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한학설 다시 살아났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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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유지 원천 ‘세포’ 아닌 ‘경락’ 규명 … 27년만에 외국서 입증



 “진리는 죽지 않는다. 다만 잠시 세인의 인정을 받지 못할 뿐이다.“ 북한 의학자 金鳳漢 교수가 1960년대에 발표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봉한학설'에 대한 이런 비유는 어쩌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그의 학설이 갑자기 폐기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학설을 전면적으로 부활시킬 만한 후속연구가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후속 연구는 아니지만 그의 학설이 갑자기 폐기되기에 이른 전후 사정이 한 민간 연구자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드러나 이 학설에 대한 재검토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경락의 대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던 봉한학설은 동양 전통의학의 기본 개념인 경락의 실체를 북한의 김봉한교수(평양의대 생물학) 팀이 규명해 이름이 붙여졌다. 북한 내각 직속 기관인 경락연구원의 원장이기도 했던 김봉한 교수는 1950년대 말부터 경락의 실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모두 다섯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였던 전자현미경 · 분광분석기 · 방사성동위원소 추적장치와 현대 과학의 여러 방법론을 사용해 이루어진 연구 결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경락의 실체를 규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 동양의학에서 경험적으로만 존재했던 경락은 혈관이나 임파선과는 다른 제3의 맥관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전기 전도도가 높고 내부는 디옥시리보핵산(DNA) 이나 리보핵산(RNA) 등의 생체활성물질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경락의 분포는 전통의학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방대한데, 신체의 표면은 물론 내장기관, 중추신경 계통, 혈관 등 신체의 거의 모든 부분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해명되었다.

 이 발견의 중요성은 전통의학에서 경락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파악하면 이해된다. 경락은 동양 전통의학에서 진단과 치료의 중심개념이다. 위장병을 치유하기 위해 무릎 바깥쪽의 족삼리혈에 침을 놓는 것은 위장과 족삼리혈을 연결하는 어떤 맥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경락은 동양의학에서는 생명 에너지인 氣의 순환 통로로서 표피의 경혈(침 놓는 곳)과 내장기관, 눈이나 귀 등 신체 각 부위와 내장기관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맥관으로 가정되어 왔다. 경혈 부위에 침을 놓으면 氣가 발동해 해당 내장기관의 활동을 도와 질병을 치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양의학은 경락의 물질적 실체를 입증하지 못해 여러가지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학 자체의 발전이 지체됐고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미신이나 비과학적 학문이라고 별시를 받아왔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김봉한 교수의 발견은 동양의학의 과학성을 입증한 것이 된다. 그러나 봉한학설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서양의학의 '비과학성'을 역으로 증명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1965년 발표된 제4논문에서 '산알이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산알이론이란 경락의 내부를 흐르는 소립자인 '산알(살아있는 알이라는 우리 말 표현. 주성분은 DNA로 이루어져 있다고 함)'이 자기증식 과정을 거쳐 세포로 발전한다는 것으로, 생명체의 최소 단위는 세포라는 서양의학의 근본적인 토대를 무너뜨리는 획기적인 학설이다.

60년대에 북한 김봉한 교수 창시

 경락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산알은 경락 속에서 서로 융합해 세포핵으로 발전해 세포 속으로 들어가고, 세포 속에서는 다시 산알로 분열돼 경락 속으로 들어오는 역동적인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렇게 보면 세포는 생명체의 최소 단위인 산알운동의 과도기적 존재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봉한학설이 발표됐을 때 세계 의학계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산알이론은 나름대로 몇천년의 역사를 유지해온 서양의학이 '반쪽 의학'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고, 또한 이로써 동 · 서 의학의 대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알이론이 발표되고 같은 해 제5논문인 '혈구의 봉한산알, 세포환'이 발표된 때가 봉한학설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2년 뒤인 1967년을 고비로 봉한학설은 갑자기 사라졌다. 북한의 선전 기관이나 간행물에서 김봉한과 그의 봉한학설에 대한 언급이 없어졌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막연히 "북한이 1960년대에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다고 선전하다가 나중에 허위 날조로 판명됐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민간 연구자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이 학설이 객관적인 검증에 의해서가 아닌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폐기됐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현재 정신세계사라는 출판사의 기획위원인 공동철씨는 지난1990년 미국의 한 의학 서적에서 봉한학설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다. 그후 그는 1년여의 조사 과정을 통해 그동안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학설의 전후 문맥을 밝혀냈다. (그의 조사 내용이 최근 학민사에서 《김봉한》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공동철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봉한은 1941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잠시 지금의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과전문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또는 납북)한 학자였다. 그와 경성제국대학 동기동창생인 한격부 박사(서울시립요양원 원장)의 증언에 따르면 대학 시절 김봉한은 "뛰어난 두뇌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지닌 진지한 학구파 대학생이면서도 당시 첨단과학 분야인 물리학 수학 · 생물학 등 서양의 여러 학문에 통달한 위인 후보생'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없는 사실을 날조할 인물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김교수 숙청 가능성 높아

 봉한학설이 학문외적인 이유로 폐기됐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청진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월남한 김만철씨의 증언에 의해 확인됐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봉한 교수의 경락 연구는 당시 북한 권력 서열 4위인 박금철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는데 1967년 박금철이 갑산파 숙청사건으로 밀려나면서 김봉한 교수도 숙청됐다는 것이다. 숙청된 후 김봉한 교수의 행방은 분명치 않다고 그는 말했다. 학설이 폐기된 데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 고층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또는 숙청되어 아오지탄광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서양의학계에서 봉한학설을 인정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인 金完熙 교수는 1963년경 봉한학설로 인해 세계 의학계가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뢰해 김봉한 교수의 논문을 입수 검토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많은 국가가 봉한학설을 검증하려 했지만 대개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김봉한 교수가 실험 과정에 대한 자료를 상세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공동철씨는 서양의학계의 보수성, 동양의학에 대한 멸시 풍조가 근본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김봉한 교수의 연구는 최첨단 실험 장비를 활용해 이루어졌고, 의학 뿐 아니라 현대과학의 여러 방법론을 종횡무진 구사했기 때문에 동양의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부족한 당시의 서양의학계에서 봉한학설을 검증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어느 쪽의 해석이 맞는지 현재로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최근들어 서양의학계에서 봉한학설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학설의 복권과 관련해 주목된다. 1979년 미국 트리 오부 유니버시티 출판사에서 발행한 《에너지매터 앤드 폼》, 1988년 베어 앤드 컴퍼니에서 발행한 《바이브레이셔널 메디신》이라는 책에는 봉한학설이 자세히 소개되었고 또 높이 평가되었다. 프랑스의 연구자 피에르 드베르나쥴은 1985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방사성 테크니튬 99㎎을 경혈에 주입하고 감마카메라로 추적해 봉한학설의 타당성을 입증했다고 보고했다. 또 공동철씨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서양의 생물학계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세포 내의 '미세소관'이 봉한 학설에서 그가 주장했던 세포내 경락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부분적인 복권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봉한학설은 관계자 사이에서 이제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봉한학설을 깊이있게 접했던 사람은 그 학설이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경희대 김완희 학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학장은 "개인적으로 김봉한의 발견 내용을 확신하고 있다"며 "언젠가 그의 연구가 빛을 보게 되면 세계 의학계의 판도가 뒤집어진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우뚝 서게 될 것이다"하고 주장한다. 공동철씨도 "봉한학설이 앞으로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견으로 재평가될 날이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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