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히딩크 출현” 누가 먼저 이 말 들을까
  • JES 제공 ()
  • 승인 2007.07.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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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외국인 감독 전성시대…아시안컵에서 4강 각축

 
아시아 축구 최강의 자리를 가리는 2007 아시안컵대회가 막을 내렸다. 이변 속에서도 기존의 강자가 힘을 발휘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쪽은 선수보다 감독 자리였다. 외국인 감독들이 득세한 가운데 제2의 히딩크가 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이 아시아 무대에서 각축을 벌였다.

‘선수·국가 지원·운’ 3박자 맞아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개최국 한국이 이룩한 4위의 성적은 그야말로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가까운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게는 부러움과 함께 ‘우리도 감독만 잘 둔다면 해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됐고, 월드컵 이후 외국인 감독의 전성 시대가 열린다.
아시안컵 본선에 참가한 16개국 중 자국인 감독을 둔 나라는 다섯팀에 불과했다. 이 중 8강에 오른 나라는 호주와 우즈베키스탄 두 나라밖에 없었고, 4강 진출에는 모두 실패했다.
갈수록 세계 정상의 스포츠 자리를 다져나가는 축구의 위상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도 축구 발전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축구가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본다면 성공 여부에 따라 상당히 효율적인 정치적 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의 영입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제2의 히딩크가 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과의 호흡, 국가적인 지원, 그리고 운까지 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은 미완성인 제2의 히딩크 출현, 그래도 크고 작은 성공이 뒤따랐고 그 모양새도 다양했다.
■독불장군-베어벡·오심 자국 팬들의 지지도 면에서는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으나 아시아 최강팀을 이끌고 있는데다 타협을 모르는 스타일이 닮은 제2의 히딩크 후보들이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전 낮은 지지율 속에 독불장군 형태로 팀을 이끌었던 점과도 닮았다.
히딩크 감독의 수제자인 베어벡 감독은 한국 생활 6년 동안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미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아시안컵 직전 K리그와 일전불사를 통해 정면 승부를 벌였고 언론의 전술적 운용에 대한 의문 제기에도 귀를 닫았다.
이비차 오심 일본 감독은 한 술 더 뜬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 ‘호통’이라는 말을 이름 앞에 갖다붙이면 어울릴 법한 감독이다. 일본 축구계와 언론과의 충돌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어차피 아시안컵 우승으로 만족할 수 없는 두 나라의 처지인만큼 이번 대회 4강 진출을 이루었으니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한 셈.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제2의 히딩크가 되기를 위한 준비 과정은 통과한 셈이다.
■중동의 히딩크-비에이라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의 위상과 가장 가까운 감독이라면 이번 대회 돌풍을 일으킨 조르반 비에이라 이라크 감독이 손꼽힐 만하다. 아시안컵과 월드컵의 위상이 천지 차이이라 같은 수준에서 성적을 논할 수는 없지만 처한 상황을 따진다면 비에이라 감독의 스토리가 훨씬 감동적이다.
지난 5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이라크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비에이라 감독은 아시안컵을 통해 이라크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누가 우리가 여기까지 오리라 예상했겠나.” 조별리그에서 우승 후보 호주를 3-0으로 완파하고 준결승까지 올라온 비에이라 감독의 외침이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 국민들은 연이어 동남아시아에서 날아온 승리의 낭보에 시름을 털어냈다. 십수 년간 중동에서 잔뼈가 굵은 비에이라 감독은 부임 당시 ‘돈만 아는 모사꾼’ 정도로 통했지만 “이라크 국기 앞에서 하나가 되자.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자”라고 선수들을 독려했고 이제는 재계약 요청을 받을 정도로 위상이 변했다.

 
이라크의 행보는 고단했다. 부족한 협회의 지원 속에서 이라크는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 3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한국의 제주도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를 준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한국에 눌러앉아 훈련을 더했다. 파주 NFC에서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을 치르기도 했다. 2002 월드컵 당시 개최국으로서 절대적인 지원을 받은 히딩크 감독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국민적 영웅-콜레프·리틀 성적으로 따지면 제2의 히딩크 근처에도 가지 못하겠지만 국민적인 지지도를 따진다면 인도네시아의 이반 콜레프 감독, 그리고 베트남의 알프레트 리틀 감독은 충분히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7월17일,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패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콜레프 감독은 인도네시아 취재진으로부터 박수 세례를 받았다. 패배의 현장에서, 그것도 기자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이례적인 장면, 인도네시아에서 콜레프 감독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단상이었다. 기자회견의 시작도 질문이 아니었다. “갈수록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 대표팀을 잘 이끌어줘 고맙다”라는 칭찬이었다.
60~70년대 동남아시아팀과의 경기에 이력이 난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인도네시아 같은 팀은 훈련량도 적고 조금 해보다가 안 되면 스스로 주저앉는 팀인데 이번 대회에서 같이 숙소를 써보니 훈련량을 대폭 늘려 팀을 일사불란한 체제로 만들었다.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칭찬했다. 6년 가량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은 콜레프 감독은 인도네시아 말로 인터뷰를 할 정도로 지역밀착형 감독이다.
베트남의 리틀 감독은 올해 초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기증자가 다름 아닌 베트남 축구팬이었다. 당시 리틀 감독의 병이 알려졌을 때 80여 명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이 감동적인 사연 역시 리틀 감독과 베트남 축구의 끈끈한 인연을 잘 말해주고 있다. 베트남은 개최국 중 유일하게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제2의 인생을 사는 리틀 감독이 팬들에게 준 선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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