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ㆍ최진욱 화폭 가득 강렬한 이미지 현대 구상회화 지평 넓혀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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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송미숙 성완경 유재길 심광현 이영철 화가 최진욱씨(37)의 작업실에는 신문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바로 옆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들이 비닐에 끼워져 겹겹이 놓여 있고, 화가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 그 사이사이에 끼여 있다.

 그 더미에서 따로 나와 있는 두장의 사진은 벽에 걸린 캔버스에 옮겨졌다. 푸른 수의를 입은 채 미소를 짓는 박노해와 한 의류회사 광고에서 활짝 웃음을 터뜨린 모 의대 관현악단 단원의 두 얼굴이다. 제목은〈웃지 않는 사람〉.

 “이 웃음들을 보면서 웃을 수가 없었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박노해의 웃음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광고사진의 웃음은??고급스러운 웃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란히 놓인 두 웃음에서 회화적 힘을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최씨의 그림에 갖가지 표정의 한국 사회와 역사가 구상의 형태로 들어서기까지는 10년간의 조형실험 과정이 필요했다. 81년 서울 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는 구상회화로 진로를 정했다. “추상의 애매모호함이 싫었다??는 게 그 이유다.

 현대적 구상회화는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아직도 낯선 영역에 속한다. 그만큼 현대미술과 구상회화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간 구상회화는 현대생활의 새로운 질을 담지 못한 채 인물화 풍경화 등 낡은 양식, 즉 재현 차원에 머물러왔다.

 “세계와 맞서는 단호한 자세 인상적??84년 귀국 직전부터 최씨는 그 간격을 메우는 작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사물을 강한 이미지로 떠오르게 하는 조형적 실험의 반복이었다. ??통렬하고, 자극적이며, 현대적이고, 자유로우며, 리얼한 이미지??를 ??정확성 유동성 단순성 제스처 우연성??이라는 조형언어의 단련을 통해 표현해 내려는 그의 노력은 대상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화실 안의 사물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 그 무렵〈수업중〉〈생각의 시작〉〈창문〉〈그림의 시작〉등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반복했다. 그 자문은??구상으로 어떻게 현대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91년 최씨는 작업실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90년대 초반의 어수선하고 썰렁한 대학현실이〈구내〉에 담기고, 현실의 여러 단면이 몽타주 수법으로 재구성돼 〈할아버지 말씀〉으로 나타나는 등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 한국 사회의 풍경을 작품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나는 정치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나 나의 그림은 민중미술보다 더 사실적이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사실보다 더욱 심원하며, 시간의 흐름에 의해 그 질이 훼손당하지 않는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하는 그는 그림의 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금〈조선총독부〉를 그리고 있는 그는??총독부 사진을 찍을 때 가슴이 벅찰 정도로 무거운 느낌이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는 자제력과 세계와 맞서는 단호한 자세가 돋보인다??고 평론가 이영철씨는 그의 작가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평론가 심광현씨는“상상력으로 주제를 확장하려 한 민중미술과 서양미술 아류 단계에 있는 제도권미술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려 하고 있다??며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가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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