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북, 일 숙제는 '첩첩' 속도는 '절절'
  • 이창훈(서울교대 석좌교수, 아셈연구원 원장) ()
  • 승인 2007.03.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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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부터 삐끗...'납치자' 문제에 발목 잡혀 난항 예상

 
지난 2월 이루어진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관련 당사국들은 ‘행동 대 행동’ 원칙이라는 조건적 보상 보복 기제(tit-for-tat)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조처들을 단계적으로 취해나가게 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 것이다.
2·13 합의의 후속 조처로 지난 3월5일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첫 회의가 성공리에 끝나 어느 때보다도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의 첫 단추가 잘 꿰어진 느낌이다. 북·미 양측은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핵 불능화에 대해 심도 깊이 논의했고 그 결과에 흡족해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건너뛰고 북·미 수교를 논의할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주만도 2·13 합의의 3개 경제 에너지,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한반도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가 각각 3월15일, 16일, 17일에 예정되어 있다. 또 19일에는 제6차 6자회담이 개막될 예정이다.
하지만 상황이 꼭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도처에 암초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장 신고 대상 핵 프로그램과 불능화 대상 및 절차를 다룰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도 문제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상호 신뢰 부족으로 어느 일방이 협력하지 않으면 전체 로드맵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 조처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와중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 3월7일부터 개시된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는 유독 후속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8일 ‘파행’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일단 북·일 간에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은 2·13 합의가 이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일본은 ‘납치자 문제의 선결’을 이유로 북핵 폐기에 따른 5개국 상응 조처에서 유보된 상태에 있는 데다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담조차 계속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2·13 초기 조처 이행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시점에서 단기간에 북·일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북·일 수교 협상 과정의 궤적을 살펴볼 때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에 소극적 자세를 취해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언제나 북한이었다. 이전 북·일 수교 협상이 북핵과 미사일 문제로 인해 좌초되어온 것처럼 현재에도 북핵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이제 그 초기 조처들을 이행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면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일본 국내 정치적으로 일본인 납치 사건 문제는 1996~97년 이후 급격히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어 일본 내 반북한 정서를 극도로 악화시켰고, 북·일 수교에 정치적 부담으로 장기간 작용해오고 있는 이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현재 일본에는 이를 극복할 만한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하다. 아베 총리는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 국민 80% 이상이 지지하고 있는 북한의 납치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일 수교에 다소 적극적이었던 북한 또한 2·13 합의를 통해서 중유 1백만t 상당의 에너지를 확보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3월5일 열린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북·미 수교에 진전을 본 상태이다. 더구나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으로 남북 당국 간 대화 채널을 복원해 경제적·인도적 지원 통로를 뚫어놓았기 때문에 북·일 수교 협상을 서두를 단기적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넷째, 북한과 일본 관계에는 납치자 문제 외에도 요코다 메구미 유골의 진위 문제, 대북 제재 해제 문제, 과거 청산 및 배상 문제, 미사일 발사 동결 문제, 재일 조총련계 교포 지위 문제, 문화재 반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북·일이 관계 개선 외면 못할 세 가지 이유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교와 협력에서 오는 상호 이익의 공유치가 크고, 2·13 합의의 다른 후속 조처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일본이 지게 되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북·미 수교 협상과 북핵 폐기의 로드맵 진척에 맞춰 북·일 관계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로는 첫째, 일본 처지에서 보면 북·일 수교는 전후 처리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와 함께 대외 관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미해결 과제라는 점이다. 유엔 회원국들 중 일본이 국교를 맺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둘째, 탈냉전 시대에 일본은 국제 질서의 변화와 다양한 역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의 쌍무적 안보 관계를 보완하는 다자간 안보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 회담과 초기 조처 이행 직후 동북아 안보 협력 증진 방안 모색을 위한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의 처지에서도 미국으로부터 체제에 대한 보장을 얻는 것 못지않게 열악한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 김정일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이다. 북한은 당장 식량난·전력난과 같은 기본적인 대내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고 2002년 7월 실시된 ‘경제 관리 개선 조처’와 생존을 위한 활로를 찾기 위해서도 폐쇄 경제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이 추진 중인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등을 포함한 경제 회생 복안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급 증대와 경제 회복 및 경제 관리 개선을 위한 내부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내부 자원 고갈과 외부 자본 유입의 제약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대일 수교 후 일본으로부터 받게 될 50억~1백억 달러 상당의 전후보상비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과의 수교는 북·미 수교 못지않게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북·일 간에 조성된 긴장과 갈등은 2·13 합의의 다른 후속 조처들이 어떤 속도와 깊이로 진행되는가에 의해 당분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납치자 문제 해결 이후 일본은 대북 분담 지원,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리라고 본다.
2·13 합의의 이행 조처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 회의가 로드맵대로 진척되어 북·미, 북·일 수교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럼으로써 1990년대 초반부터 드리워진 한반도의 암운을 걷어치우고 한반도 평화 체제가 좀더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될 수 있기를, 그리고 북한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정상적인 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동북아 평화 번영의 시대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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