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협 없으면 민간사찰 없다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10.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英·佛, ‘정보철’ 만들기 어려워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정보기관의 공작 활동이나 사찰 때문에 큰 물의가 빚어지는 일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보안사처럼 군에 속한 기관이 다수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을 밥먹듯이 하다가 문제가 된 사례는 없다. 군이 해야 할 일과 민간사회의 일이 뚜렷이 구별되어 있는 전통의 영향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 프랑스의 경우에서 유의할 점은 정부수사기관이 임의로 전화 도청을 하거나 컴퓨터 기록을 기초로 일반 시민의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사찰’을 함부로 만들 수 없도록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수사기관 등이 전화 도청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무부의 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 안보에 관련된 것과 같은 중요한 사건이 있다거나 의심할 만한 뚜렷한 사유가 있기 전에 막연히 도청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확립되어 있다.

 

도청 당해 잡힌 범인 ‘무죄’ 판결 받아

 프랑스에서는 컴퓨터에 수록된 각종 자료에서 개인에 대한 자료를 뽑아 ‘정보철’을 만들고자 하는 기관은 CNIL(Commission National Informatique et Liberte)이라는 특별위원회에 신청하여 허가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 판사가 주재하는 이 위원회는 10여년전에 구성됐으며, 이 위원회의 지시를 위반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는다.

 최근에 어느 경찰기관이 불량 청소년에 대한 정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사면 조치를 받아 자유의 몸이 된 사람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특별위원회는 그러한 서류를 모두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

 프랑스에는 아직 도청에 관한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판사는 유익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판사도 있다. 지난 9월에도 마약 중독자 2명이 마약 매매 혐의로 잡혔지만 경찰이 도청을 통해서 수사 자료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담당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군정보기관은 아니지만, 정보기관이 민간정치인을 대상으로 공작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떠들썩해진 일이 몇해 전에 영국에서 있었다. 70년대초에 영국 정보기관인 M5 간부들이 “해롤드 윌슨 총리가 간첩 행위를 저지른 친구의 매국적 행적을 비밀에 붙여주었다”며 ‘소련 스파이와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혐의를 걸고, 그러한 혐의사실을 신문사에 흘리는 공작을 한 것이다.

 그 내막은 M5 의 전 직원 피터 라이트가 85년에 내놓은 책에 소개되어 있다. 《스파이 캐처》라는 이름의 이 책은 대처 총리가 판매 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더 잘팔렸다.

 85년 여름, 환경보호주의 단체인 그린피스 (Green Peace)가 ‘프랑스의 핵폭탄 실험 반대’운동을 펼치기 위해 뉴질랜드 항구에 가져다놓은 배를 군정보기관 요원 2명이 폭파해버린 사건 때문에 프랑스 전체가 떠들썩했었다.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를 자부해온 나라가 비밀 공작원을 시켜 폭파작업을 벌였다는 사실에 프랑스 여론이 발끈했다. 재선을 노리는 미테랑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놓은 사건이다.

 군인들은 뉴질랜드 경찰에 잡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빗발치는 여론 때문에 당시 국방부 장관을 샤를르 엘뉘가 사임했지만 지금도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테러리스트나 스파이를 잡으려는 정보기관이 접선 대상자까지 무고하게 사찰 대상에 포함시키는 예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막연히 여러 사람을 사찰하는 예는 없는 듯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