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朱一의 ‘우울한 코미디’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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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신문광고 등 전례없는 물량 반격 … 양당구도 깨기 공세

 무소속이나 야당 출마 연예인에 대한 ‘정치 탄압’ 시비가 다시 일고 있다. 코미디언 李朱一씨가 12일 돌연 홍콩으로 출국하면서 급부상된 이 문제는 이씨가 17일 귀국, 외압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한 뒤에도 파문이 계속 번지고 있다. 민자당과 국민당이 이미 이 문제를 둘러싸고 대대적인 공방전을 벌임에 따라 이번 파문은 이주일씨 개인의 출마 여부에 상관없이 선거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출마자 내지 야당 참여 연예인들에 대한 ‘정치 탄압’ 문제는 △權正達 옛 민정당 사무 총장의 갑작스런 출국 △姜富子씨가 13년 동안 진행해온 KBS2 라디오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프로그램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밀려난 사실 △鄭鎬溶 전 의원을 귀국 직후부터 미행한 사실 등과 연결되면서 점점 더 의혹으로 부풀려졌다. 또한 민주당 李相洙의원은 “李順載 민자당 서울 중랑 갑 위원장이 인기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주인공 대발의 아버지로 계속 출연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권정달씨 문제에 대해서 민자당측은 “권씨에게 압력을 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으나 권정달씨는 출국하기 전에 “옛날 내가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공천 및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공천 및 선거에 관여할 때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등 외부로부터 출마 포기 압력을 상당히 받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15일 민자당에 탈당계를 내고 경북 의성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鄭昌和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당은 물론 청와대와 안기부 등으로부터 조용히 있어달라는 회유와 압력이 많았다”고 주장함에 따라 외부 압력설은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민자당 탈당자인 金一潤 의원(경주시)도 “나와 함께 탈당한 당원들을 다시 입당시키라는 압력이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이주일씨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당이 정치적으로 이를 너무 지나치게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민당은 14일과 15일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 1면에 ‘盧정권은 정치탄압을 중지하라’는 전단광고를 게재, 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 막대한 광고료를 생각하며 국민당의 자금력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국민당은 이 광고에서 이주일씨와 강부자씨를 예로 들면서 “노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역설해온 민주주의와 공명선거는 한낱 국민을 속이기 위한 羊頭狗肉 아닌가”라고 현 정권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렇지만 과연 국민당 주장대로 이주일씨가 구리시에 공천됐었는지는 왔다갔다 하는 이씨의 말처럼 불분명하다. 이씨는 홍콩 특파원들과 처음 만났을 때는 외부 압력설을 시인했으나 추후 “공천을 신청한 적도 선거사무실을 낸 적도 없고, 출마권유도 거부했으며 출마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의 측근들은 “이씨가 출마권유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한다.

 이씨의 주장에 따른다면 그는 국민당의 출마 권유와 혹시 있었을지도 모를 정치적 압력 사이에서 견디기 힘든 중압감을 느꼈던 듯하다.

 정계 일각에서는 “이번 ‘이주일 파문’으로 인해 이익을 본 것은 역시 국민당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성명전으로 민자·민주 양당구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널리 인식시켜준 것은 국민당이 얻은 최대 성과로 볼 수 있다. 민자·민주당은 양당구도로 선거를 이끌려 했으나 국민당의 계속된 파상공세에 밀려 결국 민자·민주·국민당의 3파전으로 총선을 치르게 됐다.

 이번 ‘이주일 파문’은 한동안 국민들을 웃기게 만든 정치권의 코미디로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번 파문을 지켜보면서 정치권에 대해 더욱 실망했을 것이다. 정부와 각 당의 공명선거 실천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선거공고일 이전부터 벌써 불법 사전 선거운동 및 관권 개입 등으로 혼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측은 “각종 선거공약을 남발, 대통령부터 선거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언제나 시작은 공명선거이지만 끝머리는 과열·혼탁으로 얼룩진 우리 정치권의 구태를 종식시키는 길은 역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밖에 없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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