 있음을 실감한다.

 문화방송 내부는 한국 텔레비전이 최초로 신문에 선전포고한 일에 대해 스스로 격앙되고 고무된 분위기라고 한다. 드디어 신문도 방송 뉴스의 대상으로 요리되니 분기점을 넘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치 권력은 쿨 미디어인 텔레비전의 강력한 소구력을 결코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이 인쇄매체와 진정한 의미의 기나긴 싸움을 하자면 공영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핫 미디어의 세계에 무제한 자본 투입의 승부수를 던진 <중앙일보>도 그렇다. 뉴스는 지적 생산품이다. 뉴스는 예술이나 진리라는 말처럼 뜻하는 것이 너무 다원적이다. 뉴스는 좁은 의미로는 비누나 구두처럼 간단한 생산품이다. 이 경우 자본 투입 놀리는 설 자리가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뉴스는 질적으로 포착하기 어렵고 변화무쌍하여, 인간의 삶 자체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그 한계가 없어 돈으론 안된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자체도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하여 1등 신문이 되라고 촉구했다고 들린다. 그렇지만 자본이 신문의 공정성과 공정 보도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보장과 장치가 없고서는 자본의 무한 투자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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