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자식일수록 궂은일 많이 시켜라
  • 김상익 편집위원 ()
  • 승인 2006.10.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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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익의 교육일기]

 
내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고 정상적인 아빠 노릇을 한 기간은 겨우 3년뿐이니 남 다른 소회를 들먹일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집안일을 거드는 습관을 익히도록 이끌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사실, 집안일이랄 것도 없다. 자기 방이라도 제 손으로 치우게끔 가르쳐야 옳았다. 아이들 방에 들어가면 바닥에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2주일에 한 번씩 진공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아이들 방은 부러 내버려 두었다. 한 달쯤 두고 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들고 애들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들 방은 지들 손으로 치우게 해.” 

나도 젊을 때는 아침에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왔다가 저녁 때 다시 쏙 들어가는 게으름을 피웠으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지금도 아내한테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느냐’는 불평을 듣곤 한다(그래도 지금은 청소기 돌리기가 내 몫이 되었으니 약간은 말발이 선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다소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내세우는 논리는 이것이다. 아이들을 나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안 청소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

오래 전 도올 김용옥의 텔레비전 강의를 보면서 ‘쿵푸’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그것이 중국 무술의 명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도올의 말을 듣자하니 쿵푸란 공부(功夫)의 중국식 발음이다. 무술을 배우려면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 그것이 몸에 배도록 만들어야 하듯이 공부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올이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學而時習)’을 강의할 때로 기억하는데,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녀에게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공부’를 시키라고 권했다. 쿵푸가 곧 공부이니 쿵푸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다. 은둔 고수가 제자에게 무술은 안 가르치고 하루 종일 종처럼 부려먹지만, 제자는 밥을 해서 바치고 마당을 쓸고 물지게를 지어 나르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에 살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이다. 단독주택을 임대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2주일 단위로 번갈아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잔디를 깎는 일은 내 몫으로 할당되었다. 뒷마당이 유난히 넓은 집이어서 잔디 깎는 날은 꼬박 너덧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잔디 쓰레기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날은 온 동네가 모터 소리로 요란했다. 점심 먹고 시작해서 저녁 먹을 시간쯤 일을 끝내고 말끔히 이발한 것 같은 잔디를 둘러보노라면 육체 노동의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뿌듯함이 느껴지곤 했다. 

‘때때로 익힐’ 기회 줘 ‘쿵푸’ 이루도록 해야

아내는 왜 아들한테 마당일을 시키지 않느냐고 불평했지만 나는 그럴 시간에 공부하라는 이유를 대며 한사코 잔디 깎는 기계를 아들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내 심리는 조금 복잡했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아비가 잔디를 깎는 모터 소리를 들으며 자식들이 책을 읽거나 자기 방 청소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마당일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내심으로는 아들이 엄마한테 등을 떠밀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내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아비가 밖에서 땀 흘려 일하는데 집안에서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무척 불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라도 육체 노동을 시켜야 옳았다. 이따금 아들이 잔디를 깎곤 했는데 제법 솜씨가 있었다. 마무리가 약간 미흡했지만 그것은 훈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때때로 익힐’ 기회를 주었다면 자연스럽게  ‘쿵푸’가 이루어졌을 터인데 그 기회를 내가 박탈한 셈이었다. 나는 남한테 일을 시키지 못하고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타고났는데 이런 성격은 자녀 교육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나의 뒤늦은 깨달음은 아이들에게 궂은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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