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국민희생 외면한 재벌 성공담
  • 최정표(건국대교수·경제학)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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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벌》/발전의 공 ‘경영능력’에 돌려 균형감 상실

 최근 재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에 관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한국의 재벌》(리처드 스티어즈, 신유근, 제라르도 엉슨 공저/한영탁 옮김/시사영어사)도 그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책은 우선 외형적으로 몇가지 재미있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한국학자와 외국학자가 공동으로 연구·집필하였으며 경영학자들이 경영학적인 시각에서 재벌을 분석하고 있고 외국독자용으로 집필되어 영문으로 출판된 책을 제3자가 다시 한글판으로 번역해냈으니 보기드문 형식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용면에서 몇가지 제약을 가지고 서술되었다. 즉, 외국 독자에게 한국재벌의 ‘성공사례’를 소개한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또 현재의 정반대의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재벌을 한족 측면에서만 긍정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기업팽창은 정부 지원에 힘입은 것

 이 책에는 재벌의 여러 가지 성공적인 경영전략과 대기업의 현황이 실제 사례와 함께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재벌의 성공이 바로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으며, 이러한 재벌의 성공은 재벌 기업들의 우수한 경영전략 덕분이었다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평가할 때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평가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재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처럼 한국경제를 ‘기적적인 성공’이라고 전제할 때 재벌에 대한 평가는 결코 부정적일 수 없는 것이다. 재벌은 단일기업이 아니라 수많은 업종에 참여하고 있는 거대한 기업결합체이다. 여기에는 성공사례뿐 아니라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실패의 사례는 묻어둔 채 성공담만을 소개하는 것은 재벌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당연히 재벌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는 재벌의 또 다른 측면도 들여다보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재벌은 자력으로 성장해 왔다기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성장해왔기 때문에 성공 사례가 모두 기업경영의 업적으로만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책에서는 특히 재벌 기업가의 경영자적 능력과 노력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재벌에 대한 정부지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자금문제와 노사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이 두가지 문제를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지원에 기대어 해결해 왔다. 갖가지 명분과 수단에 의한 막대한 금융지원으로 재벌들은 손쉽게 자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재벌들은 정부가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노동운동을 통제해 왔기 때문에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자금지원과 저임노동력의 공급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주로 기업계의 공이라고 주장하지만 재벌성공의 이면에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도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간접적으로는 시인하고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한국재벌의 미래 과제로 전문인 중심의 경영관리, 전문업종 중심의 기업전략, 연공서열 및 업적 중심이 인적자원관리, 권위주의에서 협력증진으로의 노사관계 변화 등을 강조하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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