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충격…정국에 철이른 한파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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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초강경 공세에 만자 무마대책없어 극한대립 장기화 조짐

 석달째 표류하고 있는 사퇴정국의 한가운데서 돌출한 국군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문은 결과적으로 평민당이 초강경 조선으로 선회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야권은 李相勳 국방장관과 趙南豊 보안사령관이 해임된 8일에도 “미봉적인 경질 인사론는 군의 정치개입을 근절할 수 없다”며 계속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평민당을 金大中 총재가 이날 단식을 비롯한 대여 초강경투쟁을 선언, 사퇴정국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면서 일전불사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10월 정국이 극한대결로 차달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평민당의 한 고위당직자가 김총재의 단식투쟁을 ‘여권에 대해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의미’로 풀이한 것은 현단계에서 결코 과장된 해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의 갑작스런 궤도수정에 대해 민자당은 허를 질린 듯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민자당측은 평민당에게서 별반 기대할 것이 없다는 비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8일의 기자회견에서 김총재가 무언가 등원과 관련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는 가냘픈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은 보안사 파동이 약재이긴 하나 전화위복으로 평민당에게 등원 명분을 제공해줄 수 있지 않느냐는 다소 무리한 추론에서 나온 기대감이라 할 수 있다. 즉 보안사 문제와 관련한 악법 개폐, 보안사 조직 정비, 관련 책임자 인책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내로 복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는 가능성 차원의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김총재의 8일 기자회견은 민자당의 낙관론을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여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어서 민자당은 몹시 허둥대는 모습이다. 민자당 朴熺太 대변인의 “국민 모두가 이제는 정차가 정상화될 때라고 생각하고 평민당도 이에 따르리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가는 것은 유감”이라는 논평은 이같은 당내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만자당내 민정계는 민주계만큼이나 보안사에 대해 질책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상당수 민정계 인사들은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격양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민정계 인사들의 질책은 민주계의 그것과는 판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계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면 민정계는 “한탄 이등병이 너무나 손쉽게 비밀문서를 빼돌릴 수 있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 즉 보안사의 기강 해이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또한 이번 보안사 사건이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현상의 측면에서 지난번 건설부 항명사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제일 염려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금년말까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이루겠다고 나선 마당에 이번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통치기반까지도 뒤흔드는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정보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책임자의 위치에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만의 경질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보안사 고위급 전체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민정계의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 있을 보안사 기구 개편에서 상당히 반영될 것을 전망된다.

 그동안 국회정상화를 위한 갖가지 몸짓을 취해온 민자당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사건에 따른 새로운 탈출구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며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의 8일 청와대 회동이 군의 민간인 사찰 금지제도를 마련한다는 것 이외에 국회정상화에 관계된 부분에는 별다른 결론을 맺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민자당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평민당 스스로 등원할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당내에 폭넓게 확산돼 있기도 하다. 민자당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속개하고 다시 열흘 정도 휴회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정황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평민당이 계속 장외에 머물러 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이상 민자당이 언제까지나 평민당의 원내 복귀를 기다릴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수재민을 위한 추경예산심의와 우루과이라운드 대비 문제 등 산적해 있는 각종 민생 혀안도 민자당 단독 강행의 파행 국회에 어느정도 명분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22일 이후의 상황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내딛는 것 같은 초긴장의 극한 대립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민당 김총재가 “단식투쟁 이상의 제2, 제3의 투쟁 방안이 있다”고 밝힌 것처럼 민자당도 ‘눈에는, 누, 이에는 이’식의 강경노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민자당 김대표와의 감정싸움까지 곁들여진다면 10월 정국은 장외 대결의 극한 상황으로 흐를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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