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羊'바보짓에 부처님 분노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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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훼손 파문 확산‥‥ 신도들 "군 내부의 조직적 탄압'주장


 군부대 안에서의 '불교 탄압' 시비로 국방부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전 국 각지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연일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국방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불교계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안을 찾기에 바쁘다.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던 군과 종교계의 정면대치 현장이자 사태 수습 모습이다. 

  불교계 전체가 군의 종교 정책에 대항하게된 도화선은 지난 1월8일 육군 제17사단(사단장 서경석 소장) 전차대대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이다. 개신교 신자인 대대장 조병석 중령(42)은 이 날 부하 장병들에게 대대의 창고를 개조한 법당을 폐쇄하도록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불상이 쌀부대에 담겨 부대 뒷산에 묻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3월말 한 제대 사병이 불교방송국에 투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 보도가 나가자 불교계는 분노로 들끓었고, 군법사(승려 장교)들이 훼불사실을 공식확인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국방부는 즉각 종단을 찾아 공식 사과하고 법당 폐쇄와 불상 훼손을 지시한 조병석 대대장을 전격 보직 해임한 뒤 광주 기갑학교로 전출시켰다. 한 광신적 개신교도가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라는게 국방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 정도 조처로 불교계의 거센 항의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국방부의 예측은 빗나갔다. 불교신행 단체·승가대학생·동국대 종비생·경인지역 사암연합회 등이 들고일어나 '사과'차원에 그칠 일이 아니라며 연일 국방부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훼불을 지시한 조병석 대대장 파면 구속, 사단장인사조처, 군대내 불교차별 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이번 사건의 파문을 확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불교 관련 단체들이 이처럼 군부대내 불상훼손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정책적인 면도 있다. 불교계는 이번 사건이 한 광신적 개신교도 지휘관에 의해 저질러진 우발적 행위라는 국방부의 발표에 짙은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새 정부의 핵심부 군 수뇌부 등 요소요소에 자리잡은 개신교 바람이 '조직적으로'불교를 견제하는 와중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뿌리깊은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불교계의 이 같은 불신은 이번 사건이 지난 1월8일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는데서 출발한다. 문제가 된 조병석 대대장의불교 탄압 행위는 그가 17사단에 부임한 92년 4월부터 심각할 정도로 자행됐지만 사건이 터질 때까지 상부에서 그 사실을 덮어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대대장이 부임한 뒤 상습적으로 불교 탄압을 일삼았다는 불교계의 주장은 군 수사기관 조사를 통해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그의 노골적인 불교 탄압은부임 직후인 지난해 5월9일 부처님오신날부터 시작됐다. 대대내 불교신도회 회장이던ㄱ주임상사가 부처님오신날 경축 연등을 부대에 설치하자 조대대장은 개신교도 부하 장병들에게 "일요일에 목사님이 예배하러 오시다보면 불쾌할 테니 연등을 끌어내려 태워버리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연등 철거 이후 그는 이에 항의하는 불교 신자 장병 9명을 지휘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모두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매주 수요일오후에는 자대에 배치받은 지 1백일 미만인 신병들을 골라 예배당에 '의무적으로'보내는가 하면 성탄절에는 대대원들을 상대로 '찬송가 경연대회' '신앙경연대회'를 열어 우수자에게 특별 포상을 실시하기도 했다.

  조대대장의 독선적 행위는 92년 10월께 사단장의 귀에도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사단 참모들도 개신교 신도로 구성됐던 탓인지 서경석 사단장은 엄중한 문책 없이 조대대장에게 주의를 주는 선에 그쳤다.

 

"신도 비율 따라 군종 장교 수 재조정해야"

   결국 이 사건은 불교계의 뿌리깊은 피해의식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고, 이 기회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일부 군 수뇌부로 구성된 강고한 '개신교 사단'의 바람으로부터 불교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불교계 일각에서 김영삼 대통령·권영해 국방부장관·이필섭 합참의장과 일부 군사령관 등 군 수뇌부가 모두 개신교 장로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이번 사건을 애써 확대 해석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불교계는 이번 사건을 청와대의 종교 행사에까지 연관시키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 후보를 일부 목회자들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자'며 추대했다는 점, 그리고 취임 뒤 한동안청와대에서 목사가 예배를 보았다는 점 등이 불교계를 크게 자극했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청와대 내에서의 예배를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군부대 내에서의 훼불사건 파문이 정치적으로 확대되자 국방부는 서둘러 사건진화에 전력을 다했다. 당초 방침을 변경해 조병석 대대장을 구속 수감하고 불교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벌이는가 하면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지휘서신을 전군에 하달했다.

  이 같은 국방부의 해결책을 지켜본 불교계는 일단 17사단 훼불사건은 만족스럽게 처리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군부대 안에 자리잡은 종교 편제가 유사한 사건을 재발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판단 아래 4월22일 그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범불교도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가 보기 드물게 사태 수습에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일단 불교계와의 무한 대립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군에서의 종교간 위상문제는 사회적인 논란 대상으로 비화했다. 많은 사람이 특정 종교의 배타성이 군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게 사실이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큰 피해 의식을 갖게 된 불교계는 군대 내의 불교 위상을 위해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어서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국방부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물론 군 전체에서 상부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불교차별이 저질러지고 있다고 단정짓는 불교계 일각의 주장은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불교 군종장교로 있는 한 현역 군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군에서 개신교 신도가 다른 종교에 유독 배타성을 많이 드러내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각 신앙인 간에 잘 융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군에 내재한 종교갈등 요인이 군의단합을 크게 해칠 수 있는 위협 요소임을 증명했다. 군으로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국군에 종교 분야가 공식적으로 편제된 것은 50년대였다. 현재 육해공군을 통틀어 군종장교의 수는 개신교 군목이 3백30명, 불교 군법사가 89명, 천주교 군종 신부가 64명이다. 전체 군인 중 신앙인은 51만6천8백여명인데 이중 개신교도가 28만7천2백여명(43%)으로 가장 많고 불교도가 15만5천여명(23%), 천주교도가 7만3천2백여명(11%)이다.

  불교와 천주교 측은 지금까지 군종 장교 편제가 지나치게 개신교에 편중돼 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특히 불교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에서 종교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려면 군종 장교도 사회의 각 종교별 신도 비율에 따라 재조정해야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펴고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던 개신교 장로 출신 대통령과 역시 장로인 국방부장관에게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군대 내에 종교 편향이 있다는 의혹을 불식하려는 새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이 요구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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