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과 사돈어른이 왜 그러셨을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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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가 어수선하다. ‘대통령 퇴임 후 기거할 사저’ 건축 공사로 연일 울려퍼지는 굉음에다 지역 내에서 몇 년째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작은 분쟁 탓이다. 식품공장을 운영하는 안병석씨(43)와 신 아무개씨(61) 간의 소송전이 그것이다. 별로 이목을 끌지 못할 지방 사업자 간의 작은 소송 분쟁임에도 이 사건이 지역에서 관심 있게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에 노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와 사돈 배병렬씨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라거나 “서로 다투는 위치에 있다”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노씨가 안씨를, 배씨가 신씨를 돕는 위치에 있다는 얘기도 들려 소송전의 전말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키고 있다. 실제 안씨의 법적 대리인으로 법무법인 부산이 나서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부산의 정재성 대표 변호사는 노대통령의 조카이다. 일반인의 법적 분쟁에 대통령 친인척의 이름이, 그것도 서로 대립되는 위치에서 오르내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직접 현지를 찾아가서 사건의 전모를 살펴보았다. 
2004년 5월 안씨의 검찰 진정으로 시작된 이 사건의 내용은  생각보다 꽤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고 있었다. 간략하게 사건의 개요만 정리하면 이렇다.
안씨는 신씨가 경영하던 김해의 한 식품공장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신씨가 부도를 내자 자신이 직접 공장을 인수해서 경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인터넷에 ‘안씨 공장의 농산물에 농약을 사용한다’라는 내용의 제보가 올려졌고, 곧바로 해당 기관의 조사가 이어지면서 안씨는 공장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안씨는 “공장 내부에 남아 있던 신씨 주변 인물들이 다시 공장을 빼앗기 위해 쳐놓은 함정에 빠졌다”라며 신씨와 회사 관계자 3명의 개입 의혹을 창원지검에 진정했다. 이 진정 건이 2004년 9월 무혐의 처리되자 이듬해 안씨는 다시 신씨를 상대로 민사와 형사 소송 등을 잇달아 제기하며 소송전이 전개되었다.
이 사건에 노대통령의 가까운 친인척인 노건평씨와 배병렬씨가 각각 등장하는 까닭은 각각 소송 당사자인 안씨 및 신씨와의 개인적 친분 관계에서이다.
실제 김해 현지에서는 신씨와 배씨가 매우 절친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NH-CA자산운용의 감사로 있는 배씨는 그전에는 김해의 한 지역 단위 농협의 전무였다. 그는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신씨의 ROTC 1년 선배로 두 사람은 서로 호형호제하는 관계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전에서 배씨가 신씨를 도와주고 있다는 소문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신씨 역시 자신의 뒤에는 배씨가 있음을 주변에 은근히 과시했다는 얘기도 있다.

식품공장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이 감정 싸움으로 번져

 

 

반면 안씨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인 민상철씨에게 접근했다. 민씨는 노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의 처남이다. 안씨는 “상대인 신씨의 배후에 배씨가 있다는 점 때문에 불리함을 느꼈고, 실제 수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상대방이 그렇게 나온다면 당신도 그에 걸맞은 정도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라는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한 다리 건너 친분이 있는 민씨에게 만남을 청했고, 그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민씨는 이 내용을 매형인 노씨에게 알렸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안씨와 노씨가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노씨와 배씨는 이 사건에 얼마나 개입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현재 양당사자가 굳게 입을 다물거나 극구 부인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사건 관련 소장 및 검찰 진술서 등의 여러 자료와 현지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 또한 안씨와 민씨 등 주변 당사자들의 설명 등으로 미루어볼 때 두 사람이 이 사건에 직·간접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안씨는 취재 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2004년 5월 당시 공장 내부 비리를 폭로한다는 한 인터넷 제보가 갑자기 올라왔다. 그 뒤를 이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담당 기관의 현장 조사가 바로 이어졌다.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장 안에 정체불명의 농약이 놓여 있었던 점 등 여러 가지 상황이 뭔가 조직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독자적인 추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당사자가 신씨의 친인척인 공장 내부 관계자였다는 점을 밝혀냈고, 경찰 역시 IP 및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측 역시 처음에는 혐의를 확신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진정 건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신씨의 배후에 배씨가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2004년 12월 바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배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서 ‘사건을 유야무야하는데, 전무님이 영향력을 행사하셨다는 소문이 많다.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안씨가 신씨의 배후에 있다고 확신한 근거는 무엇일까. 안씨는 “2002년 내가 신씨의 공장에 근무할 때부터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많이 봐왔다. 또 지난해 경찰 대질신문에서 신씨가 담당 수사관에게 ‘안씨가 노씨를 찾아가서 내 욕을 했다’고 하기에 ‘당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배씨가 전화로 일러주더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공장 관계자였던 김 아무개씨는 기자에게 “신씨가 ‘배씨가 내 뒤를 봐 준다’는 말을 한 바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 기자의 확인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고, 배씨는 “만약 신씨가 내 이름을 팔고 다녔다면 그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밝혔다.

 

이후 안씨는 신씨를 형사 고소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역시 처음의 입장과는 달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민사 소송도 잇따라 제기했다. 하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절망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 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씨를 떠올리고 만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안씨가 민씨를 만난 것은 2006년 6월이었다. 다음은 민씨의 증언 내용이다.
“당시 안씨와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내가 안씨를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사람이란 게 느낌이 있지 않나. 그가 말하는 내용의 진실성을 알 수 있었다. 안씨가 충분히 억울해 할 만한 일을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또 상대방에 배씨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꼈다. 안씨는 ‘배씨만 이 건에서 완전히 빠져도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일에 나설 수 있겠나. 그래서 매형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안씨와 민씨 두 사람은 2006년 9월 초 노씨의 자택을 직접 방문했다. 처음 노씨는 이들의 방문을 탐탁찮게 여겼다고 한다. 대통령의 친형으로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민원을 모두 물리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씨와 민씨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노씨 역시 안씨의 주장에 진실성이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배씨와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 통화에서 노씨는 배씨에게 “내가 듣기로 사돈께서 신씨와 안씨 소송에서 신씨에게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건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마세요”라고 당부했고, 이에 배씨는 “진정 건을 좀 도와준 일은 있지만 그 외의 소송은 전혀 모릅니다. 신씨도 내 후배이고, 안씨 역시 내 (ROTC) 후배인데 내가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도와주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결자해지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사돈 배병렬씨 “두 사람은 모두 내 후배, 그런 일 없다”

두 사람의 이 전화 통화로 이후 안씨와 신씨의 분쟁 건은 원만히 잘 해결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오히려 며칠 후 있은 민사 소송 1심 판결에서 안씨가 패소했다. 뿐만 아니라 공장 주변의 한 관계자를 통해 “배씨가 ‘안씨가 사돈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음해한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라”라는 얘기가 안씨에게 전해지면서 양측 간의 감정은 더욱 격화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노씨 역시 몹시 언짢아했다고 한다. 노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조카인 정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사건을 맡아서 네가 책임지고 바로 잡아놓아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이때부터 안씨의 법적 변호인으로 법무법인 부산이 나서게 된 것이다.
안씨의 주장과는 상반된 위치에 서 있는 신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신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내가 취재에 응할 이유가 없다. 취재했으면 취재한대로 쓰면 될 것 아니냐”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기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를 시도했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신씨는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배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신씨는 내 ROTC 1년 후배로 평소 잘 알고 지낸 사이인 것이 맞다. 안씨 역시 ROTC 후배이고, 둘 다 알고 지낸다. 내가 특히 신씨와만 아주 친하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노씨와의 전화 통화에 대해서도 “솔직히 기억이 없다. 평소 사돈인 노씨와 가끔 전화 통화를 하지만 그런 내용으로 통화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안씨가 2004년 12월 내 사무실로 찾아와 내가 신씨 편을 들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기에 ‘왜 너희 둘의 싸움에 나를 끌어 들이냐’며 혼찌검을 낸 적은 있었다. 내가 힘을 쓸 위치에 있지도 않고 두 사람의 소송전에  개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민씨는 “나는 한 다리 건너 사돈지간이 되는 배씨를 잘 모른다. 솔직히 지난해 음주운전 건 등으로 인해 이 지역 내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나 자신 또한 이 사건의 정확한 시시비비를 가릴 만한 법률적인 지식도 없다. 하지만 내 판단으로 안씨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매형에게 부탁한 것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매형 또한 이런 일에 나서고 싶진 않지만 안씨의 사정이 딱하다고 판단해서인지 도움을 줘서 바로 잡아보려고 몇 번 애썼다. 배씨에게 전화 통화로 ‘나서지 말아 달라’고 완곡히 사정하거나 혹은 조카의 법무법인에 일을 맡도록 해준 것도 매형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이번 일로 매형이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현재 안씨가 신씨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 건은 계류 중이다. 안씨는 “이미 나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민씨는 “(안씨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며 이 사건에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현지에서는 “노씨와 배씨가 이번 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든 그렇지 않든 간에, 소송 당사자들이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든든한 ‘권력의 줄’을 잡는 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지역 사회의 낙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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