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홍보실 관계자의 촌지 고백
  • 편집국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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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에 봉투 있습니다??

 얼마전 보사부 출입 기자단의 촌지문제가 상당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때 언론은 촌지수수가 신문기자 신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반윤리적 행위임을 자인하고 앞으로는 결코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의까지 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번 보건사회부 출입기자단의 촌지사건은 기자 사회에서 성행하는 촌지 세계의 일부가 참으로 ‘재수없게??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물론 우리나라 언론매체들 가운데 일부 중소 전문지 기자들이 기업체나 개인의 비리를 파헤쳐 이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고 신문지상에도 숱하게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사부 촌지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중소 언론매체가 아닌 우리나라 굴지의 중앙 언론사 기자들이, 그것도 공공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촌지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기업에는 거의가 다 홍보실이라는 조직이 있다. 기업마다 명칭이 다르기도 하고, 업무 분야도 출판·기업문화·언론홍보 등으로 구분된 채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홍보실의 핵심업무는 대 언론 관례를 원활하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얼마 전까지 대 언론 홍보 담당자는 언론의 매커니즘을 잘 아는 언론사 출신들이 영입되어 포진하로 있었으나 87년 이후 신문사가 우후죽순처럼 창간되어 많은 전직 언론인들이 복귀함에 따라 요즘은 주로 훈련받은 자체 직원들이 언론관계 업무를 맡고 있다.

근래는 일선기자까지 공략 대상
 기업체 홍보실의 대 언론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보도통제와 ‘퍼블리시티??(publicity)이다. 보도통제란 소속기업에 불리한 기사를 보도되지 않도록 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가급적 축소 보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론의 민주화가 일기 전에는 편집국장이나 담당 데스크(부장)만을 공략함으로써 보도통제가 가능했으나 근래 언론노조가 결성되고 일선기자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공략의 대상이 일선 담당기자들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데스크를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옛날 같으면 몇개의 언론사 편집국장과 데스크만을 관리하면 해결할 수 있었으나 요즘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데스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므로 대 언론 업무는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다음으로 ‘퍼블리시티??는 기업이 상품이나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인데 얼마만큼 넓은 지면을 할애받아 기사화시키느냐에 따라 홍보담당자의 역량이 평가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 언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면과 자금이다. 그러나 사실 안면은 별 대수로운 것이 못된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자주 만나다 보면 친해질 수 있고, 친해지고 나면 상황에 따라 업무협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 언론 업무의 필요조건은 자금이라 할 수 있다. 홍보실 언론 담당자들은 이 자금을 속칭 총알이라 일컫는데, 액수에 따라 원자폭탄 박격폭탄 대포알 소총알 등으로 구분한다.

 기업체나 단체에서는 출입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건네는 촌지가 있다. 이를테면 여름휴가 추석 연말이 되면 으레 편집국장, 관련부서 데스크 및 출입기자들에세 봉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는 기업체가 위치해 있는 지역의 경찰서 출입기자들도 공공연하게 촌지를 요구해와 일괄적으로 간사에게 전달한다.

 촌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협회나 기관에서는 주로 간사에게 맡기며, 기업체에서는 출입기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내민다. 그러나 데스크와 편집국장은 직접 찾아가 전달한다. 대개 회사에서 발행하는 사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책갈피에 ‘봉투??가 들어있음을 슬쩍 귀띔한다. 이 세상에 돈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도 봉투 뿌리치는 사람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편집국장이나 데스크에게 봉투를 전달할 때는 전달자가 누구인가를 기억시켜 주는 일이 중요하다. 때가 되면 들어오는 봉투가 너무 많아 받는 쪽이 전달자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가 되기 전 미리 인사해야 인상이 남는다??면서 전달방법을 강조하는 홍보담당자도 있다.

 실제로 추석 때 백화점에 의뢰하여 선물을 집으로 배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 일간지 경제부장으로 있는 친구에게도 보냈다. 나중에 전화를 걸어 선물 잘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선물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할 수 없고 이야기를 듣고보니 받은 것도 같다는 것이었다.

 추석이나 연말에 기업체에서는 현금 대신 자사 상품이나 양복표, 또는 백화점 물건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값싼 상품이 아니고 상당한 값어치의 선물이다.

 기업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기자들이 냄새를 맡게 되고 그 사건의 내용은 곧 언론에 보도된다. 기업체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사건이 언론에 확대 보도되어 여론이 나빠지면 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이때 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사화되는 것을 막거나 불가피하게 보도될 수밖에 없을 경우는 기사를 축소시켜 기업에 불리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작업을 하는 데 ‘총알??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융단폭격을 하느냐 박격포 공격을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비례해서 나타난다. 이같은 효과를 일반 독자들은 모르겠지만 홍보실 담당자들은 알 것이다.

지방지 기자는 촌지보다 광고 선호
 사건의 내용으로 보아 1면 톱기사로 나와야 할 기사가 저 아래쪽에 숨어 있거나, 제목에 기업체 이름을 밝혀야 함에도 제목이 두루뭉실하고 회사 이름도 기사 속에만 들어 있는 경우는 분명 홍보실 언론담당자의 로비 ‘약발??이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면 된다. 저녁 8시에 깔리는 조간 서울판에서 기업체를 마구 ??조져댄?? 기사가 이튿날 아침 배달된 신문에는 다른 내용으로 둔갑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가판에 배달된 신문에서 기사를 적발, 곧바로 로비활동을 펼친 ??공로??이다.

 얼마전 어떤 기업 사장의 딸이 어느 음대에 몇억원의 돈을 주고 부정입학한 사건이 공교롭게도 유명한 일간지 기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자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장에게 진위를 물었고 사장은 즉시 로비력을 총동원하여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 기사는 결국 독자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짤막하게 얼버무려졌다. 이 과정에서 얼마 만큼의 포탄이 소요되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출입기자가 바뀌면 으레 홍보담당 임원과 상견례를 하게 마련인데, 점심이나 저녁에 술을 대접하면서 봉투 하나를 준비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홍보담당 임원이 바뀔 경우에도 출입기자들과 인사를 하면서 봉투를 건넨다. 만약에 인사를 소홀히 했을 경우 소위 건수가 발생했을 때 기사로 톡톡히 ‘답례??를 받는다.

 대체로 지방지 기자들은 촌지봉투보다 광고를 원한다. 지방의 관할 구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체의 비리가 폭로되었을 때 홍보 담당자들은 냄새를 맡는 기자들에게 봉투를 건네려 하지만 거절하기 일쑤다. 대신 광고를 한두번 밀어달라는 조건을 제시한다. 이때의 광고료는 정상가격보다 비싸게 마련이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광고를 뽑아낼 경우 회사 경영에도 도움이 되고, 기자가 챙기는 ‘광고 수당??은 봉투 속의 금액보다 많기 때문이다.

 어느 건설회사가 지방에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마구 산림을 훼손해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지방신문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으나 건설회사는 광고를 내주고 기자들을 개별적으로 공략했다. 그 사건에 관한 기사는 신문지상에서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기자들이 촌지를 받는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특히 ㅎ신문과 모 시사주간지 기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촌지를 거절한다. ㅎ신문의 경우 촌지를 받은 사실이 발각되면 그날로 사표를 써야하고, 촌지받은 기자를 ‘고자질??해도 핀잔받지 않는 풍토가 조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스스로 촌지를 뿌린 터라 새삼스럽게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강조할 형편은 못된다. 아무튼 일부 촌지받는 기자들 때문에 언론이 그 막중한 사명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언론사회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촌지의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몰라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 글을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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