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민족’은 없다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9.15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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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다. 며칠 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만난 외국인을 세어보니 20명이 넘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여행객들은 지도를 펴들고 여행할 곳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달리며 운동하는 사람,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외국인, 서울 여의도에서 인라인을 타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개를 돌려보면 우리 곁에 외국인들이 보인다.
지난 8월24일자로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1백만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2%에 달하는 숫자이다. 체류가 아니라 살고 있는 외국인은 2007년 5월 현재 72만명이 넘는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다문화 사회’로 본격 접어든 셈이다. 오랫동안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문화’라는 단어는 아직 낯설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한국 속에 들어와 있다. 40개국이 넘는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 민족에게 다가온 낯선 다문화 사회
이런 환경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우리 역사상 이처럼 다양한 외국인들이 우리와 접촉한 적은 없었다. ‘지역 차별’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한국인들은 이제 낯선 이방인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차별’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의 의식이 변화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에 사는 ‘같은 인류’라는 관점보다는 ‘다르다’는 쪽을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사회의 지형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외국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들은 줄어들고 있다.
서울·경기·인천에 64.4%가 거주하는 등 외국인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외국인 주민이 1만명이 넘는 지자체는 16곳인데 2006년 여덟 곳에 비해 두 배 늘었다. 반면 1백명 미만의 외국인이 사는 지자체는 다섯 곳에서 한 곳으로 줄었다.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외국인 집단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11일 찾아간 서울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촌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동대문운동장역을 나와 먹자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니 러시아 키릴 문자 간판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러시아촌’은 이국적인 풍광으로 서울의 명소가 된 곳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주말이면 더 그렇다. 평소에는 한산하지만 토·일요일이면 갑자기 ‘외국’이 된다.
‘러시아촌’의 한 음식점 주인은 “주말에는 한국인들의 코빼기도 볼 수 없다. 수백 명의 러시아인들이 거리를 꽉 메운다”라고 말했다.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동대문시장에 들렀다가 온 듯 옷을 가득 넣은 비닐 봉지를 들고 있던 한 고려인 출신 동포는 “최근에는 몽골이나 우즈베키스탄 출신들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이곳에 있는 러시아인들의 사무실은 대부분 무역업을 하고 있다. 러시아와 동대문 의류상가를 잇는 보따리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어와 키릴 문자가 같이 쓰여 있는 노래방 간판 옆에 비치는 비디오 화면에는 러시아 풍광을 배경으로 깔고 한 러시아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서울 속의 ‘외국’은 이곳만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곳은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부근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네팔 거리’이다. 2000년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히말라얀’ ‘뿌자’ 등 네팔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가게들이 여럿 생겼다. 네팔의 유명 가수나 코미디언들이 찾아와 공연을 하는 등 네팔에서도 유명한 곳이 되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종로구 혜화동 성당 부근은 차가 밀린다. 어떤 때는 삼선교 지하철역이 있는 곳까지 차가 주차되어 있다. 이곳은 일요일마다 ‘필리핀’이 된다. 수천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몰려든다. 옷을 파는 사람, 장신구를 파는 사람, 먹을 것을 파는 사람 등등. 잠시나마 필리핀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최근에는 이 이색적인 풍물을 구경하기 위해 오는 한국인들도 늘고 있다.
서울에만 외국인이 20만명 가까이 살고 있는데 현재 이처럼 ‘집단촌’ 형태를 띠고 있는 곳이 14곳이다.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초동 ‘서래마을’,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동부이촌동 ‘리틀 도쿄’,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구로구 ‘옌볜 거리’,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이태원 ‘나이 지리아 거리’ 등이 대표적인 곳들이다.
이들 각 지역에서는 나라의 특색에 맞는 음식이나 풍물을 볼 수 있지만, 이미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도 있다. ‘베트남 쌀국수’가 대표적이다. 이미 서울에만 수십 개 가게가 성업 중이다. 유명 백화점이나 마트에도 진출했을 정도로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도 ‘호아센’ 등 베트남 음식을 테마로 한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회사원 성현옥씨는 “깔끔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가끔 베트남 음식점을 찾는다.
 
우리 입맛에도 맞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집단촌만 14곳
매주 일요일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필리핀 신부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미사를 올리는 것이나 최근 국적이나 이주 노동과 관련한 법이 바뀌는 현상, 지자체들이 해당 국가 언어로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등도 ‘다문화 시대’에 바뀐 풍광이다.
‘외국인 집단 거주촌’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관계가 깊다. 외국인 거주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이들인데 35% 정도를 차지한다. 40만명이 넘는다. 물론 아직도 “월급을 제때 안 준다” “심한 욕설을 들었다”라는 등등 인권 침해 사례를 호소하는 경우들이 많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상황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
1992년 외국인들의 인권 침해·임금 체불 문제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 처음 생긴 이래 현재 ‘외국인’을 위해 활동 중인 시민단체는 1백80여 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종교 단체와 관련 없는 순수 시민단체는 60여 개이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우삼열 사무처장은 “다문화 사회의 폐해를 보는 시각이나 국제 결혼, 이주 아동 문제 등을 보는 시민단체나 정부의 눈이 제각각이다. 이런 문제가 조만간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것인 만큼 빨리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며느리 대상 ‘송편 만들기’ 강좌도
서울만이 아니라 시골 풍경도 많이 변했다. 추석 때면 외국인 며느리들이 송편을 만든다. 국제결혼을 한 가정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총각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국제 결혼을 했다. 여성의 국적은 베트남·중국·필리핀 순이다. 과거에는 조선족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베트남 여성들이 많다.
경남 함안군에서는 9월14일부터 외국인 며느리들을 대상으로 ‘송편 만들기’ 강좌를 열었다. 함안군 관계자는 “올해부터 시범 사업으로 하기 시작했다. 추석을 맞아 한국 전통 명절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강좌를 열었다. 20여 명의 외국인 며느리들이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다문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근 논쟁이 불붙고 있는 것은 국제 결혼과 관련해서이다. 지난 2006년 정부가 ‘여성 결혼 이민자 가족과 혼혈인 사회 통합을 위한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본격화한 ‘농촌 총각 장가 보

 
내기 사업’을 놓고 시민단체와 정부가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 있다.
2007년 5월말 현재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60개 시·군이다. 전국 기초단체 2백46곳의 25%에 달한다. 지자체들이 여기에 쓰는 예산은 28억5천만원 정도이다. 지자체들은 적게는 3백만원에서, 많게는 8백만원까지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장가를 보내는 데 쓰는 예산이 여성 결혼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지원 예산보다 여섯 배 이상 많다. 경상남도와 제주시 등 2개 광역 시·도와 경남 남해·함안군 등 24개 기초단체는 농어민들의 국제 결혼을 지원하기 위해 조례까지 만들었다.
경상남도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농촌 총각들이 국제 결혼을 하는 것을 지원해주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지난해 1인당 6백만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5백만원으로 줄였다. 국제 결혼 자체가 중개업소를 통해서 하다보니까 일반적인 결혼 절차와 달라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인구를 늘리고 지역민들의 ‘사기’를 올린다는 차원에서 국제 결혼을 적극 장려하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지자체들에게 여성가족부는 공문을 보내 국제 결혼에 대한 인식과 다문화 수용 등 사전 교육을 받은 농민에게만 결혼 비용을 지원해 주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흘려듣는 분위기이다. 시민단체들도 이 사업을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남군의회 김종분 의원은 이와 관련한 한 세미나에 참석해 “지자체들의 국제 결혼 장려는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고르는 광고전단을 보는 것과 같다. 상대 여성의 인권에 대한 고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라고 질타했다. 김의원이 예로 든 것은 해남군이 각 면에 내려보낸 공문이다. 이 공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베트남 여성은 남편을 하느님처럼 모시고 사는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순수함을 지닌 천사와도 같으며,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모성애가 강하며, 몸매가 환상적이고 소식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 살이 찐 여성이 거의 없다….’
 
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사회학)는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우리 사회를 찾은 외국인들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와 소통하는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들을 ‘다양한 문화를 한국 사회에 소개해 한국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영 대표도 “이주 여성을 교육이나 지원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여성이 한국 문화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남성도 여성이 갖고 있는 문화를 배우면서 상호 소통해야 발전이 있다.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한국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한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이주 여성에 대해서는 차별 의식을 갖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귀화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것도 다문화 시대의 한 풍경이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귀화한 사람이 6만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매년 1만명이 넘는 사람이 ‘한국인’이 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귀화가 가장 활발했던 때는 고려 초기이다. 고려 초기 100년간 고려에 귀화한 외국인이 17만여 명에 달했다. 이 중에는 과거 제도를 처음 도입한 쌍기 등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귀화인들이 여럿이다.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보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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