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휩쓰는 선거 열풍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89.12.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0년대 세계사 흐름 좌우ㆍㆍㆍ민주화ㆍ지역분쟁종식ㆍ이념대립완화 시대될 듯

선거열풍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東유럽의 격변이 세계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올해초 中南美 지역에서 일기 시작한 선거바람은 연말을 정점으로 내년까지 세계 여러나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전세계 각국에서 일고 있는 선거바람은 東유럽의 변화와 함께 90년대 세계사의 향방을 규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언뜻보면 나라마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이 선거 그러나 몇가지 가닥을 추려서 살펴보면 현단계 세계사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 세계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民政 2期 시험대에 오르다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의 선거를 필두로 올해와 내년 봄까지 이어질 중남미 각국의 선거는 80년대 초반기에 등장한 民政체제의 향방을 둘러싸고 치열한 접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11월15일에 있었던 브라질선거부터 내년 5월의 콜롬비아선거까지, 올 연말과 내년초 사이에만 8개국이 선거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그중에서 최근에 치러진 브라질선거는 앞으로 있을 다른 나라들의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군정통치 29년만에 처음으로 직선 대통령을 뽑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중도우파 국가재건당의 콜로르 후보가 28%를 득표하고, 급진좌파 노동자당의 룰라 후보가 17%를 득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2월17일 결선투표에서 최후의 승자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15%의 지지를 얻어 3위에 머무른 민주노동당의 브리졸라 후보가 같은 좌파계열의 룰라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으로 예상돼 선거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12월4일로 예정된 칠레선거는 16년간에 걸친 피노체트의 우익군사독재체제에 명실상부한 종지부가 찍힐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피노체트 진영에서 밀고 있는 헤르난 부치 후보와 지난해 피노체트의 재임 기도를 봉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17개 야당연합 후보 파트리시오 아일윈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2월25일로 예정된 니카라과선거는 최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의 공격개시와 이에 맞서는 산디니스타정권을 ‘눈엣가시’로 보고 있는 부시행정부는 차모로를 대통령후보로 하고 있는 야당연합세력에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야당이 승리할 전망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밖에도 우루과이(11월26일), 온두라스(11월26일), 크스타리카(2월4일), 페루(4월8일), 콜롬비아(5월27일) 등이 앞으로 선거를 치를 예정인데 대체로 야당세의 득세가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외채ㆍ인플레 등의 경제위기, 군부의 정치개입, 좌익게릴라와의 내전 등으로 표현되는 중남미 諸國의 3重苦를 헤쳐나가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80년대부터 시작된 중남미의 民政체제는 2期정권의 향배에 따라 역사의 대세로 굳혀질 것인지, 아니면 또 한차례 좌절을 겪게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로 지역분쟁 해결

 국제정세의 전반적인 화해 분위기와 초강대국인 美ㆍ蘇 양국의 자세 변화에 따라 수십년간 고질적인 분쟁으로 고통을 겪어오던 몇몇 지역에서도 선거를 통한 분쟁해결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지역이 지난 11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제헌의회선거를 치른 아프리카의 나미비아라고 할 수 있다. 이 선거에서 對南阿共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했던 SWAPO(서남아프리카인미기구) 측이 72석중 과반수가 넘는 41석을 차지, 앞으로 있을 헌법제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나미비아선거는 ‘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로 불렸던 이 나라의 독립의 기점이 됨과 동시에 주변의 남아공, 앙골라 등의 지역분쟁 해결에 상징적인 전화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中東의 화약고라 불리는 레바논에서는 지난 11월5일 의회가 13개월 동안 공석중이던 대통령을 선출하고, 기독교도와 회교도 양쪽에 공평하고 포괄적인 내전종식안을 마련, 15년 내전 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으나 신임 대통령의 피살로 레바논 정정은 다시 혼미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레바논사태와 동전의 야면처럼 결부돼 있는 이스라엘-PLO 관계도 관계 당사국 사이에 새로운 해결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87년 이스라엘 점령지구 안에서의 팔레스타인 거주자들의 대중봉기(인티파데)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맞았던 팔레스타인사태는 내외의 압력에 못이긴 이스라엘의 샤미르 총리가 지난 3월 점령지구내의 팔레스타인 주민 선거를 통한 협상용의를 밝히는 데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그후 강경우익 리쿠드당에 기반을 둔 샤미르정권은 협상노력을 계속 회피해왔는데, 작년 12월 이후 PLO측의 유연한 자세변화와 미국, 이집트 등의 중재노력으로 선거방식을 둘러싼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말의 베트남군 철군 이래 오히려 내전이 악화되고 있는 캄보디아사태와 관련, 선거를 통한 사태해결을 종용하는 UN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11월16일 UN총회는 국제적인 감시하의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과 노로돔 시아누크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UN결의안이 크메르 루즈의 연정 참여를 인정, 그들의 복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높지만, 앞으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국제정세의 화해 분위기에 따라 UN 등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선거방식에 의한 지역분쟁 해결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1黨지배체제 흔들린다.

 민주체제와 1黨지배는 상호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체제를 표방한 나라들 중에서도 사실상 1당지배체제를 고수해온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금년 들어 이들 나라의 1당지배체제도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77년에서 80년 사이 몇 년간의 야당지배를 제외하고는 국민회의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돼왔다. 그러나 최근 라지브 간디정권은 일련의 독직사건으로 국민들의 신망을 상실, 11월22,24,28일 3일간의 총선에서 야당연합 세력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12월2일로 예정된 대만총선은 국민당의 집권기반을 붕괴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야당세력의 합법적인 의회진출이 최초로 보장되는 선거로 주목받고 있다. 1949년 대륙에서 쫓겨난 이래 국민당 정부는 49년 이후를 ‘반란 진정시기’로 규정하고 87년까지 38년간의 계엄통치를 행해왔다. 그후 88년 1월에 비로소 정당 결서을 허용, 이번에 처음으로 당 對 당의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다. 대만 야당인 民進黨은 지난 86년 창당, 그해의 선거에서 불법정당으로 참여 23%의 득표율을 보였었다. 민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30% 정도의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지난 11월6일 민진당 후보 32명은 별도로 모임을 결성, 대만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는데 이는 49년 이래 국민당정부가 “全중국의 유일합법정부이고 대만은 그 중의 한 지방에 불과하다”고 규정한 현재의 헌법체계에 대한 정면도전을 의미, 앞으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7월의 參議院선거 패배로 55년 이래의 자민당 1당지배의 아성이 무너졌던 일본은 내년초로 예상되고 있는 衆議院선거로 인해 정계에 또 한차례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잊다. 衆議院선거는 당초 내년 여름 정도로 예상됐었는데, 가이후정권이 들어서면서 차츰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는 自民黨측이 여세를 몰아 조기선거를 단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시기는 가이후 총리의 유럽방문 직후인 내년 1월중 중의원을 해산, 2월20일경이 될 것이라는게 관심거리로 대두됐던 야단연립정권 수립 가능성은 社會黨과 公明ㆍ民社ㆍ社民聯등 다른3당과의 노선차이가 심해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사회당과 다른 3당간에는 美ㆍ日안보조약, 자위대문제, 원자력개발문제, 한반도정책 등에서 커다란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의 압도적 승리도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자민당과 공명ㆍ민사 등 다른 군소야당과의 보수ㆍ중도연립내각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년의 중의원선거는 자민당 1당지배의 역사에서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주황색 옷으로 갈아입은 유럽정치

 東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이 스탈린주의의 붉은 옷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주황색 옷으로 갈아 입으려고 서두르는 것과 때를 맞춰, 80년대초 보수주의의 물결을 타로 우파와 중도우파 중심으로 재편됐던 西유럽의 정치체제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짐은 올 6월에 있었던 유럽의회 선거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6월15일과 18일 이틀 동안 치러졌던 당시 선거에서 社會黨, 綠色黨, 共産黨 등 좌파계열이 반수를 약간 웃도는 2백60석을 차지, 유럽의회의 주도권을 처음으로 차지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독, 프랑스 등에서 극우파의 진출이 눈에 띄는 반면 서독의 基民黨, 프랑스의 社會黨, 영국의 保守黨 등 유럽 주요 3개국의 집권당이 모두 커다란 패배를 안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유럽의회선거가 내년에 있을 연방의회선거의 예비 선거적인 의미를 갖는 서독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선거에서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즉 지난 선거에서 헬무트 콜 총리의 黑-黃 연립정권(基民黨-基社同盟-自民黨)이 47%로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고, 좌파인 사회당과 녹색당이 37%와 9% 득표로 역시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지만, 내년 선거에서 자민당이 사민-녹색 연정에 동참할 경우 사민-녹색-자민의 赤-綠-黃 연정이 수립될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다.

 영국의 집권 保守黨은 이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역시 92년 중반으로 예정된 총선의 중간평가적 성격을 가졌던 6월의 유럽의회선거에서 保守黨은 勞動黨에 참패했다. 더구나, 최근 대처정권은 소위 ‘대처주의’로 불리었던 일련의 경제정책이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국내의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로슨 재무장관의 사표파동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인사파동까지 겹쳐 집권 10년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東ㆍ西관계와 유럽통합 움직임에 대한 대처의 강경우익적, 고립주의적 외교정책도 더이상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노동당은 그동안 선거참패의 요인이 돼온 좌파적 시각을 중도적으로 조정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최근 잇따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 비해 10%정도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다음 선거에서 집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6일 실시된 네덜란드 선거에서는 82년 중도우파 연립정권 등장 이래 처음으로 좌파 노동당이 소수당으로 연정참여가 가능해졌고, 9월11일 있었던 노르웨이선거에서는 집권 노동당이 크게 지지를 상실한 반면, 좌파 사회당은 勢가 크게 신장됐다.

 한편, 일련의 스캔들로 인해 지난 6월의 총선에서 패배했던 파판드레우의 그리스 사회당은 지난 11월5일 5개월만에  실시된 재선거에서 우익인 新民主黨에 1위를 뺏기기는 했지만, 1차선거 때보다 3석을 늘리는 데 성공, 일단 재기의 발판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재선거에서도 과반수 득표를 낳지 뫃한 그리스의 각 정파는 11월21일 新民主黨, 社會當 및 共産黨이 이끄는 좌익과 진보연합이 연립정권을 구성, 내년 4월중순의 총선 때까지 정국을 이끌어간다는 데에 합의, 최종적인 결정을 유보해 둔 상태이다.

 지난 10월29일 실시된 스페인총선에서는 7년간 높은 인기를 누려오던 집권 사회노동당이 겨우 1표차로 과반수를 확보하는 듯했으나, 11월11일의 재검표 결과 1표를 좌파연합에 넘겨줌으로써 과반수 의석확보에 실패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西유럽 정치판도의 전체적인 전개상황을 볼 때 東유럽의 변화로 인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완화, 근 10여년에 걸친 우파 및 중도우파정권 지배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좌익정당들의 유연한 자세변화 등으로 새로운 사회주의정당 지배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東유럽에서 일고 있는 주황색 물결과 서유럽의 주황색 물결이 하나로 합류해 이념적인 면에서의 ‘유럽一家’가 완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중남미,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휩쓸고 지나가는 선거열풍은 90년대의 세계역사의 향방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그 방향은 대체로 民主化의 진전, 지역분쟁의 종식, 이데올로기 대립의 완화 등 인류적 理想을 지향하는 쪽으로 잡혀가고 있는 것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