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해결에 ‘악수’해야 양측 모두 ‘박수’
  •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과)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10.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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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핵심 의제와 전망 / 비핵화와 남북 관계 묶어서 논의할 듯

 
남과 북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전격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정치권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 극적으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짐으로써 남북 관계의 질적 발전과 한반도 정세의 급속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상회담은 분쟁 당사국 간의 현안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대화 방식이다. 아무리 어렵고 해묵은 분쟁이라고 하더라도 분쟁 당사국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쌍방 간에 신뢰를 조성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극적인 전기를 마련한 전례는 많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도 북한이 지도자 중심의 ‘유일 체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의 최고 수뇌가 만나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남한은 여러 정치 세력 간의 역학 관계가 있어 대통령의 정책적 자율성이 높지 않고 임기제에 따른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심하면 남북 관계에 극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노무현 정부의 북핵 해결 우선주의와 상황 관리 위주의 대북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 해결 노력과 남북 관계 발전을 병행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사실상 남북 관계는 6자회담보다 반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6자회담의 ‘2·13 합의’ 이행이 다시 본격화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정상회담에 응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도는 2·13 합의 이행의 본격화 추세에 맞추어 남북 관계를 급진전시켜 정세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찾아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 선언’을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남북정상회담을 활용할 가능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 체제 성격상 미리 의제 정하지는 않아
북한은 지도자 중심의 유일 체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수뇌 상봉)의 의제를 미리 설정하지 않으려 한다. 준비 접촉에서 남과 북은 정상회담에서 평화·번영·통일 등에 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의 전례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미리 의제를 설정하고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어렵

 
다. 예컨대, 모두 21차례 열린 장관급회담도 그동안 미리 의제를 설정해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남북 양측이 제안한 것을 놓고 합의했을 뿐이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사전에 정해진 의제는 없었다. 제2차 정상회담의 의제는 남북 모두 관심을 갖는 의제, 남이 관심 갖는 의제, 북이 관심 갖는 의제 등이 있다. 정상회담에서는 논의가 가능한 모든 의제를 내놓고 합의가 가능한 부분을 공동 선언으로 담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의제는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의 남북 관계 전반에 관한 평가이다. 6·15 선언은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문건’이다. 북은 남북 관계사를 6·15 선언을 분기점으로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누고 있다. 북은 ‘6·15 통일시대’라는 표현과 함께 ‘우리 민족끼리’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의제는 6·15 선언에 관한 것이다. 양 정상은 6·15 선언 이행을 평가하고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 요인, 근본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모색할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에서 핵 문제에 관한 논의도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를 진행하는 등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 프로세스가 진행 중에 있어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법보다는 해결 의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북핵 의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서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한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비핵화에 대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됨에 따라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등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한 의제의 비중이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료 선언 용의를 표시한 데 이어, 9월7일 호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밝힘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숙제가 늘었다.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전면 신고하고 철회할 경우 한국전쟁을 종료시키는 평화협정을 김정일 위원장과 공동 서명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평화협정과 핵 폐기를 교환하는 새로운 협상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실험 이후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남북정상회담에 나가게 되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화와 번영 문제를 연결해서 같이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평화와 번영을 연결해서 논의하면 결국은 ‘조국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북핵 해결과 평화 정착에 관련한 원칙적 합의를 도출하고 인도적 문제 해결과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등 남북 관계 제도화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통일 등 거대 담론보다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통해 남북 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통일 논의를 제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북측 지도자는 통일 담론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남과 북이 통일 논의를 진전하는 데는 정체성 문제 등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1차 정상회담 때는 통일의 원칙과 방법 문제를 공동선언의 1항과 2항으로 담았지만, 2차 정상회담 의제에서 통일은 평화와 번영에 이어 세 번째로 명기하고 있다. 이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차 정상회담에서 통일 논의를 진전시킨다면 체제 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조처들을 제도화하는 수준에서 정상회의와 각료회의의 제도화, 연락대표부 설치 등 남북 연합기구 설치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협력 논의 전에 긴장 완화 합의 이끌어낼 수도
그 밖에 정상회담에서 다룰 의제는 많다.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한 서해 평화수역 설정 문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군축 문제 등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 및 참관지 제한 철폐 등 그동안 실무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근본 문제도 논의할 전망이다. 또한 교류 협력 확대 문제, 이산가족과 납북자, 국군 포로 등의 인도적 문제 등도 논의할 것이다. 이 중 교류 협력 확대는 군사적 보장 문제 해결 등이 선행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전이 힘든 사안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화와 번영 문제를 연결해서 같이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장 내실 있는 성과로서 서울과 평양에 각각 연락대표부를 설치하는 일을 기대해볼 수 있다. 연락대표부 설치 합의만 되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남북 관계가 제도화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북핵 해결과 평화 정착과 관련한 원칙적 합의를 도출하고 인도적 문제 해결과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등 남북 관계 제도화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통일 등 거대 담론보다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통해 남북 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정체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현안 문제(근본 문제)에 관한 양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6·15 선언 이후 남북 관계 전반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남북 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이른바 ‘근본 문제’에 대한 의견 제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측이 제기하는 근본 문제란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중단,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참관지 제한 철폐 등이다.
6·15 선언 이후 장관급회담 21차례, 군사당국자회담 6차례, 경제협력추진위원회 13차례 등 각 부문별 회담을 진행해오는 과정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 요소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이의 해결이 절실한 시점이다. 6·15 공동선언의 동력으로 지난 7년간 남북 관계는 양적·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지만 한 차원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 이후 경제 협력 분야는 크게 발전했지만 군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군사 분야에 막혀 경의선 열차 운행, 임진강 수해 방지 사업, 서해상 공동어로, 한강 하구 골재 채취 등 각종 현안들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NLL 등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군사적 보장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
NLL 문제는 근본 문제 중의 근본 문제로 2차 정상회담의 ‘뜨거운 감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서 규정한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이기 때문에 헌법상으로는 NLL 문제가 영토 주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남과 북을 ‘잠정적 특수 관계’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본다면 NLL은 영토 주권에 해당하고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은 NLL을 영토 주권 문제로 접근해 의제 상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남남 갈등, 대선 정국 등을 고려할 때 해상 경계선 문제를 공론화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NLL 문제 해결을 무작정 미룰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 해결이 어려우면 다음 문제인 평화 체제 구축 문제 진전도 어렵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만을 의제로 다루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NLL 문제, 공동어로 수역, 한강 하구 공동 개발, 해주 개방 등을 묶어 서해 남북 공동의 평화수역을 선포하는 정치적 결단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경계를 허물고 지역 통합을 이루어나가는 시대 변화 추세에 맞게 남과 북도 휴전선의 경계를 허물고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북측의 개방 지역과 인접한 남측 지역을 묶어 남북 공동의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어 나가고, 서해와 동해에도 NLL을 포함하는 광역 단위의 공동어로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보아야할 것이다. 남측이 NLL 문제를 영토 주권의 국경선 문제로 타협 불가 입장을 견지할 경우 향후 남북 경협 관련 군사적 보장 조처, 평화 체제 구축 등에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상 경계선 재설정을 남북 기본합의서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정상회담에서는 NLL 문제 해결 의지를 확인하고 국방장관 회담에서 해결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제2차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 번영을 연계해서 남북 관계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의 이점을 살려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갈 경우 다음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남북 관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무리해서 근본 문제를 해결할 경우 이를 둘러싸고 심각한 남남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남남 갈등이 격화될 경우 여타 부문의 성과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역사적 평가’라는 차원에서 근본 문제 해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리수 두지 않고 근본 문제 해결 나서야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을 ‘인덕 정치’, ‘광폭 정치’라고 선전하면서 통 큰 지도자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섰기 때문에 일정 성과를 내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정일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통일 지도자상을 부각하고 이를 리더십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지도자가 나서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도력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북은 초청하면 반드시 ‘선물’을 준다는 전례 등을 고려하면 2차 정상회담도 분명 성과가 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를 향해 ‘불량 국가 지도자’에서 ‘정상 국가 지도자’로 이미지를 변신시키기 위한 연출을 시도할 것이다.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 실험이라는 충격 요법을 통해 국면을 전환한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 적대 관계 해소가 이루어지면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전략적 결단’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 선언을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남북정상회담을 활용할 가능성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북·미 적대 관계 해소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 우선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 관련 합의를 도출해 당사자 해결 의지를 확인하고, 미국을 포함하는 3자 정상회담, 또는 중국을 포함하는 4자 정상회담 등을 통해서 종전 선언을 하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종료 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나와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정상회담 개최의 마지막 타이밍을 잡았다. 그리고 서울을 통해서 워싱턴과 도쿄로 가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남북 당국과 정치 세력들의 ‘주관적 의도’가 무엇이든 객관적 현실은 남북 관계 진전과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핵 해결을 촉진하고 한반도 평화 관리가 이루어져 긴장이 완화되면 대외신인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른 주가 상승 등으로 국력 신장과 개인들의 자산 가치 상승이 뒤따를 것이다.
지금은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기보다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정상회담의 결과가 국내에 어떤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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