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의 천국’ 워싱턴
  • 워싱턴 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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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익단체들,한 해 14억 달러 뿌리며 정치권 ‘오염’

미국연방 수도 워싱틴은 정치의 중심지이자 로비 천국이다. 비영리 기관으로 선거 자금 행태를추적하는 <책임 정치를 위한 본부>가 지난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특정 이익단체들이 로비에 뿌린돈은 줄잡아 14억2천만 달러, 상원의원 100명과 하원의원 4백35명을 합친 5백 35명을 로비 대상이라고 가정할 때, 의원 1인당평균 2백70만 달러의 로비 자금이 쓰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 경쟁에 나선 존 매케인상원의원이 워싱턴을 특정 이익집단의 로비굴레로부터 벗겨야 한다고 외친 것도 오랫동안 로비가 난무해온 중앙 정치의치부를 날카롭게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의회.백악과 S줄만 잡으면 안되는 것이없다?
 과연 매케인의 주장대로 워싱턴은 로비 정치로 썩었는가, 아니면 그의 주장은 유권자의 표를얻기 위한 환심 작전에 부과한가, 결로부터 말하면,그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단적인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해 하순 미국 의회는 'D.C.지출법안‘을 통과 시켰다. 그런데 교육비와 자녀 양육비 보조금 항목을포함해 이런저런 지출 항목이 열거된 이 법안에는 다소 엉뚱한 항목이 들어 있었다. 이른바 ’6001항‘이라는 이 항목은 연방 수도 워싱턴을 의미하는 D.C.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항목을 슬쩍 끼워 넣었으며, 그 의도는 무엇일까? 바로 이것이 워싱턴 로비 정치의 한 단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항목을 집어넣은 사람은 다름 아닌 공화당의 실력자 트렌트 로트 상원 원내총무였다. 내막을 따져본즉, 폐기물 공사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산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국 전역의 고철업자들이 로트원내총무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민주.공화 양당 후보들에게 1990년대 들어약 30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법안 취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항목이 슬며시 끼어든 원인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특정 이익단체의 거센 로비 때문이다. 바로 이런 풍조 때문에 워싱턴 정가에는 의회와 백악관의 줄만 잡으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불문율이 나돈지 오래다. 특히 공화.ASWN 양당에 헌금하든지 아니면 로비 자금을 펑펑쓰든지 둘 중 하나만 화용할 수 있다면 거의 100%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 지경이다 보니 로비 자금을 댈 능력이 있는 사람은 ‘1등 시민’, 그렇지 못한 사람은 ‘2등 시민’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떠돌 정도다.

 로비 자체가 불법 행위가 아닌 미국 사회에서 로비스트들은 언젠가부터 변호사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며 신흥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업중을 가리지 않는다. <책임 정치를 위한 본부>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로비 업계는 역시 부동산.은행.보험업에 종사하는 기업들로 1998년 한해 무려 2억3백만 달러를 로비 자금으로 뿌렸다고 한다.

 이런 싣 풍조를 대변하듯 워싱턴 최고 상업지구인 K스트리트에는 업체최고인 카시디 앤어소시엣을 포함한 로비 회사의 간판들이 즐비하다 또 1994년에 문을 연 시내 중심부의 캐피털 그릴이라는 고급 음식점은 거물 로비스트들이 ‘고객’을 접대하느라 1년 내내 문전 성시를 이루며, 이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속하는 <캐피털 스타일>이라는 잡지까지 생겼다.

 로비스트는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밤낮으로 뛰면서 거액의 거마비를 챙긴다.더군다나 교육.총기 규제.의료보험등 굵직굵직한 사회 현안을 놓고 공화.민주 양당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상화일수록 웟ㅇ턴은로비스트에게는 더없이 좋은 근무환경을 조성해 준다. 기본적으로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필요한 정치인들이 굳이 불법이 아닌다음에야 안면 있는 로비스트들의 청탁을거절할 이유가 없다.그 과정에서 ‘떡고물’이라도 챙기려면 말이다.

 이처럼 누이졸고 매부 조은 관계로 인해 워싱턴 정계 인사와 로비스트 간에는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맥이 형성된다. 그러나 로비는 기본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의 게임이다. 이곳 워싱턴 정치에도 ‘유전 무죄. 무전 유죄’ 법칙이 존재한다. 지난해 일부 의원은 담배규제법안을 산정하려 했을 때 필립 모리스를 포함한 굴지의 담배 회사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려 1억 달러 이상을 로비에 뿌린 것이 단적인 예다.<책임 정치를 위한 본부>자료에 따르면, 1997년 중반 1만5천여 명에 불과하던 로비스트가 이듬해에는 1만8천5백여명으로 늘어 났고, 다시 지난해 여름까지는 2만5백여명으로 껑충 뛰었다. 연방 의원 1명당 평균38명의 로비스트가 달려든 셈이다.
 
전직 의원 . 변호사 너도나도 로비스트 변신
사실 워싱턴 정치 무대에서 20년 전까지만 해도 로비가 오늘날처럼 극성을 부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1980년대 초까지도 워싱턴의 법률 회사들은 로비와 담을 쌓고 상았지만 지금은 그반대다. 심지어 일부 법률회사들은 변호사는 아니더라도 워싱턴 정가에 ‘끈’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기 일쑤다. 워싱턴 로비릐 대부 격인 로버트스트라우스 별호사(80)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변호사는연방 정부에 몇 년간 근무하다 사직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 인사들과 친해진 뒤 로비스트로 법률회사에 들어가면 자신의 몸값을 그만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비스트가 해마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직업이 다른 어느 직종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대표적 예를 들면, 1998년 겨울 케네스 키즈(46)라는하원 조세위원회 수석 참모는 굴지의 회계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의 로비스트로 자리를 옮기기위해 사표를 냈다. 그는 연봉 13만2천 달러라는 고액 봉급자였지만 백만 달러 연봉액을 제시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를 위해 열린 고별 만찬장에는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빌 아처위원장을 포함해 재무부와 백악관 현직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해 워싱턴 정게에 대한 그의 막강한 로비력으 확인시켜 주었다.

 키즈의경우는 의원 보좌관치고는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 의원 보좌관들은진문 인력에 속하지만 키즈만큼 보수를 받지는모한다.바로 그 때문에 워싱턴의 로비스트들 가운데는 의원 보좌관 출신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1987년의 경우 평균 5년 반을 일하고 로비스트로 전화했지만 1996년에는 4년으로 1년 반이나 빨라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가운데 10명 중 6명 꼴로 전직이유를 금전적 욕구라고 했다는 점이다.

 물론 보좌관 출신만 로비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직 의원중 많은 사람이 로비스트로 변신하기도 하고,종종 돈맛이 들린 현역의원들도 과감히 의원 직을 내팽갳고 로비스토로 전직하는 경우도 있다. <책임 정치를 위한 본주>에 따르면, 현재 워싱턴에는 최소한 1백28명의 전직 연방 의원들이 로비스트로 활약중이라고 한다. 이런 시류탓에 1970년대까지도 전체 의원 5백35명 가운데 고작 3%만이은퇴 후 로비스트로 변신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그수가 무려 23%에 달했다.

 얼마 전 <거만한 수도>라는 저서를 낸 케빈필립스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워싱턴처럼 ‘거대하고, 항구적인 로비스트 집단’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해마다 늘어나는 천문학적인 로비자금의 홍수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가진 훝한 로비스트들이 모인 곳이 워싱턴이라는 것이다. 한때 뉴욕이 ‘돈의 도시’요, 로스앤젤레스가 ‘화려함의 도시’라면, 워싱턴은 영원한 ‘권력의 도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워싱턴은 로비스트들의 극성 때문에 권력보다 돈에 탐닉하는 수도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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