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바람 속 “흔들리지 않게”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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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가칭)홀로서기에 안간힘…8월중 농민·노동운동가 대거 영입 계획

민중당(가칭)의 올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다. 여야가 함께 촉각을 곤두 세우는 야권통합의 행보와 동떨어진 채 외로운 ‘홀로서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1일 창당발기인대회를 마친 민중당이 10월하순 창당을 목표로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들어간 것은 7월초. 그러나 곧이어 뜨겁게 몰아닥친 야권통합 바람 때문에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또 민중당에 동참할 예정이던 지역인사들마저 예상외로 급속히 진행되는 야권통합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태도표명을 보류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독자창당은 오히려 거대여당에 대항하는 야권진영의 통합에 분열을 초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론과도 직면했다.


“민중당 위상 더 뚜렷해질 것”

 그런 가운데 7월26일 49개 지구당에 대한 1차조직책 선정을 완료해 발표했지만, 야권통합의 행보를 따라잡기에 바쁜 언론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지난 3일 “남북간 정당교류와 북한방문‘ 제안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철저하게 잊혀지는 것을 겨우 모면했을 뿐이다.

 사실상 민중당으로선 야권통합과 관련해 두번째 홍역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첫 홍역은 지난 5월 그 중심주도세력이었던 李富榮 諸廷丘씨 등 간부 14명이 “지금은 민중정당 건설보다는 야권통합이 우선돼야 할 때”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표를 제출했을 때였다. 이 5월의 홍역은 재야의 분열상을 노정시키고 민중정당의 창당 명분을 크게 훼손하는 타격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민중정당 건설’과 ‘범민주세력 연합’의 어정쩡한 봉합에서 벗어나 창당작업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당 관계자들은 야권통합의 회오리바람이 민중당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鄭汶和대변인은 “통합 바람 때문에 창당과정에 어느정도 타격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결코 창당의 대의를 뒤흔들 정도의 타격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민중당 관계자들이 인식하는 야권통합의 본질은 한갖 보수진영의 결합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민중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의 창당흐름과는 별도의 것이며,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보수와 진보의 구별을 뚜렷이 해줄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李佑宰창당준비위원장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야권통합 자체가 어려울 것이며, 만일 통합되더라도 통합신당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단정한다. 즉 재야인 통추회의는 통합이 되고 나면 자연히 평민·민주 양당의 보수적인 색채에 묻혀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보수진영이 한 야당으로 묶이고 나면 이들과는 달리 노동자·농민을 지지기반으로 그 이익을 대변하는 민중당의 위상은 반사적으로 더 뚜렷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 민중당의 ‘희망사항’이다.

 이 ‘희망사항’을 실현하기 위해 민중당은 최근 두가지 측면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첫째는 8월하순 2차조직책(20개 지역구)선정시 명망있는 농민·노동자의 조직활동가를 대거 영입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민중당의 면모를 과시한다는 조직차원의 변화다. 이를 위해 민중당은 당의 하부조직으로 활동중인 전국노동자추진위원회(노추), 전국학생추진위원회(학추)를 적극 가동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정책면에서 보수정당과 뚜렷이 구별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으로, 8월의 통일문제 공청회를 필두로 10월하순 이전까지 우루과이라운드에서의 농업문제, 토지·주택문제, 여성문제 공청회를 잇따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10월 하순으로 예정된 창당때까지 민중당이 넘어야 할 고비는 너무나 많다. 우선 야권통합이 실현될 경우, 거대여당에 대항하는 ‘큰 야당’에 쏠릴 범국민적 기대를 어떻게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진보적 민중정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 것인가가 초미의 문제이다. 또 당원들의 헌금과 분담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궁핍한 재정으로 창당대회 이전까지 70여개에 가까운 지구당 창당대회를 치르고 당체제를 유지해가야 하는 재정적 난관도 만만찮은 숙제다.

 어쨌든 지난 2년동안의 준비 끝에, 막바지에는 야권통합이라는 대세의 흐름까지 거스르며 진행돼온 ‘민중정당 건설’ 실험이 빠르면 10월하순, 늦어도 다음 14대총선 전후에는 그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이 시기 우리나라에 계급적 성격을 강하게 띤 민중정당의 뿌리내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가설도 아울러 입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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