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감시’는 파멸의 늪
  • 워싱턴·안재훈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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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적…마약·테러 관계자만 사찰

 미국의 각종 수사기관의 국내 사찰(domestic spying)은 한국의 ‘보안사 사찰’과 겉으로는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내용면에서 질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미국은 군사독재와 군의 정치개입이 없는 나라다. 국방장관이 예비역 장성 출신인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는 끊임없이 성토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민주정치제도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

 몇몇 사례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971년, 몇몇 운동권 대학생들이 펜실바니아주 ‘메디나’라는 동네에 있는 정부문서를 보관창고에 침입하여 ‘코인텔프로’(cointelpro)란 제목의 서류를 훔쳐냈다. 미국판 윤석양 이병이었다. 이 자료는 CBS-TV 특종으로 폭로되었는데 그 동안 민간인사찰 소문은 꽤 퍼져 있었으나 구체적 증거는 없었다. 역정보 프로그램이라는 이 정보철은 FBI 1950년대와 60년대에 반국가 단체로 낙인찍힌 급진주의 그룹·좌경의 반전평화주의자·대학교수·예술인·언론인·학생 등에 대한 사찰결과가 주요 내용이었다.

 이 명단에는 국내에 잘 알려진 제인 폰다, 말론 브란도 등 영화배우뿐 아니라 존 레논 등의 가수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민주사회학생’(SDS) 및 흑인민권주당 무장단체인 ‘흑표범당’도 들어 있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국가안보를 핑계로 끝까지 발뺌하려는 정부의 은폐 기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결국 끈질긴 언론의 비판으로 3년 후 상하원 국회 합동으로 ‘처치-파이크 특별조사위’가 구성되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미국 언론이 신주처럼 모시고 있는 정보자유법, 통칭 FOI(Freedom of Information)법률의 탄생이다. 정부문서를 강제로 인출할 수 있는 이 법률은 민주주의의 진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인텔프로’는 1956년에 시작되었는데 집권층이 이 자료를 얼마 만크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 존경의 대상이던 古 J 에드가 후버 연방수사국 초대국장이 사적으로 주요인물을 사찰, 역대 대통령에게 정적의 사생활을 귀띔했다는 것은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민주주의 원칙만을 믿어온 미국국민에게는 경악스러운 뉴스였다.

 또 하나의 사례가 공작정치를 시도하다가 자멸로 사퇴로 끝난 닉슨 대통령의 경우다. 닉슨 행정부의 측근참모들이 일으킨 ‘워터게이트’사건 가운데 관심을 끄는 항목이 바로 ‘敵群名單’(enemies list)인데, 이것은 FBI나 CIA 같은 정부기관이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를 기도하려 했던 핵심적인 물증이다. 이 음모는 결국 실패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애국적인 정보기관원의 제보 때문이었다. 우리로 치면 보안사 간부가 양심선언을 한 셈이다.

 

닉슨행정부. 세금사찰·불법 도청

 이 명단에는 노조원 언론인 학자 사업가 법조계이사 등이 포함돼 있었는데 닉슨행정부는 국세청을 동원, 이들을 상대로 세금사찰을 했으며 4명의 기자에 대해서는 불법도청까지 했다.

 그 명단에 포함돼 있던〈워싱턴 포스트〉의 칼럼 니스트 매리 매그로리 여사는 세금사찰을 당했는데, 현재까지도 이를 용서못하고 전직 대통령의 기자협회 파티초청을 반대하고 있다. 이 명단은 아직도 언론계의 이야깃거리이다.

 유머 칼럼니스트 아트 부크월드는 그 명단에 들지 못하자 “저명인사가 못된 모든 언론인은 집단으로 정부를 고소하자”고 익살스러운 칼럼을 쓸 정도였다.

 군수사기관의 경우는 어떤가. 육·해·공·해병 등 군부는 제각기 군범죄수사대를 가지고 있으며 민간경찰관의 협조는 대단히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비행 및 인권침해로 가끔 말썽을 빚는 곳이 해군범죄 수사대이다. CIA는 해외정보담당이고 FBI는 국내정보담당이지만 이보다 더 큰 기관인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전세계의 통신을 도청, 비밀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국방정보국 (DIA ·Defense Intelligence Agency)으로 불리는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은 그 동안 소련의 군사력·경제력 평가에 주력해왔다. DIA는 현재 페르시아만 사태에 관련된 정보 수집 및 분석으로 초비상 상태이다.

 미국의 경우 행정부보다 오히려 국회쪽에서 각종 정보활동의 필요를 인정, 예산을 증액시키고 있다. 이것은 15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미국인에 대한 국내사찰을 시인한 FBI가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한 결과이다.

 법무부는 사찰과 같은 정보조직의 불법활동을 금지하는 지침서를 발표하였다. 재야 단체는 ‘사찰금지’를 위한 제소를 거듭하였고, 법원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다.

 미국 수사기관의 민간사찰은 감소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 대상이 주로 테러방지와 마약 퇴치를 위한 ‘요주의 인물’감시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경찰은 법원의 허락만 받으면 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데 대개 마약사범의 경우이며 마약단속국(Drug Enforcement Agency)이 이에 관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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