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 이들이 움직인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0.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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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는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이다. 각계 전문가 1천명을 대상으로 3개까지 중복 응답하도록 한 이 조사에 나타난 인물과 매체의 부침은 시대가 변화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올해로 벌써 16번째이다. 매년 조사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반영하듯 정치·경제·언론·문화예술·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지가 조사 결과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올해도 역시 ‘영향력 1위’는 현직 대통령이었다. 딱 한 번,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1992년에 3위를 한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이 부분에서 이변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영향력이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대형 호재를 터뜨렸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력은 지난해보다 쇠퇴했다. 2005년 67.4%, 2006년 63.2%에 이어 올해는 57.3%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59명이 줄었다.
사회단체(40.0%)와 종교인들(41.0%)이 주로 노대통령의 영향력을 낮게 보았다. 반면 정치인(77.0%)이나 언론인들(71.0%)은 노대통령의 영향력을 평균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했다. 현실적인 권력의 힘에 민감한 이들 두 집단은 현재 노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말할 것 없고, 범여권으로 불리는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도 대통령과 갈등했다. 정치인들은 지금 노대통령과 차별화하기 바쁘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자실 통폐합 문제 등으로 정부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기자들은 요즘 정부청사 바닥에 앉아 기사를 쓴다. 국정홍보처로 대표되는 정부와 기자들의 갈등은 쉽게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 두 집단은 싸우면서 상대의 현실적인 힘을 더 느끼는 것 같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두 집단의 ‘대통령 영향력 평가’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영향력 1위’ 조사 결과를 좀더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나타난다. 기업인들은 달랐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 노대통령이 1위를 기록했지만, 기업인들은 한 명을 더 꼽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었다. 기업인들은 ‘노무현·이건희 공동 1위’를 선택했다. 이런 결과는 처음 있는 일이다. 기업인들에게 이회장은 ‘경제 대통령’이었다. 이회장의 강세는 전체 순위에서도 알 수 있다. 2005년 39.4%에서 지난해 24.2%로 크게 떨어졌는데 올해 다시 33.8%로 치고 올라왔다. 그는 2004년부터 4년째 영향력 순위 전체 2위를 지키고 있다. 대통령은 올해 새로 선출되지만, 이런 추세라면 ‘경제 대통령’의 영향력은 내년에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DJ 영향력 ‘건재’…김수환 추기경 18년째 10위권 ‘장수’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에는 정치인들이 다수 올라 있다. 노대통령을 비롯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등이다. 기업인 가운데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사무총장에 올라 10위 안에 진입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올해도 흐름을 이어갔고, 종교인 가운데는 김수환 추기경이 10위 안에 들었다.
2005년, 2006년과 비교해 특징적인 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하락이다. 호각세였지만 박 전 대표에게 뒤졌던 이명박 후보가 이번 조사에서 순위를 뒤집으며 노대통령, 이건희 회장과 함께 확실한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이후보는 지난해보다 15% 이상 뛰어올라 30.5%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 2년 연속 영향력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하며 3위를 기록했던 박 전 대표는 지난해보다 14% 이상 하락한 4.3%에 그치며 4위로 밀렸다. 그녀는 ‘영향력 있는 여성’에서는 1위 자리를 지켰다.
다른 하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약진이다. 그는 처음으로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며 정치적인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비록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앞으로 그의 정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이번 조사는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여권에 합류해 경선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주류 정치인으로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시사해준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경이롭다.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10위 안에 들었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8위에 올랐다. 정진석 추기경이 공식적으로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고 있지만, 김추기경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구체적인 어떤 행동이나 말보다는 존재 자체로 영향을 주는 ‘정신적인 지주’ 반열에 올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추기경과 함께 장수한 인물이 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한 번을 뺀 15번을 10위 안에 들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지난해보다 한 단계 상승한 4위를 기록했다. 퇴임한 이후에도 호남 유권자들과 평화·개혁 세력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는 확실히 정치적인 거목임에 틀림없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범여권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라는 따위의 정치적인 발언을 하며 대선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0위 안에 들었던 인물 가운데 올해 빠진 인물은 김근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과 고건 전 국무총리이다.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대권 가도를 질주하다가 도중에 하차했다는 점이다. 이들 둘을 대신한 사람은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을 완주한 정동영 후보와 손학규 전 지사였다.
10위 안 진입을 노리는 사람들은 10위권 밖에서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10위 안 순위와 달리 10위권 밖은 색깔이 제법 다양하다. 정몽준 의원 같은 국회의원이 있는가 하면,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같은 시민운동가, 최근 중앙일보에서 활약하고 있는 도올 김용옥 같은 철학자의 이름이 보인다. 임채정 국회의장,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정상명 검찰총장 등도 이름을 올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10위권 밖에 이름을 올리는 단골이다. 보폭을 넓히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아시아 최고의 금융인이 되겠다며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해가는 박현주 미래에셋회장도 10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 권오규 부총리겸재정경제부장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유시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부시 미국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이장무 서울대총장, 김신일 교육부총리, 박지성 선수, 봉준호 감독, 황석영 작가, 구본무 LG회장, 고은 시인, 법정 스님, 이용훈 대법원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강수돌 교수, 옥한흠 목사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까지는 정치인들이 주로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문화·예술계 인사나 금융·종교인들의 이름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 되면 한국 사회는 다양한 색깔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좀더 수준 높은 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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