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 전쟁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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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劍승부시대

 

 

  지난4월1일<동아일보>가 조간으로 전환한 뒤 일간지들이 피를 볼지도 모르는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당사자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겠으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흥미롭기 짝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마냥 재미있게 관전만 하고 있을 계제는 아닌 듯하다.  일본의 언론은 김영삼 정부가 출험하고 난뒤의 한국 상황을 인치주의라고 꼬집었는데, 현재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일련의 통치 행위는 법과 제도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대통령과 언론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해도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요 일간지간에 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질 만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문민통치의 정착이라는 대국의 흐름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권력이 언제든지 언론에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게임" 임에 틀림없다. 경쟁의 내용도 질이 아닌 물량 대결로 치닫고 있어 소모적인 싸움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의 기능에 비춰볼 때나, 언론 전체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나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현재 일간지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또 그 경쟁이 어디로 치닫고 있는 지 잘 알려주는 사례가 있다.

  〈경향신문〉노조가 최근 노동조합 소식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3월24일 오전 2시쯤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이 느닷없이 편집국을 방문했다. 김회장은 차장급 이상 간부들을 비상소집한 뒤 경쟁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김회장은 그 자리에서 "지난해 목숨을 걸고 화약장사를 해서 번 돈 4백5O억원을〈경향신문〉에 투자했다"고 밝히고 "지금까지 언론사 특성을 감안해 간섭을 자제하고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독재자 소리를 듣더라도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김회장은 이어 "노조를 탄압할 생각은 없지만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비록 언론사일지라도 경영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덜 옳더라도 잘 팔리는 신문이,

옳지만 안 팔리는 신문보다 낫다"

  〈동아일보〉의 조간 전환에 대해 가장 긴장하고 있는 언론사는〈조선일보〉이다. 〈동아일보〉의 궁극적인 목표가 '정상'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는 〈동아일보〉가 조간으로 전환하기 훨씬 이전인 1월부터 이미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조선일보의 방상훈 신임 사장이 매일같이 밤이나 낮이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원들은 "그야말로죽을맛" 이라고 한다. 강판(인쇄에 들어가는)시간을 1분이라도 어길 경우에는 책임자를 파면한다는 지시가 떨어져 회사 분위기가 살별하기 그지없다고 한 노조 간부는 전한다.

  지난 3월25일에는 53일간에 걸친 사내 독자확장대회가 끝났는데 확장부수는 웬만한 지방지나 경제지 유가판매 부수를 웃도는 3 만7천여부에 달했다. 이는 지난89년 4월 확장대회 때의 16배에 달하는 부수인데 그 때문에 편집국 내부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조간 시장 경쟁이 격화되어 어려운 상황에 빠진 한 조간신문에서 나오는 소리는 현재일간지 경영진의 심경을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이 신문 노사는 지난 4월2일 노사협의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회사측 대표가 "팔 리고 옳은 신문이 제일 좋지만 덜 옳더라도 관리는 신문이, 옳지만 안 팔리는 신문보다는 낫다" 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사정 바람이 몰아치는 현 정국에서 일간지 간의 이 같은 치열한 경쟁이 낳는 부작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공직자와 국회의원 의 재산 공개 때 언론이 우리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한 치부를 폭로한 공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옥석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보도로 많은 사람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악의에 가득찬 투서를 확인·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하거나 부정확한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이루어졌듯이 그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아무런 기준 없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요 신문사들은 마치 깜짝쇼를 하듯이 몇 건의 기사를 준비해 놓았다가 적당한 때를 보아 터뜨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기사의 경중이나 국민의 알 권리보다는 언제 터뜨렸을 때 가장 판매 효과가 높을 것인가에 편집의 중요한 원칙을 둘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의 과다 경쟁도 개혁 대상 

  최근 김영삼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4월6일에는 언론학자들)과 만나 "우리 신문의 상당 부분은 읽히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는 말을 했다. 또 4월7일 신문의 날에는 "앞으로는 신문"이 일요일에는 쉬는 때가 빨리 와야 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언론의 과당 경쟁 폐해도 개혁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언론에 관한 발언을 한 뒤 민주당이 즉각 "언론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론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지 대통령이 언급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는 성명을 냈지만, 정말 어떤 경우에도 언론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문제는 권력이 개입하더라도 언론이 뭐라고 항변할 수 없을 만큼 신문 시장이 날로 혼탁해져가고 있다는 데 있다.

  신문의 80%가 읽히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것인지 모르지만, 현재 보급소에서 포장조차 뜯지 않고 폐지 수집상으로 직행하는 신문의 분량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 91년 한 언론학 연구소에서 신문의 유통 과정을 추적한 일이 있다. 이에 따르면91년 한해 동안 소모된 신문용지는 모두 57만9천8택32t이었다. 그 중에서3% 정도는 신문 제작 과정에서 파지로 소모되고 56만2천4백37t의 신문으로 제작됐다. 이는 1일 평균24면 기준 1천2백34만부(t당 7천9백부로 계산)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고지 도매상이나 중간 수집상, 제지 회사로 직송되는 신문은 최소로 잡아도 1일 평균 2백87만부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23%나 되는 신문이 버려지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1년에 7백77억원어치 그냥 버려 

   92년의 경우는 신문용지 소비량이 67만t정도로 약8.6% 증가했으므로 고지 도매상등에 직송된 신문도 1일3백10만부 정도로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종이 값만 1일 약2억1천5백82만원(t당약55만원), 1년이면 7백76억9천5백만원에 달한다.

  이에 따른 자원 낭비도 엄청나다. 한국자원재생공사에 따르면 신문용지 1t을 만들려면 높이8m짜리 20년생 나무 20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버려지기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신문을 위해1년에 약2백82만5천 그루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는 순수하게 폐지상등으로 직송되는 경우이고 무가지를 합치면 그 숫자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것이다.

  최근〈동아일보〉의 조간전환을 계기로 각 일간지들이 주5일32면 체제로 전환하고 있고, 수도권지역에서만 1일 평균50만부 이상 의'작전지'를 뿌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8~19쪽참조). 따라서 올해 폐지상 등에 직송되는 양은 지난해에 비해 적어도 20% 이 상은 불어날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신문용지의 재활용률은 약30%수준이다. 재활용률만 따지면 선진국 수준에 육박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활용되는 30% 중20%는 포장도 뜯지 않고 폐지상으로 직송되는 것이다. 자원재활용 캠페인을 벌이는 우리나라신문들이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 한 셈이다. 

  신문사들이 팔지도 못할 신문을 마구 찍어내는 이유는 판매망이 정리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광고료와 직결되는 판매 부수를 부플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자원의 낭비를 막고 판매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유가 발행부수에 대한 엄정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발행부수를 公査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신문부수공사협회(한국ABC)는 설립된 지만 3년이 가까워오지만 신문사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공개 시기를 늦추고 있어 개점휴업 상태이다(20쪽참조).

  한국ABC회장인 徐正宇교수(연세대·신방과)는 "발행 부수가 공개되지 않으면 한국의 신문들은 더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1택13개에 달하는 일간지가 모두 비슷한 꼴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과소비가 아닐 수 없다. 독자의 성향이 분명히 밝혀져야 특색있는 신문을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렵고 고통럽겠지만 빨리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말했다. 

  일간지의 경쟁격화는 광고 시장의 혼란을 더 한충 부추길 것이라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제일기획이 집계한 바 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광고비는 2조8천1백59억원으로 91 년에 비해17.6% 성장했다. 그런데 신문의 경우는 지난해에 총선 대선 등 정치 특수가 있었고 광고비가 대폭 올랐는데도 시장 점유율이 2.1%포인트나 하락했다. 반면 텔레비전의 시장점유율은 2.7%포인트가 늘었다. 텔레비전이 신문의 점유율을 점점 잠식해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주요 신문사들이 1일32면 발행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에 광고수주 전쟁은 더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중앙 일간지 광고국의 한 관계자는 "2~3월은 비교적 광고가 많은 달이기 때문에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앞으로 일을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7-8성월 비수기에는 어느 신문사 할 것 없이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다. 그때는 특집 광고의 무리한 판매나 무신탁광고 게래가 부적 늘어날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각 신문사들의 고삐 풀린 경쟁을 바라보면서 언론 본연의 기능이 쇠퇴할까 걱정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동아일보〉 노조는 조간으로 전환하기 전에 노보에서 "언론자본 내지 기업의 자기발전 과정에서 고유한 의미의 저널리즘은 자본의 논리 속에 함몰되고 판매 부수와 광고 단가가 신문을 평가하는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노보〉는 또"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각 언론사는 유감스럽게도 황색 신문과 지척에 서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언론은 죽고 광고와 영업만 산다면‥‥

  또〈조선일보〉노조는 최근 노보에서 신문사 간의 경쟁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증면인가'란 기본적인 물음이 전제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조선노보〉는 "경영진과 많은 간부가 본능적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증면에 집착한다"고 지적하고"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병사를 함부로 휘몰아대는 것은 下之下策" 이라고 꼬집었다. 

  경쟁의 격화로 인한 취재환경의 피폐를 가장 절감하는 것은 일선 기자들인 것 같다.ㅎ일보의 한 기자는 최근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젊고 유능한 기자들이 똑같은 것을 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뛰어다닌다. 검찰이나 경찰의 상투적인 논평을 듣기 위해 무리지어 밤을 꼬박 새운다. 차분하게 사건을 생각하거나 자료를 찾아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조간으로 전환한 뒤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 시장의 판도변화를 예측하기는 아직 어렵다.〈동아일보〉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반면 경쟁자들은'실패했다'는 얘기를 열심히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는 사실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누가 승자가 되든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언론 기업에서 언론은 죽고 기업만 산다면 그래도 살아남았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일간지들은 지금 너무나 위험한 경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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