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오락이 IT 벤처 먹여 살린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8.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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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프로그램 제작 등으로 ‘공생’…우수한 전산 인력 많이 몰려

 
‘바다이야기’와 같은 성인오락실 산업이라고 하면 흔히 조직폭력배와 같은 ‘어둠의 세력’을 떠올린다. 실제 이들이 오락실 이권에 개입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연간 88조원에 달하는 성인오락실 산업이 모두 조폭과 업자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성인오락실 산업은 젊은 정보통신(IT) 벤처 기업을 먹여 살리는 돈줄 노릇을 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본사를 둔 엔버스터는 성인오락실 산업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많은 벤처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는 ‘묻지마 벤처 투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벤처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00년, 서울대 전기공학부에 재학하거나 휴학 중이던 학생들이 모여 만든 학생 벤처 기업이었다. 처음에는 타자 게임 등을 만들며 궤도에 올랐지만, 벤처 거품이 꺼지는 시기와 맞물려 경영 환경이 나빠졌다.

위기에 처한 엔버스터는 성인오락실 쪽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트리플 크라운’과 같은 스크린 경마 게임 등을 만들다가 2004년 8월 성인오락기 업체인 에이원비즈로부터 릴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2004년 12월31일 ‘바다이야기’를 제작했다.

엔버스터 사장 지 아무개씨는 “당시는 바다이야기가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돈을 크게 벌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는 바다이야기 영업과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바다이야기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엔버스터에 지분 55%(3억8천50만원)를 투자했던 중견 게임업체 넥슨은 바다이야기 파문이 커지자 지분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순수 게임 프로그램 회사로 출발했다가 성인오락실 쪽으로 발길을 돌린 벤처 기업은 엔버스터 뿐만이 아니다. ㅈ아무개씨가 병역 특례 요원으로 3년간 근무했던 ㅇ시스템도 비슷한 사례다. ㅈ씨는 “2004년 청소년용 게임을 만든다고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그 프로그램을 고쳐 성인용 오락 게임의 ‘못판’ (게임의 도입부)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이에 항의해 사표를 쓴 직원도 있었다. 나도 파친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이 불쾌했고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었지만, 병역 특례 요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방침에 따랐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 어쩔 수 없다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ㅇ시스템에 의뢰를 준 성인오락실 업체는 게임기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벤처 기업에 하청을 준 다음 다시 결합하는 방식을 썼다. ㅇ시스템은 게임기 1대당 50만원을 받고 전자 회로 등을 만들었는데, 하청을 준 모기업은 몇 배를 불려 완제품을 시장에 팔았다.

이공계 졸업생에게 많은 일자리 제공

성인오락실 산업은 대학 졸업생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 등 우수한 전산 인력들이 성인오락 게임 프로그램 제작에 동원되었다. 여느 IT 벤처 기업보다 성인오락실 기업 쪽이 대우가 좋았다. ‘바다이야기’와 관련해서는 특히 서울대생들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가 지난 6월 탄핵을 받아 물러난 황라열씨는 ‘바다이야기’업체인 지코프라임의 음향팀장이었다. 지코프라임은 ‘바다이야기 의혹’의 핵심 기업으로 8월20일 대표이사가 구속되었다. 황씨는 서울대 학생회장에서 탄핵된 이후에도 계속 지코프라임에서 일했다. 황씨는 주변 지인에게 자신의 연봉이 2억원이며 자가용을 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황씨는 8월25일 “언론과 접촉하지 않겠다”라며 인터뷰 요청을 회피했다.

황씨는 지난 5월 인터뷰 때는 “연봉은 비밀이다. 나는 성인 오락 게임과 무관한 온라인·모바일 게임 관련 일만 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IT 벤처들이 성인오락실 사업에 뛰어드는 한편, 성인오락실 업체는 파친코 이미지를 벗고 IT 벤처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다이야기’ 게임 관계 회사 임원은 “지코프라임은 2004년께부터 성인오락실 시장이 확대된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해 온라인·모바일 쪽으로 투자를 늘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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