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시장 대문 열고 외국기업 큰기침
  • 김태희 (조사분석실)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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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업 서비스 향상 게을리 하면 안방 내줄 수도

 외국 광고회사가 몰려온다. 91년부터 외국광고회사의 국내 투자가 완전 자유화되면 합작투자 및 주식인수 등의 형식으로 89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 광고회사들이 1백% 단독투자로 국내 광고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지난 1970년에 1백27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광고비는 80년대에 들어서 매년 20%씩 늘어났다. 광고비는 89년 1조5천6백억원으로 세계 9위, 아시아 2위를 기록했고 90년에는 1조8천억원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중 대부분은 텔레비전, 신문 등 매체를 소유한 회사에 돌아가지만 광고대행사의 몫으로 떨어지는 금액만 90년의 경우 2천2백억원에 달하고 광고시장의 급팽창에 따라 그 몫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외국 광고회사가 몰려오면 국내 광고시장을 얼마나 내주게 될 것인가. 개방 후 70%이상의 시장을 외국 광고회사에게 점령당한 동남아시아의 여러나라처럼 될 것인지. 일본처럼 자국 광고회사가 우위를 지킬 것인지 관심의 초점이다.

 

낙관론과 비관론 엇갈려

 비관론을 펴는 사람도 많다. 우선 우리보다 앞선 과학적 광고 이론과 기법 등을 앞세운 수준높은 광고서비스는 그간 국내 광고수준에 만족하지 못했던 광고주들을 유혹할 것이다. 특히 국내 외국계열 회사들의 경우 외국 광고회사쪽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쓰는 광고비는 국내 총광고비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튼튼한 자금력도 위협적이다. 한국광고시장을 매력적이라도 판단한 이상 처음에는 손해가 나더라도 물량공세를 펴 국내시장을 잠식할 것이다. 또한 국내 광고회사 직원들의 임금은 높으나 능력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영세한 국내 광고회사는 문을 닫게 되고 외국광고회사의 국내광고시장 지배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낙관론을 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조사연구기관인 A.C닐슨사의 金龍漢 사장은 “이미 국내에 진출해 장사를 하고 있는 일부 외국회사는 외국 광고회사를 선호할지도 모른다. 허나 동남아시아와 같이 시장의 대부분을 내주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있다. 국내 광고시장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국내 총광고비의 47%(89년 기준)를 차지하는 18개 대그룹 산하 2백50여개 회사의 광고는 그룹계열 광고회사(인하우스에이전시)로 갈 것이기 때문에 일단 이 부분만큼은 외국 광고회사가 침투하지 못할 것이다. 광고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외국 문물에 맞서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한 지금 외국회사가 이러한 문화의 장벽을 쉽사리 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차이도 지적된다.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등과 같은 동남아국가에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외국광고회사가 판을 치게 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외국 광고회사의 국내시장 진출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대그룹계열에 속하지 않은 독립광고회사들이다. 실제로 주식인수나 합작투자 형태로 외국광고회사가 부분적으로나마 국내영업을 시작하자 독립광고회사의 큰 고객들이 빠져나가고 있고 전문인력마저 빼앗기고 있다. 이에 대비해 거손 대보기획 나라기획 한덕광고 리젠시 등을 비롯한 비계열 독립광고 34개사는 지난 3일 한국독립광고회사연합회라는 권익단체를 발족시켰다. 이날 회장으로 선인된 鄭大吉 대보기획 사장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시행하고 있는 수수료제도의 개선이라든가 현재 이발소 목욕탕 등과 마찬가지로 기타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있는 광고업을 독립산업으로 인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보처는 광고시장 개방에 대비해 지난 1월 산하에 광고진흥국을 새로 두었고 업계와 학계로부터 광고산업 보호를 위한 ‘세부협상대책보고서’를 받는 등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보처의 金仁哲 광고정책과장은 “사실 우리의 광고시장 개방은 아시아권에서는 늦은 편으로 그간 개방시기를 끌 만큼 끌어왔다”라고 강조하면서 “광고제작에 필요한 첨단 기자재 도입 때 관세혜택을 주는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방안을 고려중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공보처는 자본력이나 기술이 뒤떨어지는 광고회사들에게는 외국 광고회사의 합작투자 유도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덕광고의 金義哲 사장은 “독립광고회사들이 외국 광고회사와 합작할 경우 유리한 점도 많으나 현행 수수료 제도나 세무관계와 같은 경영적인 측면을 고려해볼 때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혔다. 허나 몇몇 독립광고회사들은 기존의 이익확보와 서비스 향상을 들어 이를 수용할 뜻을 은근히 비치고 있다.

 이처럼 시장개방에 대비한 움직임이 부산하지만 광고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광고산업의 걸림돌로서 대형광고회사의 시장독점, 대행수수료 문제, 고임금과 인력난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간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대부분의 대그룹들이 광고회사를 가지고 있고, 이 그룹계열사들의 광고는 자연히 계열광고회사가 맡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계열과고회사들은 국내 총광고비의 무려 78%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구조가 외국 광고회사의 국내 진출에 큰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광고회사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광고회사는 특정 광고주와 매체로부터 완전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광고회사가 매체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어떠한 형태로든 광고주에게 되돌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가에서 엄수되고 있다. 우리도 이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시급히 요청된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광고대행수수료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대그룹에 속하지 않는 비계열 광고회사는 텔레비전 광고를 할 경우, 광고회사가 광고주로부터 받은 전체 금액 중 10%의 수수료를 제한 나머지 90%를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넘겨준다. 그러나 대그룹계열 광고회사의 경우 수수료를 6%만 뗀다. 한편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방송, 문화예술진흥사업의 명목으로 쓰이는 공익자금 조성을 위해 전체 광고비 중 10%를 다시 제하고 나머지 80%를 방송사에 지급하고 있다. 외국 광고회사는 비계열사로 분류되므로 계열사에 비해 높은 수수료를 받게 되며 이것은 외국광고회사의 경쟁력을 더욱 키우게 된다. 이에따라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내년부터 계열사의 수수료율을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광고인의 고임금화 현상과 인력난도 들 수 있다. 광고시장이 커지면서 늘어나던 광고인에 대한 수요가 지난 89년 한국방송공사의 전파광고대행 인정조건이 대폭 완화되면서 더욱 크게 증가했다. 신설광고회사가 늘어나고 외국 광고회사가 진출함에 따라 광고인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그만큼 인건비도 상승했다. 방송광고대행을 인정받은 광고회사를 기준해 그 인원수를 살펴보면 88면 16개사 2천9백17명에서 89년에는 35개사 3천6백93명으로 늘어났다. 90년에는 방송광고대행을 인정받은 회사가 다시 67개로 증가했고 현재 이를 신청한 광고회사만도 20여개사나 된다. 따라서 광고회사간의 이전투구식 스카우트와 인력난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양적 성장에 비해 광고인의 질적 상승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 HDM코리아의 金世敏 이사는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을 통한 광고전문가의 육성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의 개방은 국제적인 추세이다. 중요한 것은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광고인의 자세이다. 진지한 자세가 없는 한 국내 광고산업은 기술과 자본력이 우세한 외국 광고회사에 밀려 힘없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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