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다 풀린 BDA에 왜 죽자사자 매달리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12.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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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자금’ 굴레 남겨두면 다른 계좌 영향받을까 우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노려

 
마카오‘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도대체 오리무중이다.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2단계 6자회담은 ‘BDA 회담’을 방불케 했지만, 언론 보도나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 어디에도, 북·미 간에 무얼 놓고 다퉈왔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동안 단골손님처럼 등장했던 합법 자금·불법 자금 선별 처리 얘기도 쏙 들어갔다.

다만 6자회담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12월22일 미국 힐 차관보가 불쑥 던진 말만이 여운을 짙게 드리울 뿐이다. “BDA에 대한 북한의 전제 조건이 수시로 바뀐다. 어떨 때는 돈을 달라 하고 어떨 때는 정책을 바꾸라 한다”라는 것이다. 즉 어떨 때는 돈이 쟁점이었고, 어떨 때는 정책이 쟁점이었다는 얘기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가.

북한이 최근 보여온 ‘이상한’ 태도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지난 11월 중순 국내 주요 언론사의 베이징 특파원들은 북한측 관계자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BDA의 자금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역시 그즈음 비슷한 얘기를 접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BDA뿐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두 곳의 자금까지 가져다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가 나가자 한국 등 당사국 정부 당국자들이 펄쩍 뛰었고, 언론들도 ‘알고 보니 사실무근이었던 것 같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북한측 관계자들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안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서 BDA 문제를 핵문제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거의 ‘BDA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할 정도로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돈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됐다’라고 한 것은 언제이고, ‘BDA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결국 돈을 가져다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이 BDA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라는 얘기인가.

바로 그것이다. 앞의 힐 차관보 얘기를 풀어보면 ‘전에는 돈을 풀어달라더니, 돈을 풀어주니까 이제는 정책을 바꾸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우선 돈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경위부터 살펴보자. 이와 관련해 최근 베이징의 한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은 이렇다. 북한측 당국에 BDA 자금을 언제든 사용해도 좋다고 얘기한 곳은 바로 중국이었다. 라이스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다녀간, 10월20일 직후였다. BDA에 묶여 있는 2천4백 만 달러 중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써도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무턱대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이스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기 1주일 전인 지난 10월13일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에 갔고, 미국 국가안보보장회의(NSC)의 해들리 보좌관과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미국의 금융 제재 해제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이때를 전후해 중국은  BDA의 북한 자금이 불법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묶어둘 명분이 없다며 북한측에 돈을 찾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 WMD 관련 자금 거래에 주목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연 미국의 동의나 묵인이 없었을까. 라이스가 베이징을 방문할 그즈음 미국 고위 당국자가 ‘BDA의 북한 자금을 동결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바 있는데, 곧 ‘동결을 풀 것인가 말 것인가는 중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뜻이라는 얘기다. 

BDA에 그토록 서슬이 퍼렇던 미국이 이처럼, 뒷걸음질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은 왜 돈은 그대로 둔 채, BDA 문제를 또다시 이슈화한 것인가. 우선 미국 쪽에서부터 의문을 풀어보자. 서울에서 활동하는 서방측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BDA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된 것은 북한의 위폐 때문이었다. 홍콩의 한 은행 북한 계좌에 100달러 짜리 위조지폐가 입금돼 미국 정보기관이 주목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7~8월께 그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 BDA의 북한 계좌로 입금된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BDA는 북한의 위폐 자금 및 돈세탁과 관련한 금융기관으로 미국측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 재무부가 BDA를 위폐 및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목한 이후, 마카오 금융당국이 자체 조사에 나섰고, 확보된 자료를 미국 재무부에 넘겼다. “BDA는 우리 식으로는 마을금고 수준에 불과한 조그만 금융기관이다. 거래 관련 자료들이 전산화가 안 된 채 손으로 일일이 기록한 것들인데, 한문 초서체에 그것도 광둥어로 써 있어 미국 사람들이 판별하기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처음에는 2주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했던 조사가 기약 없이 계속 이어졌다.

조사가 이토록 장기화된 배경에는 기술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가 더 컸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즉 미국 재무부가 기대를 가지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북한의 위조지폐나 마약거래 자금 등 말 그대로 불법 자금과 관련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측이 지난 3월 외교부 리근 국장을 워싱턴에 보내 나름으로 해명도 했고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조처를 취하겠다는 유연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위폐와 마약 자금만으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미국 재무부 측에서 주력해온 것이 바로 WMD(대량살상무기) 관련 의혹이었다. 관련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른바 합법 자금 1천2백만 달러와 불법 자금 1천2백만 달러라는 얘기도 여기서부터 비롯한 것으로 판단된다. 합법 자금이란 WMD 관련 거래와 무관함이 밝혀진 계좌의 자금을 뜻하고,  불법 자금이란 가명 또는 차명 등으로 되어 있어, 뭔가 불투명해 보이는, 그래서 WMD 관련 부품 구입 등을 위한 자금이라고 의심해볼 수 있는 자금을 뜻한다. 즉 불법 자금이라고 하는 규정 자체가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더구나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대부분은 현대가 금강산 관광 대금 등의 명목으로 북한측이 지정한 계좌로 송금한 것을 북한측이 BDA로 다시 보내 모아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정상적인 남북 간 거래를 통해 확보한 합법 자금이고, 설령 그 자금을 가지고 가명이나 차명 계좌에 넣었다고 해서 국제관례상 문제가 될 것도 아니며, 또 설령 그 돈으로 미사일이나 핵 부품을 구입하려 했다고 한들 그것을 과연 불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는 문제이다. “BDA 문제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미국 쪽도 내심 고민해왔던 것 같다. 동결 해제의 권한이 중국에 있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라고 앞의 관계자는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 처지에서는 이미 돈의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정당한 해외 거래를 언제든 불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BDA 이외 북한의 해외 계좌들이 다 문제가 될 수 있고, 앞으로도 언제든 미국이 같은 수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은 이것이 모두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돈’이 아니라 ‘정책’이라는 힐 차관보의 함축된 표현의 뒷얘기가 바로 이 내용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 앞서, 대략 합법 자금은 풀어주고 불법으로 규정한 자금에 대해서는 북한의 시인 및 재발 방지 약속을 받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비교적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보다 본질적인 문제 제기에 부딪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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