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채비하며 세돌잔치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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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긴장 감도는 가운데 기념식 치러

지난 12일 평민당이 창당 세돌 맞이 잔치를 치렀다. 바로 이틀 전 영광  함평 보궐선거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 때문인지 대체로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金大中 총재나 의원 및 당직자들의 표정 구석구석에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의 戰意을 다지는 듯 긴장감이 돌았다.

그럴 만도 하다. 사퇴정국을 등원정국으로 바꾸려는 시점에서 치른 잔치인 데다, 평민당의 등원 그자체가 국회에서의 원내투쟁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창당 3주년 기념사를 통해 "이 시점의 평민당이야말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운명을 짊어진 정당"이라고 자평했다. 거대보수여당은 국민으로부터 도덕성마저 의심받고 있고, 진보성을 표방한 민중당의 출현과 선명성을 내세운 민주당의 공세는 위협적이지는 못하지만 평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평민당은 어떤 방법으로든 '변신'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평민당의 지난 3년은 다사다난했다. 기념식장에 내걸린 '국민의 편에 서서 싸워온 3년' 이라고 쓰여진 현수막이 이를 상징한다. 창당하고 35일만에 치른 8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패배는 걸음마도 해보기 전의 신생 평민당의 목줄을 죄었다. 그러나 4  26총선에서 평민당은 다시 일어나 제1야당으로 부상, 4당체제에서 여소야대의 정국 주도권을 움켜잡았다. 김대중 총재의 입에서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는 술회가 나왔던 시절이다.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의 '寒波'에 얼어붙고, 뒤이어 3당통합의 열탕에 데이면서 평민당은 하루아침에 왜소야당으로 위축됐다. 최근 연출된 사퇴정국과 단식정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으로 버텨낸 싸움의 흔적이기도 하다.

김대중 총재는 지자제 전면실시와 지역감정 타파를 92년말의 대선고지를 향한 주춧돌로 삼고 있다. 영광  함평 보선은 지역성 탈피를 위한 김총재의 '몸부림'으로 평가된다.

‘김대중이 곧 평민당'이라는 등식도 평민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내부 장애물 중의 하나다. 이 등식의 부호가 바뀌지 않는 한 평민당은 세대교체론이라는 강풍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

창당 3년에 불과한 한국제1의 야당. 그러나 나이로 따지자면 민자  민주당을 훨씬 능가하는 최고령의 老黨. 평민당의 나이는 한국의 정치상황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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