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용품 시장에 ‘다국적군’ 대공세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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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자유화·소비 고급화로 시장점유율 증가세


 

 비누 치약 칫솔 세제 등 현대인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생활용품 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다. 국내생활용품 시장은 그동안 (주)럭키가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가운데 애경산업 동산유지 태평양화학 동산유지 등이 나머지 시장을 분할해왔다. 그러나 91년 말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앞세운 제일제당이 생활용품시장에 뛰어들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프록터 앤 갬블(P&G), 유니레버 등 세계 초일류 생활용품 업체가 국내 합작선과 결별함으로써 국내 기업과 다국적 기업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생활용품은 모든 가정에서 쓰여 폭넓은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시장이 확대되는 데는 한RP가 있다. 세탁용 세제를 예로 들면 1년에 2통을 쓰던 주부가 갑자기 빨래량이 늘어 세제를 3~4통씩 쓸 리 없기 때문에 다른 기업이 뛰어들면 시장확보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작년 화장품·세제 광고비 1,338억

 변화의 바람은 세탁용 세제에서 불기 시작했다. 럭키 애경산업 평화유지 무궁화유지 동산유지 옥시 등 기존 생산업체가 분할하고 있던 세제시장에 제일제당이 뛰어들면서 난기류가 형성되었다.

 제일제당은 91년 12월5일 농축세제인 비트를 출시하면서 광고·판촉 경쟁을 불질렀다. 한국광고데이타의 조사에 따르면 91년 한해 동안의 화장품·세제 광고비는 모두 1천3백38억원. 이중 광고비 1위는 럭키슈퍼타이로, 1년 광고비는 27억4천만원이었다. 제일제당의 비트는 12억1천만원으로 11위를 차지했다. 비트가 출시된 시점이 12월초라는 사실로 볼 때 제일제당의 광고 공세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럭키는 비트가 나올 것에 대비해 이보다 한달쯤 앞질러 역시 농축세제인 한스푼을 내놓았는데 한스푼 광고액도 11억3천만원이나 됐다.

 올 상반기에는 판촉물 경쟁도 치열했다. 농축세제를 사는 소비자에게 장바구니·세숫대야 등을 선물했는데 집에서 두고두고 쓸수 있는 고급품이어서 업계에서는 “1만원어치 사면 1만원어치 판촉물을 준다”는 다소 과장된 평이 나오기도 했다.

 농축세제란 적은 양으로 많은 빨래를 할 수 있는 세제로, 포장물 크기가 기존 세제의 3분의 1정도 밖에 안된다. 제일제당측은 “포장이 작아 생산자로서는 물류·창고 비용이 적게 들고 유통업계는 좁은 공간에 좀더 많은 제품을 진열할 수 있을뿐더러 소비자는 들고다니기 간편해 컴팩트형 농축세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농축세제는 세계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하고 있으므로 제일제당의 차별화 전략은 어느정도 먹혀들어간 듯 보인다.

 농축세제의 등장으로 기존 세제 시장 규모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럭키는 한스푼을 내놓아 슈퍼타이의 감소분을 한스푼으로 지켜냈으나 중소업체는 시장 축소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91년 3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던 애경산업은 농축세제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기존 세제의 판매량이 줄어들자 표백 기능을 첨가시킨 농축세제를 내놓아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럭키와 제일제당이 농축세제 시장을 반분하고 있는 형국이다.

 제일제당은 현재 세제 샴푸 린스 등 4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다른 품목에도 뛰어들 것이 확실하다. 세제의 경우 시장 규모는 2천억원 정도이고 샴푸와 린스는 1천억원 규모밖에 안되는 데다 후발업체로서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품목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큰 거품’ 일으키는 수입 비누

 한편 8백억원 규모의 화장비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예로부터 민간요법에 많이 사용되어온 식물성을 함유한 비누 곧 살구맛사지비누·알로에비누(럭키) 인삼비누·오이비누(동산유지) 난이랑비누(애경산업) 삼미비누·쑥비누(태평양화학)등으로 수입비누에 맞서고 있으나 프록터 앤 갬블·유니레버·존슨앤 존슨 등 다국적군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의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프롤터 앤 갬블은 89년 7월 서통과 합작으로 서통P&G를 설립해 한국에 진출했으나 지금은 완전히 결별한 상태다. 프록터 앤 갬블은 값이 싼 아이보리비누를 내세워 비누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합작 또는 단독 형태로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생활용품업체들은 국내에 공장을 지어 비누를 공급하기보다는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비누의 시장 점유율은 해가 바뀔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아이보리·제스트(프록터 앤 갬블) 도브(한서실업) 세바메드(유한양행) 뉴트로지나(존스 앤 존슨) 등 외국 비누의 수입액은 90년 36억원에서 91년 52억원으로 40% 이상 늘었으며 92년에는 수입비누의 시장점유율이 1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칫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랄-B(유한양행) 조르단(미원통상) 리치(존슨 앤 존슨) 클로즈업(애경산업)등  유명 칫솔의 수입은 90년 1천2백만자루(29억7천만원)에서 91년 1천7백만자루(59억5천만원)로 늘어났다. 물량기준으로는 42%, 금액기준으로는 95% 신장한 수치다. 92년에는 수입 증가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 칫솔 수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국산 칫솔의 가격은 5백~1천원선인 반면 수입 칫솔은 1천5백~2천원이지만 국민소득 수준 향상으로 구강보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입 칫솔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수입 칫솔의 시장점유율의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치약의 경우 콜게이트·헨켈·프록터 앤 갬블·유니레버 등 외국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치약은 40%의 시장점유율을 넘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세제와 샴푸는 국산제품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비누 치약 칫솔 등 일부 품목의 국내시장은 수입자유화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합작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독자행동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국내 생활용품 시장은 더욱 거센돌풍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니레버와 결별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애경산업측은 “유니레버 상품이 매출의 18%밖에 안돼 그들이 떠나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면서도 “열심히 광고하고 판촉활동도 꾸준히 벌여 시장점유율을 어느 정도 높여놓으면 떠나는 것이 다국적 기업의 생리”라고 꼬집고 있다. 애경산업측은 “그동안 유니레버가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는 일을 방해했을 뿐더러 원료도 그냥 갖다 쓰게 해 기술개발에 큰 도움이 안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근시안적 안목으로 경쟁 상대인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아 그들을 열심히 선전해준 데도 잘못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한양행과 킴벌리 클락이 합작 형태로 설립한 유한킴벌리는 20년이 넘게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힘은 프록터 앤 갬블이 팸퍼스와 위스퍼 등 아기기저귀와 생리대에서 돌풍을 몰고온 것에서 증명된다. 우리나라에 아기기저귀와 생리대를 처음으로 선보인 유한킴벌리는 이들 품목에서 여전히 아성을 구축하고 있으나 프록터 앤 갬블은 91년 팸퍼스의 시장점유율을 17%로 끌어올렸다.

 다국적 기업의 독자 생산 및 수입 움직임에 대해 국내업계에서는 당분간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국 소비자의 기호를 아직 잘 모르고 유통업체와의 관계도 국내업체에 비해서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취향이 고급화하고 있으므로 국내업체가 기술개발을 게을리할 경우 다국적 기업의 시장잠식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보호받던 시장의 울타리는 이미 걷어치워졌다. 한정된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내놓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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