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국, ‘군사 협력국’된다?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1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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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불능화하면 ‘넌-루가 프로그램’ 적용 가능성…‘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목적

 
남북정상회담은 외피에 불과하다. 본질은 북·미 간 핵 문제이다. 양국의 계산은 무엇일까. 외교전문가들은 ‘넌(Nunn)-루가(Lugar) 프로그램’을 주목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대사관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 본질은 북한이 미국의 안보 체제에 편입된다는 것이다. 철천지 원수 사이 같기만 했던 북한과 미국이 군사적 협조 체제를 갖춘다는 내용이다. 가히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이같은 상황이 점차 현실이 되어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 핵시설 폐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는 핵 불능화를 실행하면, 그 다음 단계는 핵무기와 핵시설 해체 및 폐기이다. 이 단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넌-루가 프로그램’이다.
‘넌-루가 프로그램’은 소련 붕괴 후, 통제 불가능 상태에 빠져 있는 옛 소련 연방 국가들에 배치된 핵무기를 해체하기 위해 1992년 미국의 샘 넌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해 입안한 법안이다. ‘넌-루가 프로그램’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옛 소련 연방국가들의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미국이 그에 필요한 자금과 보상을 제공하고 미국 기술자들이 직접 폐기 작업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핵무기 폐기에 관해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아 등 옛 소련 연방 국가들에 16억 달러를 투입해서 총 6천3백12기의 핵탄두, 5백37기의 대륙간탄도탄, 1백28대의 핵 폭격기 등 막대한 대량살상무기들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의 핵무기 및 핵시설을 폐기하는 데도 이 ‘넌-루가 프로그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지난 6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전격적으로 방문했을 때 ‘넌-루가 프로그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설비를 돈을 주고 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이 프로그램의 발의자로 현직 미국 상원의원인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공화)을 만나 북한 핵 폐기 단계에 ‘넌-루가 프로그램’의 적용 가능성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넌-루가 프로그램’은 핵무기 및 핵시설 폐기에 그치지 않는다. 핵 관련 사업에 종사했던 과학자나 전문 인력을 평화적 목적의 다른 분야 첨단 기술 개발에 종사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시키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뿐 아니다. 한반도 상황에서 결정적 변화를 몰고 올 요인은 미국이 핵을 폐기한 국가의 안보에 협력한다는 것이다. ‘넌-루가 프로그램’의 정식 이름은 ‘핵위협 감축 협력 프로그램’(CTR, Cooperative Threat Reduction)이다.
이 프로그램은 네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옛 소련 연방 국가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기반 시설의 해체 △이들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기술 및 물질들을 지정된 지역에 통합 관리 △대량살상무기 관련 활동의 투명성 제고 및 좀더 높은 수준의 관행 권고,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방위 및 군사 협력 지원이 그것이다.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 획기적으로 전환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나 관련 기술이 개발되어 테러 국가나 테러 세력에 확산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따라서 핵 폐기가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국가로부터 핵 관련 물질이나 부품, 기술이 국경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내는 것이 골자이다. 9·11 테러 이후 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더욱 확고하다.
핵 관련 위험 물질이 밀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 등에 최첨단 검색 장비를 제공하고 위험물이 탐지되면 해당 국가에 주재하는 미국대사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바로 이 임무를 주관하는 곳이 미국 국방부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국방부는 ‘넌-루가 프로그램’이 발효된 이듬해에 이 프로그램 가운데 국방 부문을 더욱 확대시켜 ‘국방 및 군사 접촉(DMC, Defense and Military Contacts)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옛 소련 연방 국가들과 미국 정부의 국방·군사 및 안보 기관들 사이에 좀더 적극적인 관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와 각각 양자 조약을 맺고 미국이 이들 국가에서 실행되는 군비 감축, 방위 체제 개혁, 추가적인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활동, 그리고 지역 안정 및 이를 위한 협력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이들 국가의 군사적 활동에 미국 국방부가 전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미국이 이들 국가의 안보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과 미국이 이같은 군사 협력 체제를 구축할 경우, 한반도의 안보 지형은 그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남북한이 동시에 미국의 방위 체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무찌르자 공산당’이니 ‘반공’이니 하는 구호가 허망하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국내 정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햇볕 정책’이니 ‘퍼주기식 지원’이니 하는 이슈들은 역사의 한 귀퉁이에 마치 화석 같은 존재로 남게 될지 모른다. 바야흐로 남북 관계의 변화는 이처럼 그 근본부터 흔들리는 대변혁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때문에 북·미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은 단순히 2007년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느니 패배하느니 하는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정치 지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여야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는 얼마 전 만난 미국의 고위층 인사가 내놓은 지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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