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해직교사가 맞는 소망의 새봄
  • 우정제 기자 ()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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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인천지부 趙容明?廬美嬅씨··· 생활고에도 식지 않는 ‘참교육 ’ 열정

복사기 옆에 쌀자루가 놓여 있고 20여명의 해직교사들이 각자 일에 몰두하느라고 뿜어내는 열기가 실내에 가득하다. 현장교사들에게 배포할 조례?종례시의 훈화자료집을 작성하느라고 열심히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는 사람, 작업대 위에 엎드려 월별 사업계획표 작성에 여념이 없는 사람, 쉬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는 사람 등 그 모습도 갖가지다. 3월13일 인천시답동에 있는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실. 이 사무실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참교육 ’에 대한 이들의 열정이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부부 해직교사인 조용명(38?전 인천 박문여고 교사)?노미화(33?전 인천 석정국교 교사)씨도 끼어 있었다.

“어제 처음으로 같이 출근했지요. 동인천역과 부평역에서 ‘돈봉투 없애기 ’캠페인을 벌였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남편과 더불어 일선에 뛰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며 노씨는 웃는다. 노씨가 교단을 떠난 것은 지난해 8월의 ‘전교조 대량 해직사태 ’때지만 조씨가 해직된 것은 지난달의 일이었다. 주위의 끈질긴 탈퇴압력을 뿌리치고 박문여고 전교조 가입교사 11명 중 유일한 잔류자로 남았던 조씨는 지난 겨울방학 기간 중 정직처분을 받았었는데 정직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직권면직된 것이다. 각오는 늘 해왔지만 ‘자르지 않겠다 ’는 당초의 약속을 저버린 박문여고 천주교 재단측에 대해 조씨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지난해 여름 수배자로 지목되어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그래도 아이들에게 인사만은 하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2학기 개학날 교단에 섰지요. 박수와 환성이 터지고 교실 안이 축제 분위기였는데…” ‘쫓겨나지 ’ 않고 현장에 남은 전교조 가입교사로서 지난 학기 온갖 우여곡절을 치르며 지켜낸 교직이었기에 그에게는 담임을 맡은 학생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2학년이 된 1학년 信반 학생들이 ‘우리들의 영원한 간디 조용명선생님께 ’부친 편지에는 구절마다 애틋한 정이 넘친다(간디는 여윈 몸집에 왕방울 눈을 가진 조교사의 애칭이다). “…봄방학 때 선생님의 얼굴을 보기만 하고 한심하게 터덜터덜 돌아올 때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 슬퍼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기도 했어요. 왜 어른들은 권위와 위신을 세우기에 급급한지, 무엇이 학교 이미지인지, 정부의 압력이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信반의 마음에 不자를 붙인 건 바로 어른들인 걸요.…”

 

“매일 밤 집 뺏기는 꿈에 시달려요 ”

그러나 조씨는 아직 일일이 답장해줄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천지부 사립지회 회장직을 맡은 데다 연말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전교조의 여러 가지 사업들을 이끌어가느라 철야작업을 하는 날이 많다. 글쓰기?놀이 및 미술지도 등을 주제로 한 월 1회의 강연을 비롯해 노래모임 등 현직교사들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펴나가는데 지부의 42명 인원으로는 절대적으로 일손이 달리는 형편이다.

“사실 그동안 지부 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면서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심심찮게 경찰서 신세를 져야 했던 우리 해직교사들과 현직에 남아 있던 남편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었거든요.”

전교조의 운동방향이 좀더 조용히 ‘참교육 ’의 내실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편과 선임 해직교사로서 복직투쟁 대열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던 아내 노씨의 ‘노선싸움 ’은 이제 생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발등의 불이 되어 떨어졌다. 18평짜리 아파트에서 친정부모님과 아이 둘 등 6식구가 버티다 못해 지금의 27평 새 집으로 이사한 것이 바로 한달전이었는데 남편마저 덜컥 실직자가 되었으니 호사다마라던가. 살던 집 판 돈에 조씨의 퇴직금을 고스란히 털어부어 2천3백만원의 집값을 마련했는 데도 매월 들어가는 10만원의 주택부금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 덕에 부자됐다고 막 자랑했지요. 그러면서도 매일 밤 집을 빼앗기는 꿈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각 20만원씩 월 40만원의 생계보조비를 받을 수 있는 조씨부부의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무실 동료 중에는 해직후 첫 아이를 출산한 동료가 4명이나 된다. 이들 젊은 동료들은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꺼내 쓰고 최근 몰아친 전세값 파동으로 이사할 방을 구하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다. 해직교사 생계돕기를 위한 ‘범인천시민후원회 ’가 결성돼 후원금 1구좌당 2천원의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 모금실적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2월말 현재 전교조 해직교사는 전국에 1천5백47명. 무섭게 밀려오는 생계의 위협 앞에 ‘참교육 ’의 소망은 얼마나 굳건한 방파제가 될 수 있을지. 사무실 벽에 붙은 ‘산뜻한 해직생활 ’의 구호는 그들의 변함없는 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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