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도 하나, 겨레도 하나
  • 김춘옥 실용뉴스부장 , 북경ㆍ김동선 부국장 (sisa@sisapress.com)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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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소침 북한에 “야유 보내지 맙시다” … 중국인들 “통일되면 서로 좋을 것”

 중국이 넓은 나라라는 사실은 북경 중심지에 있는 호텔방에 들어가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창의 커튼을 젖혔더니 시가지 바깥쪽으로 지평선이 한없이 펼쳐진다.

 이 넓은 땅 중국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그리고 아시안게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어떤것일까.

 중국에서 1년 정도 체류하고 있는 어느 한국인 사업가는 중국의 낙후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서울로 가자면 홍콩을 거쳐야 되는데, 그럴 땐 기묘한 기분이 듭니다. 북경에 있다가 홍콩으로 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앞으로 가는 기분이고 홍콩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분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 때 우리의 50년대 같다고 할까요.”

 이 사업가의 관찰은 거의 정확하다. 아시안게임을 위해 북경 시내에 신축된 60여개의 고급호텔들도 하루만 투숙해보면 어쩐지 북경이라는 도시 전체가 풍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든다.

 

‘남조선’ 사람들 북경거리 활보

 외국과 합작으로 만들어진 호텔들은 모양은 그럴 듯하지만 뭔가 세련되지 못하고 더욱이 경영 전반은 서툴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이가 빠졌거나 금이 간 커피잔도 손님 앞에 예사로 나오고 카운터에는 거스름돈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고급호텔이 이럴진대 ‘인민’들의 생활 수준은 어떻겠는가.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毛澤東은 “형세는 개인의 능력보다 힘이 있다”는 ‘형세론’의 신봉자였다. 그의 군사전략과 정치기술은 언제나 형세는 개인의 힘보다 강하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인구에 회자되는 그의 유격전술 ‘적이 쳐들어오면 도망간다’(敵進我退)는 것도 형세론이고, 실정으로 당내 위치가 흔들리자 북경에서 상해로 탈출하여 문화혁명을 일으켜 홍위병으로 하여금 개혁파를 타도한 것도 ‘형세’를 이용한 수법이었다.

 북경에 와보니 오늘의 중국 현실도 형세론에 대입해보면 개방이 필연적이고 우리의 남북한 문제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문제에 대해서 중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남조선은 잘살고 북조선은 못산다. 통일되면 서로 좋지 않겠느냐.” “남조선은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의 하나이다. 중국은 남조선에 뒤떨어져 있는데 북조선은 중국보다 더 뒤떨어져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아니라 중국의 ‘인민’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논법은 단순하다. 우선 잘사는 남쪽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데 중국 정부 관계 일을 보고 있는 어느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한반도 관계는 모순 속에 있다. 북조선과의 관계는 역사적ㆍ지리적 문제 때문에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고, 남조선과는 무역관계 때문에 더친해져야 한다. 이것을 정리하면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혈맹이었다는 ‘과거집착’이고 남한과의 관계는 경제협력 때문에 생기는 ‘미래지향성’이라는 의미인데, 형세론에 입각해서 보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분단고착보다는 통일지원 쪽으로 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든 북한의 혈맹인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자 ‘남조선’ 사람들이 몰려와 북경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이 여행사에 낸 경비는 2백50만원 내외이니까 중국 인민의 평균월급 1백배에 가깝다. 그런 한국인들이 북경에 수천명 나타났으니 이것은 분명히 사건이다. 반면, 북한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처음으로 ‘한국’이라 호칭

 그리고 중국 당국은 아시안게임에서 ‘남조선’을 한국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개막식때 선수단 입장순서는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한문 획 순서여서 북한선수단이 남한선수단보다 먼저 입장했지만 남조선이라고 부르던 관례를 깨고 한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사실도 분명히 사건이다.

 개막식 광경을 중계방송하던 중국의 어느 아나운서는 전광판에 ‘한국’이 나오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조선 선수가 입장한다”고 말했다지만 중국에서 ‘한국’이 ‘한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분명히 변화의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주경기장 본부석 천장에는 ‘단결ㆍ우의ㆍ진보’라고 써 있는 아시안게임 캐치프레이즈 현수막이 붙어 있었는데 남북 응원단은 공교롭게도 ‘단결’ 글씨 아래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북쪽 응원단은 4백여명, 남쪽 응원단은 바로 그 옆에 6백여명 정도가 자리잡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일반 관람객은 관중석 곳곳에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었다. 양측은 관람객이 다 차기도 전에 북과 꽹과리를 치며 응원전을 펼쳤다.

 그러나 북쪽은 기세에 있어서 남쪽에 너무 뒤져 있었다. 보기에 딱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우리 관광단중에서는 “북에 야유를 보내지 맙시다”고 응원단에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남북한 경기는 중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이 될 것이다.

 이번 북경대회는 중국의 개방을 촉진시킬 것이다. 1949년 모택동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최초로 대규모 국제스포츠행사가 열리므로 중국인들에게 이번 대회의 여운은 깊이 새겨질 것이다. 또한 대회가 폐막되면 경기장과 북경의 호텔들은 텅 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 마음속에도 어떤 ‘공허’가 자리잡을지 모른다. 그 공허를 메울 수 있는 길이 개방에 의한 경제발전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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