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연구’ 큰 걸음 내딛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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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鐘國씨 1주기 맞아 소장학자들 책 펴내‥·‘척결’ 현실적 필요성 밝혀

 최근 ≪친일파-그 인간과 논리≫가 도서 출판 학민사에서 나왔다. 친일(파) 문제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고 任鐘國씨의 1주기(11월12일)를 맞아 고인의 뜻을 기리며 소장학자들이 펴낸 이 책은, 친일파 척결의 역사적 당위성과 현실적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있어온 친일문제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짚고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는 한편 일본 신국가주의의 등장, 한말·일제강점기의 절개와 변절사 그리고 일제 때 만들어진 ‘국민학교’ 명칭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정치평론가 金三雄, 현대사연구가 李憲鐘 그리고 鄭雲鉉씨(중앙일보 조사부기자)가 주도해, 주요 필자로 참가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앞으로 이들은 이 문제에 관련된 책을 1년에 두권꼴로 속간할 계획이어서 친일파 척결의 실패로 말미암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모순에 대한 연구·논의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45년 17살로 해방을 맞을 때 학교 앞 연못에서 총을 쏴대며 고기를 잡던 일본군이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고 지껄이던 기억이 생생한데 정말 그렇게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임종국씨가 친일연구에 일생을 바치게 된 계기를 밝힌 대목이다. 그 ‘20년 후’인 지난 65년 한일회담이 열린 것이었다. 임종국씨가 몸서리치며 기억해낸 그 군인은 지금 되살아나고 있는 일본의 신군국주의의 뿌리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제·문화적으로 이미 일본은 한국에 다시 상륙, 약속대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친일파 척결과 일제잔재 청산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이를 인식하지 않고 있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에 대한 필자들의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친일파 척결,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과제는 단지 어제와 오늘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진로’와 직결된다고 ≪친일파‥·≫의 필자들은 그 성격을 규정한다. “일본 신군국주의의 ‘검은 손’을, 왜 지성인들까지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고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논문 <해방 이후 친일파 처리문제에 관한 연구>에서 이헌종씨는 △친일파 척결에 대한 각정파의 인식과 태도 △미군정기의 처리과정과 귀결 △정부수립 후의 처리와 귀결 문제를 총체적으로 접근, 분석하고 있다.

 비록 ‘주어진 해방’이었지만 8·15를 맞이한 우리 민족은 최우선적인 과제들을 안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일파 척결이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친일파 척결 의지가 드높았던 데 반해 해방직후 각 정파의 친일파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편차가 심했다. 건준·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친일파 척결을 위한 법안이 만들어지지만, 우익세력과 미군정의 ‘저지’로 친일파 척결문제는 정부수립 이후로 이월되고 만다. 그리고 정부수립 후 반민특위가 가동되지만, 친일파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면서 친일파 척결은 사실상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프랑스는 2차대전 직후 2천71건의 사형을 집행하고 3만9천9백명에 징역형을 내렸다. 벨기에나 덴마크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반민특위는 단 한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

 이씨의 논문에 따르면, 혈통적 민족의식을 내세우며 친일 자본가와 친일 관료·경찰 등을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우파지도자들은 친일파에 대한 ‘무원칙한 관용과 포섭’을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주체적 민족의식을 가진 민족적 양심세력과 혁명적 중간 좌파 세력을 토대로 한 ‘중간파 지도자’들은 친일파 배제 및 숙청을 모든 정치활동의 전제로 내세웠다. 이에 비해 계급적 민족의식을 가진 좌파 지도자들은 친일파 척결 의지는 뚜렷했으나 다분히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말았다.

 친일파 척결실패는 민족의 자존회복과 자주독립의 좌절로 드러났고 민족의식과 정기를 한데 모을 수 없게 했으며, 사회정의의 부재를 낳게 했다고 이씨는 결론짓고 있다. 그의 결론은 지금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이승만의 논리로 대표되던 친일파 척결 반대논리는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역사 실패원인의 절반은 민족 내부에 있다”

 친일파 문제 연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이헌종씨는 이 책에 실린 또다른 논문 <친일파 문제에 대한 연구현항과 과제>에서 “아직은 자료 제시나 역사적 기술의 수준을 크게 넘어 서지 못하는 상태”라고 평가하고 그 원인으로 친일파 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결여를 꼽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바야흐로 친일파문제에 대한 연구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독립운동사, 일제침략사, 친일·반민고사의 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이씨는 지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반적 인식은 물론 연구까지 독립운동사와 일제침략사에만 집중돼왔다. 이는 역사의 실패원인을 외세라고만 보는 편협한 시각을 양산했다. 이씨는 “역사 실패 원인의 적어도 절반은 그 사회나 민족의 내부에 있다”며 친일파문제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친일파 문제 연구의 필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필요성은 친일파 척결실패가 낳은 ‘거대한 역기능’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다름 아니다. 이 논문은 “신군국주의는 간접 지배 양식이므로 지배의 유지를 위한 피지배국의 친일세력 양성에 총력을 기울인다”라고 지적한 신용하 교수의 지적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를 인용하고 있다.

 친일파 군상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고 임종국씨 1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80년대 들어 문학 미술 음악 종교계로 번졌으며 일부 진보적인 잡지에서 친일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지난 8월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반민특위가 다뤄져 일반인들의 인식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이씨는 조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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