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사기, 광고 보면 알 수 있다
  • 정희상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06.04.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졸 구직난 속 피해 급증… ‘당사 총무부, 사서함 ○호’만 표기 땐 의심

올해 대학 졸업반인 오재왕씨(서울 ㄱ대 행정학과 86학번)는 최근 겪은 악몽 같은 경험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악몽은 취업준비를 위해 대학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던 지난 9월7일부터 시작됐다. ‘사상 최대의 취업난’ ‘대졸 신입사원 대폭 축소’ ‘취업대란’ 등 올 취업 기상도를 알리는 내용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던 그 즈음 오씨는 불안한 가운데 한 조간신문 구석에 박힌 거의 ‘환상적인’ 사원모집 광고를 놓칠 수 없었다.

“대졸 신입사원 공채, 기획실 총무부 근무, 수습 3개월 64만원, 수습보 3개월 85만원, 이후 1백만원, 보너스 8백%, 조합주택 자녀학자금 지급, 주택자금 3천만원 융자, 해외연수 특전”

서둘러 구비서류를 챙겨 보낸 오씨에게 회사는 이틀 만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를 보내왔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7명의 동료와 함께 그가 면접에 합격해 9월8일부터 출근하게 된 회사는 영등포에 있는 국내 유명 생명보험회사인 ㅎ생명이엇다.

며칠 간의 교육과정 이후 회사는 정식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습기간에 보험영업도 배워야 한다면 3개월 내로 1백20만원어치의 보험계약을 해올 것을 요구했다. 회사 방침이 본래 그런 줄 알았던 오씨는 형 누나 등 주변 친지들을 끌어들여 단숨에 50만원 가량의 보험계약을 해다 줬다. 첫달은 60만원을 채워야 한다는 팀장의 귀띔에 따라 나머지 10만원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밀어넣었다.

“악덕 업체와 무책임한 언론의 합작품”

그러나 곧 오씨는 입사한 회사가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일 뿐 아니라 그를 유인했던 신문의 사원모집 광고 문안도 온통 사기 투성이였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를 이끌 던 팀장이 “보험모집인은 보험모집인일 뿐이다. 다른 생각 말고 열심히 실적이나 올려라”고 충고한 것이다. 월급은 없고 계속 실적에 따른 수당만 지급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30여일 동안 철저히 이용당했습니다. 10월15일 퇴사하면서 월급이라도 달랐더니 그들은 제가 오히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것저것 다 제하고 6만6천원을 디밀더군요. 함께 입사했던 동료 일곱명도 모두 그렇게 빠져나왔습니다. 며칠 뒤 신문을 보니 그 회사 사원모집 광고가 또 실리더군요.”

가슴에 짙은 멍울을 안고 사회에 내디딘 첫발을 돌려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 오씨는 “취업사기는 악덕 업체와 영리욕에 눈먼 일부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올 하반기 대졸 취업난이 사상 유례없이 심각하다. 지난 11월1일 일제히 실시된 주요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 시험에서 취업될 인원은 1만2천7백여명으로 지난해 1만7천여명에 비해 25%쯤 줄었다. 국내 5백대 기업군 중 올해 신입사원을 전혀 뽑지 않는 회사도 1백20여개 나 된다. 이처럼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내년 2월 대학졸업 예정자는 19만2천여명으로 올해보다 2만명쯤 더 늘어나게 된다.

대졸 취업은 대기업 공채(인턴사원제 표함) 외에도 기업이 각 대학 취업보도 창구에 추천을 의뢰해 이뤄지는 채용방식과 취업 희망자 개개인이 매스컴의 모집광고를 보고 직접 문을 두드리는 방식이 있다. 올해 총 6망명이 이들 창구를 통해 취업하리라는 것이 노동부의 집계이고 보면 사실상 20만명에 이르는 졸업생 중 14만명은 고스란히 취업재수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취업대란’이라는 신조어가 어색하지 않을 이같은 대졸 취업난을 비집고 취업예비군을 울리는 각종 취업사기는 부쩍 늘고 있다. 취업사기는 신문 등의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했다가 당하는 경우가 주류를 이룬다.

취업사기의 여러 유형

취업을 미끼로 한 사기행각 중에는 응시자의 호주머니를 직접 노리는 경우도 있다. 정규직 채용을 조건으로 그럴 듯하게 속여 등록비를 내게 한 후 떼먹거나 물품을 떠안기고 그 대금을 취업자의 호주머니에서 가져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이 안돼 계속 준비중이던 최모씨(서울 ㅅ대 85학번)는 얼마전 모 조간신문의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한국 조인’이라는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기획실 근무, 기본급 1백만원, 해외연수, 영어회화 지도” 등 솔깃한 내용에 회사명, 연락처까지 기재된 것이 일단 안심이 되었다.

면접에 합격하고 출근한 그에게 회사는 정식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애사심을 시험해보겠다며 물품 2백70만원어치를 팔아오라는 것이었다. 최씨는 함께 입사한 6명의 동료와 상의해 빚을 내서라도 각자가 물품을 인수해 정규직으로 일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물품대금을 받은 회사는 당초 약속과는 달리 정규직 발령은커녕 계속 물건을 팔아 수당만 받으라고 요구했다. 뒤늦게야 이 회사의 취업사기 행태를 알아챈 최씨 등은 물건을 전부 반환하고 돈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이 억울한 사연을 서울 기독청년회(YMCA) 시민중계실에 제소해 YMCA측이 검찰에 업주를 고발했다. 결국 남부지청의 수사로 한국 조인사업주는 구속됐고, 최씨 등 7명의 피해자들은 물품대금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취업사기를 저질른 업주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고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멍든 가슴만 안게 되는 실정이다.

각 대학 취업알선 창구와 YMCA 시민중계실 등에 따르면 대졸자 상대 취업사기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그럴 듯한 정규직사원모집 광고를 내걸고 책 외판이나 보험계약 등에서 일정 수준을 채워야 발령을 낸다고 유인한다든지 고소득을 보장한다고 속여 등록비를 받아내는 경우,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면 실적을 인정해 정규직으로 발령내는 경우가 그것이다. 또 여학생을 상대로 해서는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성적 희롱을 일삼거나 전공 외의 교양이 업무에 필요하다며 교육비를 내게 하는 사례도 있다.

회사 이름 · 전화번호 반드시 확인해야

이같은 취업사기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취업준비생들이 모집광고 등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서울지역 대하가 취업지도협의회장으로 있는 강영은씨(43 · 외국어대 학생처 취업보도주임)는 “사회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대부분 당한다. ‘당사 총무부, 당사 인력관리실, 사서함 ○○○호’ 등만 표기된 모집광고는 1백% 사기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사원모집광고가 아무리 그럴 듯할지라도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반드시 확인해 책임자와 통화를 한 후 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일해보려는 사회 초년생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각종 취업사기는 피해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사회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으므로 강력한 단속과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YMCA 시민중계실 정석구 간사는 “피해자들은 대개 상황이 불안하고 다른 취업의 길을 찾아야 할 처지이므로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많다”면서 “그러나 구제는 크게 복잡한 것이 아니므로 피해자도 시민중계실 같은 곳에 제소해 개인적 피해도 보상받고 또 다른 피해를 막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