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변절’ 에 내린 양심의 철퇴
  • 프랑크푸르트·허 광(자유 기고가) ()
  • 승인 1995.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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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헤리베어트 프란틀, 평론집에서 ‘보수국가화’ 경고 … “기본법 기초 허물어지고 있다”

 독일은 나치스의 잔재를 깨끗이 쓸어버린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져 왔다. 수십 년에 걸친 나치스 전범 추적, 유태인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정책은 아직도 아시아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을 질타할 때 흔히 인용되는 사례이다. 하지만 독일 현대사의 이면에는 이런 평가를 부정하는 사례도 많다. 바로 지난해만 해도 연방의회는 나치스 시대의 탈영병들을 사면하라는 입법안을 부결했다.

 2차대전 당시 나치스 군사 법정은 히틀러의 침략 전쟁을 거부한 탈영병들에게 ‘민족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나치스 판사들은 지금도 판사 옷을 입고 있고, 탈영병들은 여전히 조국을 배반한 범죄자로 남아 있다. 이들 ‘민족 반역자’ 들은 지난 50년간 법적인 사면은커녕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병마에 시달리거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녹색당과 사회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몇 년 전부터 이들을 사면하라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했다.

 

독일 극우파로부터 암살 위협받아

 이같은 사실에 대해서 독일 언론도 자세히 보도하기를 피한다. 물론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신나치 조직들의 폭력 시위 때문에 독일의 대외 이미지가 크게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일의 보수 언론은 이들 극우파의 준동을 통일 후의 과도기 현상으로 보고 오히려 외국 난민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독일이라는 ‘가면의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독일 극우파의 암살 위협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헤리베어트 프란틀, 일간 신문 <쥬드-오이체 자이퉁>의 논설위원이다. 그의 분석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후 독일의 민주주의는 출발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다. 냉전기의 반공 시대에 나치스 동조 세력은 온존되었으며 시민의 정치 참여는 극도로 축소됐다. 오히려 경찰·비밀정보부·행정부 관리들만 세력을 확장해 언론·의회·사법부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통일 후 4년간, 독일 민주주의를 되살릴 마지막 기회였던 헌법 개정 논의는 여야의 밀실 타협에 의해 사라졌다. 이제 군사화한 사회, 경찰력이 지배하는 국가, 침묵하는 대중의 무기력이 감도는 새 독일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그가 펴낸 평론집 <독일은 불타는가> (부제는 독일 정부를 고발한다)는 바로 이런 메시지를 담아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일간지는 서평에서 이렇게 썼다. ‘프란틀이 독일의 미래상을 음산한 모습으로 그린 것은 그만큼 독일이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은 무언가 과장되었다는 비난이 전혀 통하지 않게끔 역사적 사실로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후 독일의 현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 역사가 너무나 끔찍한 사변들로 가득 차서 기억하기를 외면하는 독일인들에게 이 책은 망각할 기회조차 빼앗는 고통을 주고 있다.’


 프란틀의 평론집은 시민의 자유와 도덕적 용기, 시대를 책임지는 문제 의식을 불러일으킨 공로를 인정받아 출간 두 달 후 바이에른 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백장미상’을 받았다. 백장미는 나치스 치하에서 저항 운동을 벌인 지하 조직 이름이다. 백장미 주동자들은 뮌헨 대학 의대생의 신분으로 비밀 활동을 하다가 검거돼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참형을 받았다. 바이에른 주 출판연합과 뮌헨 시는 매년 이들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책을 선정해 백장미상을 주고 있다.

 수상작은 바이에른 주 출판연합의 의뢰를 받아 심사위원 7명이 선정한다. 뮌헨 시도 심의 과정에서 참여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상 동의가 필요해서다. 그런데 이번 프란틀의 수상 과정에는 예년에 없던 소동이 벌어졌다. 뮌헨 시의 보수 제1당인 기독교사회연합(CUS)이 심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기독교사회연합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프란틀의 책은 흑백 논리로 무장된 정치 선동이다. 그는 정부의 망명자 대책, 조직 범죄 대책을 국수주의에 물든 정신병자의 짓이라고 매도한다. 그는 보수주의에 대한 강박 공격증이라는 편집증에 빠져 있다.’

 독일 정부를 고발한다는 부제가 붙은 프란틀의 책에 보수 정당이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독일 외무부 관계자 헬무트 셰퍼는 신문 투고문에서 이렇게까지 썼다. ‘독일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독일인 그리고 그 나머지는 프란틀 따위들이다.’ 프란틀의 평론집에는 극우파가 줄곧 보내오는 ‘편지’도 실려 있다. 다음 편지는 그 중의 하나이다.

 ‘당신의 글, 우리는 그날을 기다려 잘 모아두고 있다. 당신이 이른바 망명 난민을 불러들여 독일 민족을 착취·능멸하고 있다는 사실, 또 독일의 빨갱이들·녹색당 놈들이 다 그렇듯이 당신도 우리 조국을 학대해서 쾌감을 즐기는 가학증 환자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새겨두기 바란다. 우리가 분류해둔 인물 중에 당신이 맨 처음 처치 대상이라는 것을, 무기 준비는 끝났다. 독일민족해방군 90.9.14.’

 독일의 보수 우익, 극우 세력이 이토록 프란틀을 증오하는 이유는, 첫째가 망명권에 대한 그의 시각 때문이다. 독일 기본법 16조는 정치 난민에게 독일 망명을 허락하고 있다. 그런데 92년 겨울 16조의 일부 조항이 삭제되어 육로를 통해 넘어오는 망명 신청자는 심사 절차 없이 추방하고 있다. 독일의 주변국은 모두 안전 지대이니 망명 신청자들이 굳이 독일까지 넘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망명법을 개정하면서 동시에 동유럽 인접국에 압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폴란드와 체코 정부가 독일이 추방한 난민들을 떠맡게 되었다. 93년 가을 이후 독일 국경에는 난민 검거를 목적으로 군부대가 투입되고 있다.

 개정된 망명법에 따르면, 망명자가 항공편을 이용할 경우 독일로 오는 도중에 중간 기착지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망명 신청을 하려면 낙하산을 끄거나 땅굴을 파고와야 한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프란틀은 사실상 망명을 신청할 가능성을 없애 버린 새 망명법이 독일 정치가들의 가장 큰 과오라고 본다. ‘망명권이 있는 한 독일은 난민을 거부할 수 없다. 난민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에서 독일은 근본적인 난민 대책, 즉 난민이 생길 여지가 없게 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그 대안은 대량 난민의 온상지인 제3 세계의 정치 탄압이나 지역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고 민주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망명권은 독일 외교에 도덕성을 갖추도록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망명법 개정은 독일 정치의 최대 과오”

 독일 기본법 초안자들이 나치즘과 같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근절하는 수단으로 망명권을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독일정부는 망명권을 사실상 폐기하고 국경 무장이라는 안일한 선택으로 도피했다. 동서 냉전 종식 후의 과제, 국제 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그만큼 멀어진 셈이다. 여야의 망명법 개정으로 독일 기본법의 기본 정신이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독일 사회는 침묵을 지켰다. 프란틀은 독일 형법의 변천사를 검토하면서 ‘침묵하고 있는’ 독일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보수 국가의 정체를 드러냈다.

 독일 형법에서 피고와 변호인은 60년대까지 묵비권과 수사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정보 열람권 등 기본적인 방어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74년의 형법 개정부터 인권 축소 과정이 시작되었다. 재판이나 심리 과정이 변호인이나 피고의 출석 없이도 가능해지고, 피고와 변호인에 대한 서신 검열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구류 대상도 크게 확대되었다. 77년부터는 법적 허가 없는 도청이 일상화하고 개인의 정보 보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만연했다.

 90년 이후에도 30건이 넘는 형법 개정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조직 범죄 대책이 강조되면서 경찰 활동에 군대를 동원하는 제안까지 나와 있다. 프란틀은 형법 개정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스스로 소름이 끼쳤다고 말한다. ‘피고는 유죄 판결 때까지 무죄라는 원칙이 사라진다. 법치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비밀 경찰의 감시·도청·수사를 받으며 누구나 자기가 위험 인물이 아니라고 입증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허 광(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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