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 깎아먹기, 신문 증면경쟁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고 쓸어담기 위해 ‘부록’ 몇장으로 현혹…도태과정 밟은 뒤 독과점시대 다시 올 듯

‘죽느냐 살아남느냐’의 신문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월(일)요판 발행으로 점화된 중앙일간지들의 무한경쟁. 특히 동아 조선 중앙 한국 4개지간의 자존심 대결은 최근 증면·부록싸움으로 발전하면서 그 양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각 신문의 1면 왼쪽자리에는 그날의 특집판 발행을 알리는 요란한 社告가 거의 날마다 실릴 정도다. 이제 신문이 얼마나 더 두꺼워질것이며 어떤 별지부록이 또 덤으로 끼워질 것인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문의 무제한 출혈경쟁에 불을 붙인 것은 한국일보의 월요판 발행. 6·29이후 신생언론사의 잇따른 출현과 함께 카르텔(지면·가격담합)이 깨지고 자율경쟁체제로 접어들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조선일보의 강력한 패권주의에 대항, 한국일보가 지난해 7월3일 과감한 전략으로 띄운 승부수였다. 12면에서 16면, 16면에서 20면으로의 증면경쟁에서 항상 선두주자임을 과시해온 조선일보로서는 충격이 아닐수 없다.

 독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내외의 월요판에 대한 환영은 대단하여 근무조건 악화를 내세운 신문사 종사자들만이 유일한 월요판 반대자로 비쳐질 정도였다. 객관적 통계로 볼 수는 없지만 한국일보측이 밝힌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 동안의 부수신장세가 평균 15%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보면 ‘신문 없는 월요일’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방 등 접객업소에서는 월요일에도 신문이 나오는 한국일보를 당시 크게 선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격을 당한 조선일보는 그러나 즉각 월요판 발행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다른 중앙일간지도 그 효과를 애써 평가절하하면서 ‘관망’했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랬을 뿐 속으로는 언젠가는 필연적인 무휴발행 준비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당시 스포츠조선 창간작업이 걸려 있었고 다른 신문들은 인쇄시설, 보급망등의 여건  때문에 바로 뛰어들 수 없었을 뿐이다.

 독자수로는 여전히 차이를 두고 있으나 ‘월요일에도 신문이 나온다’는 한국일보의 선전공세에 조바심을 내고 있던 조선일보는 드디어 올해 3월5일 월요판을 찍기 시작했다. 한국일보에 8개월 뒤진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결정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서울(3월12일), 중앙(3월25일), 동아(4월1일) 등이 차례로 휴일자(석간인 중앙·동아는 일요일 조간) 발행에 들어갔다.

 월요판이 희소성을 상실하자 한국일보는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기획했다. 4월22일부터 월요일 아침에는 8면짜리 ‘여성저널’을 끼워 넣어 주 1백56면 발행에 들어갔다. 보너스 읽을거리 싸움에 신호탄을 올린 것이다.

 조선일보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6월4일부터 역시 8면짜리인 ‘월요경제’ 부록을 내놓았다. 싸움은 점점 상승작용을 일으켜 7월1일 한국일보는 ‘매일 24면 발행’을 선언, 경쟁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 갈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월구독료는 4천원에서 5천원으로 인상했다.

 4일후인 7월5일, 조선일보는 이를 맞받아 ‘월요경제’에 이은 또 하나의 독자 사로잡기용 읽을거리를 내놓을 것임을 대형 社告로 예고했다. “현행 월정 4천원 구독료 변함없습니다”라는 약올리기 알림을 곁들여서였다. 그 읽을 거리 보너스란 7월7일자부터 매주 토요일 발행되고 있는 타블로이드판 16면 별지인쇄의 “TV저널”이다.

 두 조간신문의 혈투를 구경만 하고 있던 양석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처럼 한국일보의 매일 24면발행을 당장은 좇지 않되 평일 20면 발행에 주말부록을 찍어내는 데 동참했다. 중앙일보는 6월말부터 매주 금요일(지방은 토요일) 8면짜리 ‘주말광장’을 선보였고 동아일보는 매주 같은 날 12면짜리 ‘동아마당’을 부록으로 끼워 넣었다. 동아일보는 이로써 1일 최대발행면수인 32면 기록을 세운 최초의 신문이 됐다.

 

“저돌 전진에 눈치 살피다 부화뇌동”

 이처럼 작금의 증면·부록 경쟁은 한국일보가 선도하고, 조선일보가 약간의 간격을 두면서 신중히 응수하면, 중앙과 동아일보가 바로 따라 붙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 신문사의 간부는 이에 대해 “한국일보의 저돌적인 전진에는 일단 눈치만 살피다가 조선일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양 석간이 비로소 추격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울며겨자먹기식 증면동참이라는 것이다.

 독자층의 구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는 두 조간 서울신문과 한겨례신문(지난 6월1일부터 1일 16면으로 증면)은 논의로 치더라도, 앞의 4개 신문이외의 신생지를 포함한 다른 중앙일간지들은 아직까지 이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화약그룹이 인수하여 지난 8월1일 주식회사로의 새 경영체제에 들어간 경향신문은 빠르면 9월부터 경쟁대열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머지 중앙일간지 중 일부는 그동안의 경영악화, 광고부족 등으로 사실은 증면을 못하는 것인데, 이에 따라 살아남을 자와 도태될 자가 벌써 가려지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4개 신문이 증면전쟁의 주역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내놓는 증면기사가 타신문을 압도할 만한 정보를 담고 있는가. 社告주장처럼 독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올바른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다. 특히 언론학자들은 매우 비판적이다.  4개 신문이 요즘 덤으로 내고 있는 특집판의 면면을 살펴보자.

 8월31일자 조선일보의 ‘월요경제’, 한 자동차회사의 ‘판매왕’이 ‘신세대’란 컷을 달고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첫째 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 장을 넘기면 ‘기업’ 페이지로 2면에 걸쳐 제품개발 계약체결 공장설립 등 업계단신을 포함 특정사의 새 업종소개, 회사탐방, 재벌총수를 소개하는 ‘스타일’등의 기사가 채워져 있다. 가운데 두면은 직업과 부업 부동산 금융 주식 등 돈을 어떻게 많이 벌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며, 다음 장은 상품소개와 백화점 쇼핑 안내로 돈을 어디서 무엇에 쓸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한국일보의 ‘여성저널’은 생활정보와 어린이, 여성에 관한 얘기가 주종. 8월13일자를 보면 ‘金치’애기가 톱기사다. 한 여자대학 총장의 취임사 관련기사가 2개면에 걸쳐 다뤄지고 있으며 ‘기능껌시대’란 제목을 단 껌 신상품소개가 한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주말광장’은 생활·문화·화제 특집판. 여성기사와 경제기사 형식과 함께 생활·문화정보를  곁들이고 있다. 첫째면에 ‘이런 사람’란을 두어 대형 인물사진기사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주말TV저널 공연 영화 낚시 안내 등이 큼직큼직한 사진, 듬성듬성한 표와 함께 지면을 메우고 있다.

 

언론계 안팍에선 부정적 견해 지배적

 가장 늦게 끼어든 동아일보의 주말판‘동아마당’은 기업 투자정보 가정 건강 문화 연예 레저 등을 망라, 경제와 주말란을 합해 놓은 인상인데 여기에 정치화제 기사가 포함돼 있는 게 특색이다. 8월10일자에는 ‘정치인과 건강’(1盧3金의 체력) 같은 여성지에서 자주 보이는 기사도 눈에 띈다. ‘주간동아’라고 이름붙여 어색하지 않은, 일간지 부록의 잡지화 경향을 보이는 일면이다.

 이러한 부록기사를 포함한 증명된 내용에  대해 독자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쪽이 많겠으나 언론계 안팎에서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증면을 단행하면서 社告를 통해 주장하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의 제공’에 얼마나 충실한가, 시의성 없는 기사, 오락·흥미 위주의 과소비 지향적 기사는 없는가 하는 물음이 나오고 있다. 또 “넓혀진 지면 때문에 사진을 무턱대고 키우거나 홍보기사든 무어이든 되는대로 기사를 만들어” 질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언론학자들도 있다.

 7월19일자 언론노보는 ‘16면 발행시와 증면후 인원대비’표를 발표하고 지면의 질저급화는 인력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사합의로 각사에서 20∼30명의 경력·수습기자를 최근 충원하긴 했지만 여전히 태부족한 실정. 따라서 각사는 늘어난 면수만큼 증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편집·교정부의 경우에는 계약제라는 편법을 쓰면서까지 충원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부서는 늘어난 기사량을 기존인원에게 고스란히 떠맡기고 있다.

 특히 생활·문화·특집 기사 비중이 크게 늘면서 관련부서, 예컨대 ‘생활 및 생활경제부’등이 몇몇 사에서 신설되고 있는데 별도 충원 없이 현 인원을 쪼개 만들다 보니 기존 부서로서는 전보다 오히려 짐이 더 무거워지는 결과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스크랩(최근 또는 과거에 이미 자·타 신문에 보도된 기사)을 베낀 재탕물이나 심층성도 시의성도 없는 기사가 양산되는 큰 이유”라고 일선기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기자들의 체질개선이 근본적으로 미흡한 것에 책임을 돌리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획기적인 충원 없이 양적 경쟁으로 독자를 잡으로 하고 제살깎기의 무한경쟁을 범하고 있는 회사쪽의 책임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면 신문사가 증면을 하는 다른 목적은 없는가. 독자를 위하기보다 광고지면 늘리는 데 있다는 언론계내의 고백도 있다. 하루 2억원이상의 광고게재 실적을 올리는 유력지 경우에는 지면만 만들어주면 당장 몰려들 광고주가 있어 그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증면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공짜로 주고 광고료 챙기는 형국

 이렇게 되면 덤핑을 해야 할 만큼 광고가 달리는 신무의 경우도 증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비스의 양에서 떨어지니 독자가 달아날 것 같아서이고 또하나는 우리 신문계 특유의 자존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배달원을 포함한 보급소 관리·유지비 등 제조원가는 크게 상승하고 있으나 독자이탈 때문에 구독료를 그만큼 올릴 수도 없어 대신 광고를 많이 싣기 위해 면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증면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결과 우리나라 신문의 구독료 수입 대 광고 수입의 비율이 종래 평균 3대7이던 것이 요즘에는 2대8로 바뀌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신문은 공짜로 나눠주고 광고로 신문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례신문의 비율은 약 4대6이고 일본신문은 5대5로 알려져 있다. 광고쟁탈전은 따라서 신문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림픽 이후 크게 팽창된 신문광고시장이 최근 들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데다 광고주들이 종래와 달리 타신문사의 ‘협박’을 과감히 무시한 채 유력지만 선호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신문사간 광고물량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 그룹사 홍보실의 과고집행담당자는 “이제는 광고주들이 유가부수, 구독계층, 지역등에 대한 객관적 자료에 따라 게재매체를 결정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발행부수가 적거나 개성이 없는 신문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년에 민방이 나오고 유선방송이 시작되면 신문광고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문용지값 등 단순재료비와 인건비 판매 경비를 따지면 4면 증면시의 비용증가는 어림잡아 1부당 16원, 1백만부면 1천6백만원 정도가 된다. 최근 증면된 페이지에 실리는 광고는 값싼 광고물이 대부분인데 신문광고시장이 앞으로 더 어려워진다면 일부사의 경우에는 원가도 못 건지는,매우 위험한 출혈 증면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해 증면을 하고, 증면을 위해서는 또 추가 인쇄시설이 필요해 각 신문사는 分공장 설립과 CTS(컴퓨터 인쇄 방식)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설투자도 일부사의 경우에는 재정악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도심 교통체증으로 인한 서울 강남지역과 지방배달시간 단축 목적도 겸해 중앙일보는 문정동 제2사옥을 건설중이다. 한국일보도 평창동에 제2별관을 짓고 있다. 92년초 완공예정으로 충정로에 신사옥을 짓고 있는 동아, 2년내 전면 CTS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조선도 한강 이남에 분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머지 않은 장래에 신문업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음을 감지할 수 있다. 광고를 많이 따낼 수 있는 선두그룹은 증면을 통해 돈을 벌고 그것을 시설과 인력에 투자, 부수확장이 되면 다시 광고물량의 증가로 연결해 사세의 계속적인 신장을 향유하게 되지만 후위그룹은 증면과 시설·인력투자로 비용이 폭증하는 악순환을 거듭, 연간 몇십억에서 몇백억에 이르는 적자를 불러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광고유치를 위한 증면전쟁으로 거대한 신문사들이 잇따라 도산했던, ‘공룡의 몰락’으로 비유되는 미언론사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어쨌든 현재 중앙일간지들은 뉴스의 질보다는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새로운 독과점체제의 길로 급속히 들어서고 있다. 그 싸움에서 과연 어느 신문이 살아남게 될 것인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