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각규 팀에 ‘불합격’ 평결 물가ㆍ국제수지 둘다 놓쳐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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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ㆍ성장 사이에서 갈팡질팡…개방 서둘렀다 적자 자초 전임팀의 ‘큰 짐’ 물려받아…부동산 억제ㆍ재벌규제엔 성공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답게 자리에서 떠나는 사람에겐 지나치게 후하다. 그가 어떻게 했건간에 그 사람은 곧 과거 속에 묻혀 버린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도 아니고 아예 무관심이다. 그 대신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소갯말이 나오지만 덕담으로 꾸며지기 일쑤이다.

 《시사저널》은 국정활동을 통한 국회의원 평점에 이어 경제장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최각규 경제팀의 장관들은 과연 부처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는가, 그들이 추진한 정책이 타당하고 적절했는가 하는 점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12월 하순께 있을 개각에서는 부총리 등 경제장관의 대폭 경질이 점쳐진다. 《시사저널》의 경제장관 평가는 그들 개인의 공과를 논해 ‘새사람’들이 앞으로 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작업은 경제정책을 잘 들여다보고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 5명을 엄선해 이들의 견해를 정리하는 질적 평가 형식을 빌렸다. 평가자는 金廣斗 서강대 교수, 金泰東 성균관대 교수, 李梓昇 한국일보 논설위원, 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 소장, 趙漢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실장이다. 이들은 먼저 최각규경제팀에 대한 종합평가를 한 뒤 주요 정책을 놓고 각부 장관을 평가했다. 경제장관의 범주는 넓게 보아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는 14개 장관으로 아우를 수 있으나 여기서는 기획원 재무 농림수산 상공 동자 건설 노동 과학기술처 등 8개를 핵심 경제부처로 선정했다.

 6공화국 들어 경제팀은 3번 바뀌었다. 현 경제팀은 올 2월19일 12년동안 관계를 떠나 있던 崔珏圭씨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출범했다. 앞으로 있을 개각에서 부총리가 경질된다면 재임기간 10개월여의 역시 단명 경제팀이 되는 셈이다. 3당통합으로 與大라는 정치적 안정에도 불구, 李承潤 경제팀이 단명으로 물러나고 최각규경제팀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직접적 계기는 수서사건이었다. 이런 급조된 팀 성격에다가 전임팀으로부터 통화와 재정팽창이라는 달갑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은 탓에 애초부터 큰 기대를 걸 수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경제팀이 가장 중시한 정책은 물가안정 등 안정정책이었다. 이승윤경제팀의 성장 정책이 낳은 폐해가 심각했던 탓이다. 평가자들은 안정정책의 성공 여부가 최각규팀의 성패를 재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물가안정을 중시해 전임팀보다는 개선됐다고 보는 의견도 나왔으나 실제로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수단은 쓰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가령 10월까지는 그래도 총통화증가율을 19%로 억제하는 등 의지를 보였으나 11월 들어서는 통화긴축 기조가 “확 풀려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9.5%로 연말까지는 9.7%상승이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의 9.4%보다 지표상으로도 나아진 게 없을 뿐더러 그토록 안정의지를 강조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겉으로만’부르짖었다는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각규팀의 중점 정책기조가 안정인지 성장인지 헛갈리게 만든 것은 청와대 경제팀이 겉으로 나서 활동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잇다.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해 성장잠재력 배양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많아지자 최각규팀의 ‘안정고수’가 허물어지는 인상을 주었고 청와대팀에 떠밀려 간다는 느낌도 짙게 풍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론의 향배나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정책기조가 오락가락 했다는 흔적이 없지 않다. 올해 나온 두가지 중요한 정책이랄 수 있는 ‘3.14 제조업경쟁력 강화 대책’과 ‘9.19 경제안정화대책’은 경제팀이 외풍에 떠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물가잡기’에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최각규팀은 국제수지 대목에 와서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국제수지 적자는 전임 조순팀과 이승윤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정상참작’론이 있었지만 1백억달러로 점쳐지는 국제수지 적자는 ‘최대 실정’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88년 1백42억달러에 달한 흑자가 올해 1백억달러 적자로 돌변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미국이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한 것보다 더 심한 대외적 위상 실추이며, 적자규모 자체도 문제지만 그만큼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두고두고 우리 경제를 위협하리라는 우울한 견해가 나왔다.

 국제수지흑자를 ‘까먹게’된 것은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에도 원인이 있다. 하반기들어 최각규팀은 건설경기 진정 등 내수억제책으로 성장률을 떨어뜨리려고 시도했으나 ‘때늦은’ 탓에 이미 국제수지 적자의 강물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어쨌든 올해 성장률은 9% 이내로 다소 떨어지리라 전망돼 과열기미가 진정국면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평가자들이 최각규팀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은 대체로 부동산투기 억제책과 업종전문화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책이었다. 부동산 값 진정세는 조순팀 때 성안된 토지공개념의 토지초과이득세 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지난 5월 이래 우리 경제에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던 거품이 꺼져간다는 데 일단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김광두 교수는 “역대 어느 정권이 재벌의 땅을 강제로 팔게 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 부분만큼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규제 정책도 높은 점수를 받은 대목이다. 그 주역이 청와대팀이라는 점에서 경제팀에 돌아갈 공이 다소 희석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의 수평적인 문어발식 확장은 막겠다”는 경제팀의 의지는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대부분의 평가자들은 그룹단위가 아닌 계열기업의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최각규팀의 정책에 대해 “우리 기업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한구 소장은 “한 예로 문어발이 아니었으면 대우조선은 회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한마디로 급격한 선회를 하기에는 여건이 안돼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제력집중 완화정책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시켜 놓아 경제주체 간에 신뢰를 떨어뜨리게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개방에 대한 대응이라는 면에서는 대체로 부정적 평가가 나왔다.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큰 것은 인정됐으나 전임팀 때부터 흑자관리를 수입개방으로 해결하려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개방폭과 관련해 “쌀개방만은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는 평가자도 있었다.

 농어촌 구조조정, 서비스산업 비중, 부의재분배, 내수의존도,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자원배분 등 경제구조개선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또 최각규팀의 현실파악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며 ‘열탕냉탕식’의 조처가 되풀이돼 경제주체들에 혼란을 주었다는 평도 있었다.

 결국 최각규 경제팀은 출범의 계기가 됐던 “부정부패를 척결해 경제팀의 도덕성을 회복한다” 는 절대명제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또 물가ㆍ국제수지ㆍ성장이라는 ‘마의 삼각관계’의 균형을 깨뜨려 경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전임자들이 뿌려놓은 나쁜 씨앗으로부터 수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은 인정됐지만 배심원으로부터 무죄평결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崔珏圭 부총리 겸 기획원 장관은?

최부총리는 물가를 한자리 수로 잡았지만 지난해보다 나아진 게 없다.

 ‘경제총리’ ‘경제총수’라는 위상에 걸맞는 애칭과 함께 ‘동네북’ ‘얼굴마담’으로 비하되기도 하는 부총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종합조정자이다. 이 덕목을 잘 수행해 부처간의 이견을 조정, 정책을 강도높게 추진했느냐에 그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이재승 논설위원은 최부총리의 조정자 역할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경제관료로서 입지가 뚜렷해 경제팀과의 관계가 원활하리라 기대했던 데 비해서는 미약하지 않았느냐 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부총리 입각 후 제일성은 ‘물가안정’이었다.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안정에 놓겠다는 것이었다. 개선쪽에 점수를 준 평가자들이 과반수를 넘어 호평을 받는 듯했으나 실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인플레 압력이 우리 경제 내부에 이미 높이 차오른 상황에서 그래도 한자리수로 물가수준을 붙들어맨 것은 인정할 만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지난해보다 나아진 게 없지 않느냐”하는 부정적 시각도 팽팽히 맞섰다. 추진수단 면에서도 물가안정을 임금규제 같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루려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기획원이 추진한 주요 정책으로는 ‘3.14 재조업 경쟁력 강화대책’과 ‘9.19 경제안정화정책’이 평가대상으로 거론됐다. 이 두정책에 대해 김광두 교수는 정책우선순위가 없었던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는다. 안정을 우선시했다면 총수요 관리 등 물가안정에 주력하는 정책을 견지해야 했으며, 성장쪽에 중점을 두었다면 성장잠재력을 배양하는 정책을 꾸준히 펴야 했는데 상충관계에 있는 두가지 정책이 몇달을 건너뛰어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우선순위가 불분명하다는 반증이며, 이익집단이 조성한 여론 때문에 방향을 잃고 표류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평가이다. 두 정책의 상충보다 뒤바뀌어 나온 것이 문제였다는 평가도 있다. 경제안정화정책이 미리 나와 거시경제환경을 조성해 인플레기대심리를 아주 낮춘 다음에 보조적 수단으로 산업정책을 세웠으면 좋았으리라는 지적이다.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만을 놓고 볼 때는 부정적 평가 일색이다. 인식ㆍ결정ㆍ집행 등 경제정책의 내부시차와 새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드러내는 외부시차를 고려하면 아직 평가하기 이르지만 정책의 효율성을 발휘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함이 지적된다.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자본에 대한 엄격한 규제조처가 미흡해 제조업에 돈을 몰아주려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이다.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평가이다. 밝은 미래를 제시해 정부가 이를 유도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밝힌 것은 고무적이나 재원 조달방법 등에 언급이 없어 실효성을 반감시켰다고 지적한다. 평가자들은 구조조정에 관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뚜렷한 정책제시가 없고 개방에 대한 총체적 대응을 못한다고 인식해 낮은 점수를 주었다. 앞으로 경제의 활력을 어떻게 키워낼지,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털어버릴지에 관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부총리의 할 일이라고 평가자들은 권고한다.

 평가자들은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부총리가 제 구실을 하려면 청와대 경제팀과의 역학구도가 분명해져야 한다고 못박는다. 대통령 경제수석이 경제정책의 실세로 있는 한, 또는 그렇게 비쳐지는 한 부총리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태동 교수는 “경제정책은 전적으로 부총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최고통치권자는 4~5년 동안 경제를 이끌어갈 적임자를 고르는 것이 그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李龍萬 재무부 장관은?

이장관은 평가하기 이르지만 돈의 흐름을 바로 못잡아 부도사태를 빚었다.

 이용만 장관은 책 한권 분량의 입지전적 얘기처럼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지난 5월27일 뒤늦게 최경제팀에 합류하여 재임기간이 짧은 탓에 “평가 내리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가안정 수단을 통화긴축 등 총수요관리에 두어 17~19%라는 총통화증가율 사이에서 곤혹을 치른 장관으로 동정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재무부가 자금순환 정상화를 꾀했다기보다 돈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신랄한 평가가 나오면서 토론 분위기는 돌변했다. 일부 평가자들은 금융산업이 낙후된 것처럼 재무부도 ‘낙후된’ 부처로 여겨진다면서 ‘돈관리’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특히 한 평가자는 “농업에 빗대면 관개시설이 안돼 자꾸 물만 퍼붓는 꼴”이라면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시중에 풀린 돈은 결코 적지 않았는데 상장기업의 부도 사태가 잇따른 것은 돈의 흐름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반증이라는 지적이다.

 통화관리가 ‘전년동기 대비’등 지나치게 지표 중심으로 흐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사채시장에 손을 대지 않아 땀흘려 일하는 분위기 조성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장관은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했다가 일정보다 빨리 귀국해 “예대상계를 통해 2조원을 마련, 중소제조업체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조세 금융정책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재무부를 이끌고 있는 이장관이지만, 지난 11월 금리자유화 1단계 조처와 내년으로 임박한 주식시장 개방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전임장관에 비해 금리자유화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중앙은행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압적이라는 견해와 의견교환이 활발해졌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한보그룹의 금융특혜 의혹 부문에 대해서는 장관의 간여 사실이 분명치 않지만 금융기관을 지휘 감독하는 위치로 볼 때 어려운 입지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평가자들은 앞으로 재무장관은 금융자율화에 더욱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하며, 구조조정 작업의 재원조달 방안 마련, 부의 재분배와 관련해 세제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曺京植 농림수산부 장관은?

조장관은 쌀개방을 막으려 동분서주했지만 외국의 압력을 부풀려 전달했다.

 쌀시장 개방 파고로 어떤 장관보다 주목받고 있는 조경식 장관은 동분서주했다는 인상을 남겼으나 평가는 썩 긍정적이지 않다. 다른 전임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통상압력을 넣는 여러 나라에 우리 농업이 한국 경제와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알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외국압력을 부풀려 국민에 전달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쌀시장만은 절대 개방 않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혹평이 나왔다.

 ‘진실’을 빨리 알리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나자빠지면 당하는 것은 국민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의 농산물 협상에 농림수산부의 입장이 별로 반영되지 않는 ‘위상’도 감안해야 한다는 동정론도 있었다.

 현안 중의 하나인 농업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평가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농지소유상한선을 3정보에서 20정보로 크게 올린 것은 바람직한 조처이지만 농민 아닌 사람이 농지투기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결여돼 있어 농업진흥에 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농촌진흥지역을 어떤 기준으로 지적하느냐 하는 문제도 거론됐다. 진흥지역으로 묶이는 곳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데 예상되는 농민들의 반발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현실적인 묘안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루아침에 될 수 없는 일이지만, 농업자체의 독립성을 키워 산업ㆍ생업ㆍ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계획이 없으며, 이는 전임 장관은 물론이지만 조장관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평가자들은 “늘상 하는 얘기지만”이라는 말을 전제하면서 농산물가격 지지와 경쟁력제고 방안에 대해 농림수산부가 끌려다니지 말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나 시위를 막으려고만 들지 말고 이를 배경으로 협상에 임했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있었다.

 조장관은 개방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일에 썩 만족한 평가를 얻어내지 못한 셈이다.

李鳳瑞 상공부 장관은?

이장관은 통상국의 압력에 쉽게 무너지고 백억달러 넘는 적자의 책임이 크다. 수출실적도 불렸다.

 올해는 상공장관으로서는 ‘운수 사나운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12월10일 현재 무역수지 1백18억달러 적자라는 통계수치는 상공장관의 실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가자들은 순탄할 때 맡아도 어려운 상공장관 자리를 무역과 산업 분야에 현안이 산적한 이때 이봉서 장관이 맡고 있는 점에 우선 불만을 표시한다. 기본적으로 업계를 상대해야 하고 공업과 무역진흥 등 조장정책을 펴야하는 데다 시장개방 파고와 관련해 통상외교의 중대한 임무까지 맡아야 되는 상공장관 자리에 이장관은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무역수지 적자 예측을 30억달러에서 70억달러로, 다시 1백억달러로 세 번씩이나 번복하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 예측력이 지적됐지만 국제수지가 나빠진 것은 현 장관의 잘못은 아니다. 국제경쟁력 약화에 대한 책임은 전임장관들이 져야 한다. 그러나 통상외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장관이 너무 쉽게, 빨리 “예스”를 해버린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개방으로 국내산업이 겪게 될 어려움을 상대방에게 되도록 강도높게 주장해야하는데 서둘러 통상국의 요구에 응해버렸다는 점 때문에 평가자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한 평가자는 이장관이 수출입 통계를 조작하고 앞으로 국제수지 기준으로만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겠다는 것이 문제라고 공격했다. 그는 실제로 실적이 덜 나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선박 수출을 서류만 미리 작성하는 등의 수법으로 “지난 10월에 수출액을 20억달러 가량 가공적으로 부풀려 놓았다”면서, 소신껏 일하다 안되면 할 수 없지만 통계를 조작한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1일, 5일 간격으로 나오는 통관기준 수출입통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굳어져온 일종의 관행인데 수출부진에 대한 비난을 무디게 하기 위해 기준을 바꿔 버리는 것은 공복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이장관에게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이밖에도 수출붐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아이디어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이장관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낸 것은 재무부와 연계한 주력업체 선정, 산업기술대 설립 정도에 그쳤다.

진념 동력자원부 장관은?

진장관은 전력부족 사태를 잘 넘겼고 유가 자율화도 긍정적이다. 핵발전소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진념 장관은 이용만 장관과 같이 지난 5월 입각한 전문관료 출신이다. 동자부 장관으로서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 석유시장이 안정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진장관은 ‘운’도 따른 편이다.

 진장관은 올 여름 전력공급예비율이 5%를 밑도는 위급상황을 쉬고 있는 발전소를 다시 가동시키는 등 공급확대책과 소비억제책을 적절히 추진해 잘 넘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유가자율화는 대상이 대기업이고 초기단계라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업적으로 꼽혔다. 부분적이지만 주유소 설치 자유화도 소비자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진장관은 좀더 역점을 두어야 할 정책으로는 해외자원개발 사업 확대가 지목됐으며,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해서는 국민을 설득해 “내 뜰에는 안된다”는 님비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충고가 있었다.

李鎭卨 건설부 장관은?

이장관은 아파트 투기ㆍ과열 건설 경기를 잘 수습했다. 청약예금 대책, 주택 장기계획 비전을 제시하라.

 수서사건 직후인 지난 2월 입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5월부터 부동산값이 진정세로 돌아서 힘겨운 고비는 넘긴 셈이다.

 2백만호 주택건설 사업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한때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올해 건축 물량을 60만호에서 50만호로 줄이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 경제기획원에서 터져나온 건설경기 규제책은 건설부로서는 원하는 정책이 아니었으나 이장관은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건설업계를 설득해 대체로 무난하게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풍 탓도 있었지만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등 건설행정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분당 시범단지 입주자 조사 등은 건설부가 투기억제를 위해 잘하는 일로 지적됐으나 근본적으로 비경제부처인 내무부와 업무가 겹쳐 있어 이장관이 발목을 잡혔다는 동정론도 나왔다. 한 평가자는 아직도 2백50만명이나 되는 청약예적금 가입자가 줄을 선 실정이므로 합리적인 청약정책이 나와야 하며, 서민들이 주택매입에 관한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崔秉烈 노동부 장관은?

최장관은 추진력과 소신이 있다. 그러나 임금 억제를 앞세우다 노동자의 이해를 못 얻었다.

 장관의 소신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패배주의와 무력감이 ‘과천’에 팽배해 있지만 적어도 최병렬 장관은 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장관의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평가자들은 보았다.

 ‘최틀러’라는 별명에서도 드러나지만 최장관은 “추진력이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고 애쓴다”고 평가돼 다른 장관과는 다른 색깔로 칠해졌다.

 그러나 소신있게 밀어붙인 그 정책들이 비민주적이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감점을 당했다. 기본적으로 근로자를 2등국민으로 취급하고 소득의 원천인 임금을 규제하는 대신 다른 방안으로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식의 발상이 다른 장관도 아닌 노동장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노총의 조한천 실장은 “노동법개정 등 제도를 바꾸는 과정이 충분히 민주적이어야 노동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임금을 범인으로 보는 것도 억울한데 최장관의 비민주적 업무 추진이 부른 불신 때문에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金鎭炫 과학기술처 장관은?

김장관은 ‘기술 선진국 10년내 달성’에 의욕적이다. 기술투자를 예산 확보로 현실화해야.

 김진현 과기처장관에 대해서는 잘잘못에 대한 지적보다 과기처의 역할이 제고돼야 한다는 주문부터 시작됐다. 소련보다는 덜하지만 국제경쟁력이 나빠지는 속도로 보면 우리 같은 나라도 드물다는 위기위식도 나왔다.

 특히 물가가 불안한 우리로서는 돈이 많이드는 중장기 기술투자의 경우 초기단계에서는 정부가 할 수밖에 없는데 청와대와 기획원 등의 인식부족으로 예산확보가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김장관이 내놓은 ‘일본에 대항한 한국과 미국의 협력’구상은, 구상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너무 일찍부터 공개한 점을 들어 감점하는 평가자가 있었다. 또 ‘G7 프로젝트’의 10년 내에 기술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것은 과욕으로 비치므로 좀더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김장관의 몫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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