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영어선생 ‘전자사전’
  • 여운연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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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발음도 … ‘전자서적 시대’ 첫장 열어

 의학지식 음식점소개 여행안내 영어회화 등 각종 정보를 휴대용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전자서적. ‘책’이란 것을 언젠가는 골동품으로 묻히게 만들지 모르는 전자서적이 이웃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소 식이다. 손바닥 절반만한 크기의 컴팩트 디스크에 인쇄물보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담는 전자서적의 출현은 인쇄 · 출판 분야의 대혁명이 아닐 수 없다.

 기술면에서 훨씬 뒤떨어졌지만 최근들어 국내시장에 선보인 ‘영어전자사전’도 실용가치 면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영어단어를 찾자면 두꺼운 사전의 얄팍한 종이 갈피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깨알만한 활자와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사전은 그런 시간 낭비를 한결덜어준다. 명함보다 약간 큰 것에서부터 소형 카메라만한 작은 부피 속에 수만 단어가 입력돼 있어 키보드를 누르면 원하는 단어의 뜻을 쉽게 찾을 수 있다.

 英韓뿐만 아니라 영영한 · 한영 · 동의어 등도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연결되어 있어 버튼만 누르면 자유자재로 찾아 익힐 수 있다. 또하나 사전보다 좋은 점은 정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에 나온 영어전자사전을 세 종류. 모두 중소기업 제품이다. 주로 해외기술에 의존해 만들어졌으나 대중화단계에 있는 전자수첩에 이어 서서히 소비자층을 파고 들고 있다. 세가지 영어전자사전의 제품명은 공성통신의 ‘잉글리시 마스터’, 정풍물산의 ‘워드콤’, 동양실업의 ‘블랙 박스’. 이들 전자사전은 각 제품마다 크기와 성능에 다소 차이가 있다.

 작년 12월 시판을 개시한 ‘잉글리시 마스터’의 경우 영한 · 영영한 · 영영 사전으로 한영사전 기능은 갖추고 있지 않다. 미국 프랭클린사와 합작으로 90년초 영영전자사전을 만들어 수출해온 공성이 시장성에 한계를 느끼자 한글화작업을 서둘러 영한사전을 내놓은 것. 대학노트 절반 크기 몸체에 중학생에서부터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수준별로 단어를 입력해 놓았는데 값은 29만7천원.

 ‘워드콤’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영한 · 한영 사전에 전자수첩 기능까지 겸한 것. 일본의 전자사전이 다양한 프로그램 카드를 만들어 본체와 별도로 판매하고 있는 데 비해 기술이 떨어진 국내 것은 서너가지 기능을 함께 지닌 게 특징이다. ‘워드콤’은 여기에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9개국어의 회화문장을 수록해 해외여행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값은 똑같이 29만7천원.

 영한전자사전 중에 작년 8월 가장 먼저 선보인 ‘블랙박스’는 손안에 쥘 만큼 작은 크기의 포켓형이다. 전자수첩 기능도 갖추고 있는데 용량이 적은 게 흠이나 그대신 다소 싸서 15만8천원. 최근 들어 ‘한영사전’기능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커지자 이를 보완해 ‘박학’이란 신상품을 내놓았다.

 전자사전의 소비층은 중학생부터 대입수험생, 직장인에 이른다. 해외여행자 특히 미국 · 호주 · 캐나다 등지에 사는 교포들로부터도 호응을 얻고 있다.

 전자사전은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손쉽게 단어를 찾아 정확한 발음과 함께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아직은 초기인 만큼 문제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비싸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며, 기존의 영어사전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지 못했다는 점도 약점이다. 가격이 높은 데 대해 메이커측은 기능과 개발비용 때문에 기십만원대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수년내로 전자사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본격화되면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가격인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본 서점가에서는 이미 전자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실용화단계에 접어들었다. 현재 1백여종의 전자서적이 출판돼 여간 매출규모가 2조3천억엔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서적 수요에 불을 당긴 것은 소니가 내놓은 ‘데이터 디스크 맨’이란 전자서적 전용 플레이어다. 또한 컴팩트 디스크를 대신해 며암 크기만한 IC카드에 책원고를 담은 초소형 서적도 인기이다. 그에 비해 국내에 나와있는 전자사전은 아직 걸음마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전자서적 출판시대의 첫장을 열었으니 의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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