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언론’ 쑥쑥 자랄까
  • 허광준 기자 ()
  • 승인 199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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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 앞두고 지역 신문 활성화 조짐 … 재정 자립, 취재 환경 개선이 과제

한 동네에 사는 송씨네 소가 지난주에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아랫마을 박씨 할아버지는 칠순 잔치를 내일 모레 마을회관에서 열 예정이다. 이같은 일상사도 신문 기사 거리가 될 수 있을까. 만일 마을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이 있다면 송씨나 박씨 할아버지는 신문사에 연락을 해봄 직하다. 아마 다음주 신문의 ‘마을 소식’이나 ‘우리 동네 화제’ 같은 지면에 실릴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주변의 작은 소식을 지면에 반영해 지역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지역 신문이 내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적으로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역 신문이란 서울의 신문사가 발행하는 ‘중앙지’나 지방 시·도에 있는 일간 신문사가 발행하는 ‘지방지’와 달리, 시·군·구와 같은 작은 행정 단위를 무대로 삼아 발행하는 신문이다.

공보처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현재 전국 2백 70여 시·군·구에 지역 신문 4백33종이 등록되어 있다. 이 중 정기적으로 신문을 내는 것은 2백20여 종이다. 대부분 주간으로, 일반 신문 크기인 타블로이드 배판으로 발행한다. 개중에는 격주간으로 나오는 것도 있고, 드물게는 주 2회 발행하는 것도 있다.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제작되는 신문도 있다. 구독료가 정해져 있는 유가지이지만 대부분 무료로 배포한다.

‘지역 신문’이란 말은 법으로 규정된 개념은 아니다.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정간법)에 따른 정확한 표현은 특수 주간신문이다. 이 법 제2조 6항에는 ‘특수주간신문이라 함은 산업·과학·종교·교육 또는 체육 등 특정분야(정치를 제외한다)에 국한된 사항의 보도·평론 및 여론 등을 전파하기 위하여 매주 1회 발행하는 간행물(주2회 또는 월2회 이상 발행하는 것 포함)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입신·기업 이윤 노리는 발행인도
그러나 발행하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흔히 지역 신문이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이 신문들이 사실상 특수지라기보다 종합지 성격이 강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신문에 실리는 기사 분야는 일간지와 다름없다. 다만 그 대상이 시·군·구로 축소되어 있을 뿐이다.

지역에 개발 소식이 나오거나 군의회가 큼직한 문제를 꺼내면 반드시 1면 머리 기사가 된다. 중앙지가 한강 다리 부실 문제로 떠들썩하면 지역 신문은 마을 안에 불안한 다리가 없나 살핀다. 군청 옆에 개업한 의사는 주민 의료 상담을 연재하고, 그 지역이 배출한 위인의 일대기를 몇 차례에 걸쳐 싣기도 한다.

지역 신문에서 일하는 기자는 평균 4~5명이다. 이들의 주요 취재망은 지방의회·군청(시청·구청)·경찰서·교육청 같은 관공서이다. 그밖에 지역 특수성에 따라 농협이나 농촌지도소 같은 기관이 주요 출입처이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단체도 중요한 취재원이다. 기자들은 지역사회 사정에 정통하다. 한 지역 신문기자는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 정도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에서도 기자들을 잘 안다. 신문사에 따라 부락 단위까지 통신원을 두어 통·반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빠뜨리지 않고 수용하기도 한다.

현재 지역 신문을 발행하는 사람은 다양하다. 신문업에만 종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역 상공업자가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발행인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나이는 20대에서 60대까지 천차만별이다.

보도 영역에서 정치를 제외한 것은, 지역 신문이 특정 정치인의 홍보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한 지역 신문 발행인은 “현재 지역 신문 사주의 성향은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정치가성 발행인, 업자성 발행인, 언론인성 발행인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가성 발행인이란, 해당지역 지방자치 의원이나 국회의원 같은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선거를 겨냥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고, 업자성 발행인이란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 다른 사업을 하면서 신문업도 겸하는 경우를 말한다.

제 살 깎는 ‘광고 따기’ 경쟁 여전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지역 신문이 활성화하는 현상을 놓고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크게 늘어났다가 선거가 끝나면 곧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권혁남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지역 문화사업을 위한다는 순수한 발행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으나, 일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또는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관리하려고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신문은 지역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라고 한 논문에서 밝혔다.

한 지역 신문이 펴낸 홍보자료에는 ‘구독료를 받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다짐 속에는 지역 신문이 안고 있는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동안 일부 지역 신문이 부정적 역할을 해온 데 대한 반성인 셈이다. 이 고민은 주로 신문의 재정을 유지시켜 주는 광고 수주를 둘러싼 것이다.

지역 신문은 광고에 의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역 신문 가운데 광고 수입이 전체 수입의 70%를 넘는 신문사가 80% 가까이 되었다. 특히 여러 신문이 경쟁하는 지역에서는 제한된 광고 시장을 놓고 광고 수주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광고 따내기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한 지방 중소업체는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광고료는 지불하겠지만 광고는 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 신문에 광고가 나가면 다른 신문에서 찾아와 광고를 달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서 취재 환경이 열악한 점도 지역 신문의 고민거리이다. 한 신문은 창간하고 나서 1년 동안 줄기차게 관공서를 ‘조졌다’고 한다. 취재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친 뒤에야 정상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방화 시대를 향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지역 신문이 활동할 무대는 넓어지고 있다. 지역 신문은 △피부에 와 닿는 소재로 뉴스를 구성해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지역 정치와 행정을 바로 옆에서 감시하며 △주민의 민원을 행정 기관에 전달하고 △지역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선진국에서는 ‘풀뿌리 신문’이라 부르는 지역 신문이 이미 중요한 보도 매체로 자리잡고 있다.

“지역 신문 역할 커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언론은 이제 시작 단계나 마찬가지이다. 이미 지역 신문이 발행되어 왔으나, 지역 언론 활동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인 지방자치가 활성화하지 못해 취재에서 신문사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인 활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많은 지역 신문이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지역 신문 발행인은 앞으로 지방화 시대의 주역은 지역 3륜, 즉 지방의회·지방자치기관·지역언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내년부터 종합유선방송이나 지역 민방이 시작되므로 경영 환경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가뜩이나 광고 시장이 좁은데 여러 신문이 난립할 경우 제 살 깎아먹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크다. 일부에서는 지역 신문이 경쟁적으로 발행되는 상황은 아직 제대로 자유 경쟁을 겪어보지 않은 지역 언론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로 보기도 한다.

지역 신문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조직된 한국지역신문협회 복원술 사무국장은 “지역 주민이 자기네 시·군·구 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 지역 신문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지방 행정 당국이 공익 광고나 결산 광고 등을 지역 신문에 내어 건전한 지역 언론을 육성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許匡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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