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가는 평민당의 외출 재개된 지자제 협상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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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당선 “빠르면 10월말 늦어도 11월초 평민 등원”

자치단체 선거시기 · 정당공천 여부 놓고 양당 막후 접촉

 평민당의 등원 날짜가 거의 확실히 잡혀가고 있다. 현재 민자당 지도부는 평민당 등원 날짜를 10월 마지막주 월요일인 29일, 아니면 늦어도 11월초쯤이 되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물론 이런 관측은 20일 마침내 13일간 단식을 푼 평민당 金大中 총재가 그 후유증에서 회복되는 시기와 구체적인 여야합의까지를 고려한 起算이다. 이와 관련 민자당 金泳三 대표는 20일 부산 기사회견에서 “내주 일주일일 안에는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민자당이 22일 국회 본회의를 한차례 더 연기한 것도 평민당에게 당근 입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자당의 金潤煥 원내총무는 지난 17일 당무회의에서 원내보고를 통해 “평민당과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본회의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할지, 아니면 좀더 기다려야 할지를 주말까지 지켜보겠다”고 일정 연기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김총무의 말은 민자당 당직개편에 따른 대야 협상창구 교체, 신임 김총무와 金鍾泌 최고위원의 평민당 金大中 총재 방문 등 일련의 유화 제스처 이후 재개된 평민당 金令培 총무와의 막후 접촉에 따라 나온 것이어서 각종 현안에 대해 평민당과 상당한 교감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의원까지도 단식에 동참하며 대여공세를 한껏 강화했던 평민당은 단식을 마감한 20일 이후에도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 등 모든 약속사항을 추호도 변동할 수 없다”고 대외적으로는 한층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가 관측통들은 대부분 이런 강경노선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평민당이 겉으로는 “우리는 지난 4당체제 당시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펴고 있지만 김윤환 총무의 병원방문 때 김총재가 “총무에게 일임했으니 총무끼리 알아서 잘해달라”고 말한 이후 여야 총무가 막후접촉에 능동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머지 않아 국회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민자당 지도부 또한 金泳三 대표최고위원이 김총재를 방문한 이후 급속히 진전되기 시작한 여야협상의 물꼬가 이제와서 되돌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17일의 청와대 조찬회동 직후 당사로 돌아온 김대표가 곧이어 열린 당무회의에서 “지자제 문제는 당이 자신감을 가지고 반드시 실시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언한 사실이나 20일 부산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국 정상화에 대한 자신감을 거듭 표출한 것도 이같은 민자당의 기대감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따라 정가의 관심은 평민당이 제시한 두가지 등원조건, 즉 지자제 전면실시와 내각제 포기선언이 과연 어느 선에서 합의되느냐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 두가지 핵심 사항은 차기대권의 향방과 직결되기 때문에 너욱 민감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평민은 정당공천에 대해서도 탄력적

 지자제에 대해 민자당이 현재까지 내놓은 최종안은 △91년 상반기중 지방의회선거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 사이에 자치단체장선거 △지방의회 및 기초 자치단체장선거에 대해서는 정당공천제 배제 등이다. 이 절충안은 대통령선거 이전에 특별시장, 직할시상, 도지사 등을 뽑는 광역 자치단제장선거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상당부분 평민당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정당추천제에 대한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아서 평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평민당의 김총재가 단식에 돌입했을 당시 민자당의 朴俊炳 사무총장이 “정당공천제만 배제되면 언제든지 일괄 실시할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서 金台植 대변인이 “무슨 소리냐.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한 핵심이 정당공천제인데 그걸 빼라는 소리는 빵에서 ‘앙꼬’를 빼라는 소리다”라고 일축한 사례에서 보듯 정당공천제는 평민당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물러설 수 없는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당공천이 아닌 정당표시제등의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정당표시제는 야권의 후보난립을 유도, 결국 야권성향의 표가 갈라지는 결과를 기대하는 여권의 전략이니만큼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던 평민당은 최근 이에 대해 탄력적인 자세변화를 보이고 있다.

 단식정국을 이끌어낸 평민당은 지자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치 지자세만 실시되면 얽혀 있는 모든 정치현안이 한순간에 풀릴 수 있다는 듯한 태도다. 평민당이 한사코 정당공천제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정가에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

 우선 차기 대통령선거의 전초전로서 지자제선거를 통해 평민당 세력을 확고하게 다지려 한다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된다. 정가 일부에는 평민당의 정당공천제 주장을 공천권행사를 위한 당략과 연계시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예컨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대한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얻는 물질적 이익을 지자제에서도 계산에 넣고 있지 않느냐는 풀이다.

 따라서 현재 민자당과 평민당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사항은 △정당공천에 의한 지방의회 및 기초 자치단체장선거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의 선거시기로 압축된다. 그러나 기초 및 광역자치단제장의 선거 시기는 민자당내에서도 민정계와 민주계 사이에 이견이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어서 그리 쉽게 타결될 전망이 아니다. 민주계는 총선과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동시실시를 주장하는 반면 민정계와 공화계는 총선과 대통령선거 사이에 실시하자고 주장, 선거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민주계는 자치단제장선거를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자고 주장하면서 그 논리적 근거를 한번이라도 선거를 줄임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줄이자는 데서 찾고 있지만, 사실은 민자당내 기류를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선거로 이끌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정계 중진 ㅇ의원은 “국가적 차원에서라면 동시실시를 해야겠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려 동시실시가 달갑지는 않지만 이를 반박할 명분이 빈약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따라 김윤환 총무가 민주계의 黃秉泰 의원과 공화계의 金鎔采 의원을 각기 개별접촉, 계파간 이견조정에 나서기는 했지만 자치단제장 선거 시기에 관한 한 통일된 입장을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김윤환 총무는 “현재 저쪽이나 우리나 구체적인 양보안을 마련치 못한 상태”라고 말해 계파간 이견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음을 시인했다. 특히 김용채 의원은 지자제가 민정계와 민주계만의 주도로 논의되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17일 당무회의에서 “작금의 경제여건에 비춰볼 때 지자제 실시는 무리인 만큼 지금이라도 지자제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국민을 설득하자”는 주장을 할 만큼 지자제에 대한 인식부족을 드러내 당내 여론수렴이 그야말로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계파간 불열상 노출시키지 않으려 안간힘

 민자당이 최근 소속의원 특히 각 계파의 중진에게 지자제에 관한 언급을 삼가달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창구를 총무로 단일화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계파간의 분열상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미봉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지시에 따라 민자당 기자실 알림판에는 “00일 총장님댁에 기자들 오지 말라십니다”라는 공고가 나붙는 등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대표는 “시기(광역 자치단체장선거의 실시시기)가 정해졌으나 말할 수 없다”고 말해 타계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현단계에서 평민당이 과연 지자제를 △91년 상반기(광역 지방의회선거) △대선 이전(자치단체장선거)의 2단계로 나누어 실시하자는 민자당 주장을 수용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평민당은 가능하면 모든 지자세 선거를 전면적으로 동시에 실시하자는 입장이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선거를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는 물론 시 · 군 · 구 등의 기초자치단체도 일정 부분은 평민당이 장악,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행정력의 동원에 의해 야권이 일방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을 막자는 의도이다.

 

양 김의 ‘공동보조’지속될지 관심

 이와 관련, 민자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인구 30만명 이상이 되는 시나 구 등은 행정상 기초단체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해 이에 대해서도 양보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표는 20일 기자회견에서 “기초자치단체장도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국가발전에도 이롭다”고 거듭 강조, 이 사항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김대표는 자신이 “평민당 김총재를 방문했을 때 지자제, 내각제개헌, 보안사해체 등 3가지 사항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는데 내각제개헌 포기에 대해 얘기한 시간이 제일 많았다”고 밝히고 “그날 충분히 김총재에게 설명했으니 내각제 문제는 그 정도면 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해 내각제에 대해 어느정도 확신을 얻은 김총재가 지자제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양보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대표는 또 “평민당 김총재가 내각제 개헌은 무조건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말하고 “권력구조의 변경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거듭 개헌의 불확실성을 강조해 차기 권력구도는 대통령직선제로 굳혀질 수밖에 없다는 ‘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평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92년 4월 총선이라는 시한이 현재의 불투명한 정국일정 속에서는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자치단체장 선거 시기를 반드시 총선 시기에 맞추어 논의하려는 것 자체가 허구라는 입장이다. 즉 현 정국의 긴박한 상황으로 미뤄볼 때 조기 총선주장이라는 카드가 아직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평민당 등원 이후 정국의 양상은 김영삼, 김대중 두 김씨가 지자제 실시에 궤를 맞춘 ‘공동보조’를 얼마만큼 지속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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