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칼럼] 호킹의 강연을 듣는 마음
  • (본지 칼럼니스트 ●소설가)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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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보긴 보았으나 강연회장의 뒷 부분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시사저널》 표지 사진보다 훨씬 몽롱한 ‘실체’를 목격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가 강연 첫머리에 밝힌 설명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목소리를 그의 육성으로 착각할 뻔했다. 이런 착각은 강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이야기를 본인의 육성을 통해 쉽게 듣고 있다는 착각의 자유를 즐기고, 손에 잡히지 않는 우주와 기계의 합성음이 내는 당혹감을, 내 식대로 소화하고 싶어 그랬을 터이다.

스티븐 호킹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물론 최근이었다. 내 직업과는 생소한 까닭도 있다. 북두칠성이나 은하수를 이따금 서정적으로 올려다보는 게 고작이고, 달의 모양새를 같은 심정으로만 파악하는 위인에게 그의 이름은 너무 멀었다. 기껏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올라, 지지고 볶는 下界를 우습게 여긴 것이 ‘높은 곳으로 임한’ 경험의 전부인 처지에, 그의 ‘블랙홀과 아기우주’는 너무 ‘황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그날 우주에 대한 ‘생각의 끄트머리’를 문자 그대로 온몸을 기울여 내게 일깨워주었다.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 서문을 쓴 칼 사강(코넬 대학 교수)의 말대로, “공간적으로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시작과 끝이 없는 우주, 그래서 조물주가 할 일 없는 우주”를.

 

존경과 호기심이 한데 어울린 강연회장

동시에 그는, 그만한 우주에 비기면 可視마저 불가능한 위대한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건 역설적이었다. 스스로의 미세한 육체를 추스릴 수조차 없으면서 광대무변한 우주를 헤아리는 지혜. “공간적으로 끝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시작과 종말이 없는 사람의 지능과 용기와 인내를, 현존하는 전설적 인물 같은” 그가 또 한번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 있다기보다는 편안히(?) 누워 있는 자세, 고개를 삐딱하게 꼬고 조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인 채 두 손가락을 움직여 컴퓨터로 말을 찾는 그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날 모인 회중 중에 휠체어를 타고 온 젊은이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청중 또한 90% 가량의 젊은이들이었다. 극장을 가건 운동장을 가건,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젊은이들로 가득 차는 우리 사회는 그만큼 젊은가. 가의의 일이지만 그런 느낌을 가져보았다.

존경과 호기심이 한데 어울린 마당 같았다. 강연 후에 나온 질문으로 미루어 그 방면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참석한 듯했는데, 실상 그들도 짧은 강연 시간의 절반을 통역이 차지하는 내용 못지 않게 호킹의 모습에 더 시선이 쏠리는 인상이었다. 그가 《시간의 역사》를 쓰면서 미리 전제한 “통속적인 저서”마저 읽기 힘들었던 나는 하물며 말할나위 없었다. 강연주제와는 동떨어진 인간의 한계와 의지와 환경을 점검하고 있었다. 서울에 온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나 정치가, 또는 예술가나 운동선수도 이만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듬으며 나름대로 그 이유를 캤다. 대답은 한가지였다. 남다른 육신의 한시성과 해낸 일의 막감함이 맞아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병에 걸린 ‘신체적 난국’을 극복했다는 상투적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천재와 불구의 어간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결과적으로 상징하는 데에서, 경탄과 위로를 감지하면 되리라.

자포자기에 빠진 한 때, 공부를 집어치우고 폭음으로 지샜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인간적 친근미를 느끼게 한다. 과학소설을 읽고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세월을 보냈다는 술회가 보통인다워, ‘그러면 그렇지’의 공감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런 몸으로 여행을 좋아하여, 한국에 올 때도 안 가본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 것 등은, 그의 호기심과 연관된 낙관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아 자연스럽다. 신체장애자를 이상하고 특별하게 대하는 눈을 자기가 먼저 정상으로 돌려놓는 행위가 그렇다. 연구실 벽에 마릴린 먼로 사진을 붙여두는가 하면, 여행지에서는 쇼핑을 즐기고 음식도 무지하게 잘 먹는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生이 잘 노출된다. 그러고 보면 강연이 토막토막 끊겨 웃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을 망정 영국식 유머가 가끔 따라붙었다.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과 위대한 인간의 겸손

그 다음에 내가 떠올린 것은 환경이었다. 반드시 호킹 교수의 경우가 아니라도 괜찮다. 한국에서 비슷한 인물이 탄생하거나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든가 기반은 어디쯤인가를 돌이켜보았다. 과학자의 재능은 둘째로 치고, 만약 호킹 교수가 영국하고도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뚱딴지 같은 발상이지만 그런 가정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내가 어느해 여름에 가본 케임브리지 대학의 기막힌 분위기에서 살았을 뿐더러, 뉴턴이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는, 연면한 학문적 맥과 그의 연구는 무관한 것일까.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자문하고 싶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대강 맞다. 하지만 ‘어떤 그’가 제대로 크기 위해서는 토양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이 갈수록 보편화되어 마땅하다.

가위 조용한 선풍을 일으키고 호킹 교수는 갔다. 무슨 일이 터졌다하면 지나치게 요란을 떠는 버릇이 있다고 질책하는 소리가 우리 주변엔 있고, 그것은 허튼 지적이 아니다. 호킹이 몰고온 바람과 그가 떠난 과정도 대단했다면 대단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심어주고 간 휠체어 바퀴 자국은 오히려 미진한 감과 더불어 선명히 남아 있다고 믿는다. 진행중인 전신마비의 불치병을 이끌고 우주와 대화를 진행중인 그는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도 아직 “우주를 모르겠다”는 겸손으로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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