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문화 감염은 ‘父傳子傳’
  • 이영미 (노래평론가)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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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키즈 사태를 보고 성인들은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는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요즈음 10대는 감각세대이다. 음악은 어떤 예술보다도 감각적이다. 문학 등에 비해 음악은 사유를 통하지 않고 수용자에게 직접 정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즐기는 음악은 절제와 사유보다는 감각과 직접적인 자극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강한 비트와 감각적인 전자악기의 사운드, 감각적인 음색의 목소리와 단어 몇 개만 들어도, 몇 소절만 들어도 금방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가사와 선율들을 지니고 있는 요즈음의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더욱 더 자극적인 미국의 대중음악은 그들이 수용하기 쉬운 예술이다.

 단순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언제 어느 때나 작은 워크맨 하나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은, 연극이나 미술은 물론이고 영화와 비디오보다도 일상 속으로 항시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예술이다. 게다가 어느 예술보다도 싼값에 즐길 수 있다는 점, 요즈음 10대는 음반을 살 정도의 용돈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대중음악에서 10대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왜 하필 미국의 뉴키즈이며, 대한 몰이해야말고 성인들은 예전에 왜 맘보에 미쳤었는지, 영어도 잘 모르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왜 좋아했는지, 수첩마다 ‘You are my sunshine'을 적어가지고 다녔는지,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크리스마스에 그렇게 들떴었는지, 술집에서는 비디오케로 일본노래를 부르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즉 식민지시대 이래 우리는 강대국의 문화와 미의식을 우리보다는 우월한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에 반성없이 익숙해져 있으며, 지금의 부모세대가 바로 6·25 이후 미국문화의 홍수 속에서 자란 대표적인 세대라는 점이다. 68년에 클리프 리처드를 향해 손수건을 던지고 괴성을 질렀던 여고생·여대생이 키워낸 자녀가 바로 오늘의 10대이며, 더욱 미국화된 문화풍토에서 입시에 지치며 자란 지금의10대가 그때보다는 더욱 극심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10대의 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중심적인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10대의 대중음악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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