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지급 비판속 정부만 생색
  • 송준· 오민수기자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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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사에서 벌이는 수재의연금 모금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9월말경, 본사편집구에는 독자들로부터 의연금과 관련된 몇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가까운 친척이 수해를 입었다는 한 회사원은 대뜸 “의연금의 행방이 의심스럽다”며 ‘취지지시’까지 내렸다.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지금끄지 받은 의연금품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거두어진 돈이 어디 엉뚱한 데로 가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좀 파헤쳐달라”는 것이었다.

 공직에 있다고만 밝힌 독자는 “비록 월급에서 떼가는 것이긴 해도 해마다 성금을 내고 있는데 그 돈을 어떻게 썼다는 ‘정산내역’을 아직껏 본 적이 없다. 돈을 쓴 쪽에서 개별통지는 못하더라도 언론 등을 통해 결산보고를 상세히 해야 옳은 태도가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서울대학 여자동창회원들이 의연금을 모아놓고도 도무지 접수 창구가 미덥지 않아 망설이고만 있다”고 알려온 경우도 있다.

 이웃의 아품을 함께하는 뜻으로 정성을 보내면서도 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의심을 하게 될까. 두말없이 의연금품을 거두고 쓰는 현제도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국 재해대책협의회란 기관의 이름을 들어본 국민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홍수나 태풍 피해상황 집계, 복구대책을 세우는 건설부 산하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유명한 것과는 달리 이 협의회는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코흘리개 어린이로부터 재벌 회장이 내는 돈이 모아지고 그 돈을 이재민들을 위해 쓰는 곳이 바로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전국재해대책협의회다. 언론사와 각종 경제·사회 단체 관련인사들로 구성된 사단법인인데 보사부가 감독관청이다.

 회장(유건호 전 조선일보 대표이사)등 명예직을 뺀 현재의 상근직원은 모두 8명, 그나마 경비원 2명과 사환 1명을 제외하면 실무자는 5명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긴요한 의연품을 확보하고 보내온 물건을 신속히 분류하여 제때에 꼭 필요한 곳에 전달할 인력이 태부족한 실정일 뿐만 아니라 창고 하나 없어 국민의 정성이 담긴 식품·옷가지·학용품 등을 국민학교 운동장이나 고속버스 주차장에 야적해놓고 있다. 언론사는 그토록 많은 의연금품이 ‘답지’하고 있을 때 수재민들은 “라면만 먹게되는”결과가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재해발생 직후의 응급구호는 각 시·도 재해구호 적립기금과 비축물자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의연금은 사망자위로금 생계보조비 주택복구비 장기생계구호 등에 국고와 합해져 쓰이는데 이것도 문제이다.

 인력이 부족하고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데다 피해조사·관계부처와의 협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수재민들에게 돈이 전달되기까지는 한달 이상이 걸리게 된다.

 재해가 잊혀져갈 즈음 슬쩍 지급되다 보니 총 구호비 가운데 거의 절반을 의연금이 차지하는데도 국민에게는 마치 정부가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기탁자들이 ‘의연금의 행방’에 대해 수상쩍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돈이 어디로 새나가는 것도 아니라면 왜 제대로 홍보가 안되는 것인가. 전국재해대책협의회 관계자에따르면 “언론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회사 선전을 위해 거둘 때만 요란하지 그 후의 사용내역은 보일락말락하게 게재하고 그것도 어떤 항목에 얼마 하는 식으로 큰 줄거리만 보도한다”면서 “결산공고를 널리 알리면 좋겠지만 유력신문들이 광고료를 비싸게 요구하고 있고, 방송출연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군소신문 두 군데에만 실어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선책으로 미국의 ‘유나이티드 펀드’와 같은 민간상설기구에 의한 공동모금(community chest) 제도의 도입을 들고 있다. 서울대 金 均 교수(사회복지학)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재해의 경우에는 국가가 당연히 그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부득이 민간에서 재원을 조달해야 될 때”를 위한 공동모금 제도의 운영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익명의 성금을 받아, 기탁자 명단 없이 총액만 공개하고, 사용 결과를 기탁자 모두에게 통보한다.“

 김 교수는 아직도 준조세나 마찬가지로 ‘떼이는’모금이 많고 보고의무에 소홀한, 우리식의 ‘수재민을 도웁시다’는 이제 시대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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