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월급도 제때 못 타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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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분담금 미납 일쑤…평화유지군 운영에 차질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1월31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15개 회원국 정상회담에서는 유엔이 세계평화유지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인류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유지한다는 유엔헌장이 오랫동안 냉전으로 편가름을 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끼리 으르렁대는 통에 내팽개쳐져 있다가 이제사 겨우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임 부투로스 갈리 사무총장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잔뜩 벌려만 놓았던 사무국 직제개편에 착수해 우선 30명 선의 참모들 가운데 8명의 사무차장들을 골라 이들이 사무총장에게 평화유지와 관련된 업무를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갈리 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회 결정에 따라 오는 7월1일까지 세계평화유지와 조성 및 예방외교를 유엔이 모체가 되어 추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게 돼 있다. 이 방안들 중에는 돈 적게 들고 당장 실현될 수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 상설화계획도 들어있다. 이를테면 2천5백명 선에서 소수정예부대를 만든다든가 군수업자들에게서 기부금을 거두어 유엔군 참모대학을 세운다든가 스칸디나비아 같은 나라의 군대를 유엔이 동원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앙골라 내전에 출병한 쿠바군을 철수시키고 휴전을 이룩하는 데 유엔군이 투입되었고 또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과 아랍계 군대 사이를 떼어놓고 싸움을 말리는 일에 유엔군이 활약해 오고 있다.

 작년 한해 유엔은 평화유지군비로 약 6억달러를 썼는데 이 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서 동원된 군대 월급조차 제때 주지 못한 실정이다. 참다 못해 가나 정부는 유엔군에 편입된 자기 나라 군대를 빼내겠다고 통보한 일도 있었다.

 유엔 대변인은 “올해 평화유지군비가 약 7억달러로 잡혀 있으나 만약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 중 내전을 겪는 한두 나라에 군대와 민간요원을 증파하거나 새로 보내게 되면 아마도 12억 달러는 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의 경우 지뢰제거작업 등에 동원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약 1천3백명이나 되는데 앞으로 고급 민간요원들이 증파될 계획이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사자의 완전 동의를 기다리고 있는 유엔은 장차 1만명의 유엔군을 보내야 할 판이다. 지금은 75명의 연락장교단만이 나가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 병사 한사람 한달 월급은 줄잡아 1천달러로 돼 있다. 물론 나라에 따라 군인 봉급은 차이가 있다. 유엔군에 차출된 인도군대는 병사 한명이 한달에 6백30달러면 되지만 핀란드 군인은 무려 6천3백20달러나 든다. 그러나 유엔 사무국은 두나라에 군인 한사람당 한달에 1천달러씩만 쳐서 준다.

 그 1천달러조차도 다 주지 못하고 7백50달러로 깎아주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가장 분담금이 많은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몇년씩 돈을 안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정이 이 모양이니까 물러난 하비예르 페레스 데케야르 사무총장이 작년 11월 유엔 평화유지군비로 10억달러 기금을 따로 만들어 두고자 제의했지만 모두 들은 척 만 척했다.

 돈이 모자라면 유엔상설군을 아예 봉급을 적게 받는 나라 군대로 채우자는 제의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네팔군대는 정치적으로 완전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입장이고 용감무쌍하다는 소문이 난 군대지만(영국 용병으로 편입돼 있음) 월급은 아주 적게 주어도 된다는 것이다.

 지금 평화유지군비 할당상황을 보면 1백66개국 가운데 절반쯤 되는 가난한 나라 78개국에게는 한나라가 전체 예산의 0.2%씩을 내도록 돼있고 미국이 30.7%, 일본이 12.5%, 독일이8.9%인데 일본과 독일은 이보다 훨씬 많이 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는 이 돈을 내는 나라가 거의 없고 미국 같은 나라는 몇년씩 늦게 내고 있다. 일본은 마감 직전에 납부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연간 5억장의 종이를 쓰고 2만5천명을 거느리고 있는 유엔의 방만한 살림부터 규모있게 꾸려나가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못마땅해 한다. 영어 불어 중국어 노어 스페인어 및 아랍어 여섯나라 말을 공용어로 쓰는 유엔이 영어와 불어만 쓴다면 통역과 번역으로 드는 연간 2천만 달러를 금방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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